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남겨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엄마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을 나는 한참 뒤에야 알게 됐다.
늘 그래왔듯 부모님은 아픈 내색도, 힘든 사정도 우리에겐 숨겼다.
과거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그랬다.
걱정할까 봐, 혹은 괜히 마음 쓰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게 부모님이 살아온 방식이었다.
익숙했지만 이번엔 그 익숙함이 뼈아픈 후회로 남았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조금만 더 살폈더라면. 엄마가 아프기 전에 더 많은 추억을 쌓았더라면.
그 무력한 아쉬움이 가슴 한구석을 오래 짓눌렀다.
게다가 엄마의 나이는 이제 겨우 쉰 여섯이었다.
폐렴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생각한 나는 그때 엄마가 이미 되돌아올 수 없는 어딘가에 조용히 들어서고 있었다는 걸 몰랐다.
내가 본 부모님은 그저 부부라기보다 인생을 함께 살아낸 ‘동료’ 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시골 산자락 아래, 조용히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아빠가 일하고 있으면 엄마는 새참을 들고 나가 함께 나누고 일손을 거들다 해가 지면 함께 돌아왔다.
일상을 나누고 계절을 나누고 세월을 견뎠다.
두 분 다 말씀이 많지 않았지만 부부로서의 존중과 동행이 몸에 밴 사람들이었다.
엄마는 따뜻했고, 아빠는 우직했다.
우리 엄마.
엄마는 본성적으로 선한 사람이었다.
그 이름 '은혜'처럼 누구에게든 먼저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
생활력이 강한 사람. 동네 이웃 모두가 엄마를 좋아했다.
엄마가 있는 집은 늘 예쁜 꽃이 가득해서 향기가 났다.
우리 아빠.
아빠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다.
대단히 상식적이고 올곧다. 그런 아빠는 무교였지만 주일마다 교회를 가는 엄마를 존중했다.
가끔은 따라가 찬송가도 불렀다고 한다. 성미에 안 맞아도 엄마가 좋아하니까.
어쩌면 무뚝뚝한 마초였지만, 엄마를 위해서라면 무엇도 마다하지 않았다.
표현이 서툴렀을 뿐 사랑하는 방법은 알고 있었다.
한 번도 말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나는 언제부턴가 이 두 사람을 ‘부모’ 이전에 하나의 ‘사람’으로 봐도 멋지다고 생각했다.
두 분 다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
각자 가난과 상처를 견디며 자녀들을 키워냈고
그 과정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저 매일의 삶을 성실하게 살며 어른으로서 자녀들에게 행복한 가정을 주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로 인해 나는 독립한 이후 아무 걱정 없이 남부럽지 않은 가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두 분이 이룬 가정은 나에게 단지 ‘집’이 아니라 ‘버팀목’이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를 부모가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 봐도 존경할 수밖에 없다.
나는 두 사람을 아버지와 어머니 이전에, 삶을 함께 견뎌낸 두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다.
언제까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