보통사람 소시민 서민 역사의주인 개돼지 곡학아세 시민혁명 촛불혁명
"역사는 엘리트가 이끌어 가는 거야."
한 20여 년 전에 여러 명이 모여 토론하는 중에 누군가가 한 말이다. 그때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으나 곧바로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극우는 아니었으나, 전체주의 사상에 경도된 사람 같았다.
'미친X, 저런 게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니... 그것도 사회 과목을'
'장삼이사(張三李四)'라는 말이 있다. 장 씨네 셋째 아들과 이 씨네 넷째 아들이라는 뜻으로, 이름 없는 평범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즉 민중 또는 대중을 일컫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위인전기를 읽으면서 자라서 그런지 유별스럽게 영웅이나 엘리트에 혹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정도가 지나친 사람은 독재자들을 미화하고 찬양하는, 비판적 의식이 없이 노예와 다름없는 근성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역사는 위대한 지도자나 영웅, 엘리트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듯하다. 물론 한 사람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물꼬를 터주기도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만드는 건 다수의 힘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어떤 사건이나 시대를 이해할 때 인물에 집중해서 역사를 해석하는 방법도 유익하지만, 통사通史로 볼 때, 인물의 비중은 아주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면 이러한 '장삼이사'의 힘이 켜켜이 스며들지 않은 때가 단 한 번도 없었다. 임진왜란 당시 왕, 관료, 지배층이 백성과 수도를 버리고 도망갔을 때,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킨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도 이름 없는 많은 민초들이 목숨을 초개처럼 여긴 희생과 노력으로 이어졌다.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87년 6월 항쟁까지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전환점마다 '장삼이사'들이 있었다.
엊그제의 촛불 혁명 역시 마찬가지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헌법을 짓밟으면서 '미친개'처럼 국민을 위협하고 국가의 명운을 나락에 빠뜨린 세력이 있다. 이런 형편없는 작자들을 과분한 자리에서 끌어내린 이들은 내 부모, 형제, 자식 같은 보통 사람들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자칭 특별한 엘리트라는 돗개무리가 적나라하게 보여준 행태는 가관이었다. 위기의 순간에도 자신들의 이익만 생각하는 파렴치한에 지나지 않았다.
추운 겨울 광장을 메운 평범한 시민들, 학생, 노동자, 주부들이 나라를 지켰다. 역사책은커녕 매일 나오는 신문에조차 자신의 이름을 올릴 일이 없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위대한 인물'을 찾아 역사를 설명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역사는 보편적이며, 그 중심에는 항상 평범한 사람들이 있다. '장삼이사'라는, 이름 없는 시민들이야말로 역사의 진정한 주인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