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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Sep 09. 2016

(1분소설)구원#2

2. 피할 수 없는

(이번 편은 욕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구원#1 못 보신 분들을 위해.


https://brunch.co.kr/@clementine/189#comments




올해 마흔인 혜자는 칠순 노모를 모시고 혼자 살고 있다. 밤에는 대리 운전을 하며 하루 하루 버티고 있는 그녀 .

하루는 장에 간 노모에게 가는 길에 한 아이를 발견하고 이상하게 마음이 빼앗긴다.




빵빠앙 -빵빵빵!!


엄마나.

신호를 대기하다 나는 너에게 시선이 빼앗겨 신호등을 놓쳤다. 다급히 우회전 깜빡이를 넣고 핸들을 돌렸다. 뒤에서 신경질 적으로 계속 경적을 울려댔다. 적당히 좀 하지. 계속 울리는 클락션에 짜증이나 브레이크를 확 밟아 버렸다. 나도 모르게 감정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끼이익-


뒷 차가 다급하게 브레이크를 잡는 소리가 들린다. 글게 왜 지랄이야. 룸미러를 보니 1톤 트럭이 바짝 붙어 섰다. 나는 흥분된 마음으로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병신 새끼. 무슨 1분 늦었다고 저 지랄이냐. 적당히 좀 하지. 그거 기다린 다고 하늘이 무너지냐, 땅이 꺼지냐. 괜스레 속으로 욕이 나왔다. 인간들, 성질 지랄 같네.  


야이, 씨발년아 운전 좆같이 하지 마라 어?


왜애앵 소리를 내며 쫓아온 차, 인상을 잔뜩 찌푸린 젊은 놈 하나가 창문을 내리고 소리를 지른다.

뭐라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창문 쪽으로 손을 가져가다, 멈췄다.

어휴.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시간 아깝게.

나는 다시 핸들을 붙잡았다.

개새끼. 정도껏 해야지.

살아서 생전 마주친 적 없는 놈에게 욕지거리를 들어야 한다는 게 분했다.


앞으로 쌩 하고 가는 차 모양만 봐도 운전자의 성격이 보인다. 저저저, 운전하는 꼬라지 보소. 젊은 포터는 나에 대한 기분이 풀리지 않은 건지 앞으로 가는 내내 클랙슨을 울리면서 간다. 아슬아슬하게 위협하며 가는 차를 보니 왠지 측은했다. 가진 게 없어 저딴 난폭운전이 자신이 가진 능력이라도 되는 줄 아나보다.


인간들은 뭐든 자기가 정의다. 신호 1분 늦으면 병신이고, 죽을 짓이고, 지랄을 해 댄다. 그러다 거기에 맞대응하면 바로 세상천지 또라이, 씨발년이 된다. 자긴 잘못한 게 없고 무조건 상대가 그랬기 때문에 자기가 하는 응징은 정당하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그깟 1분이 뭐라고. 그렇게 60초란 시간도, 세상에서 제일 긴 시간이 될 때도 있다. 시간이란 건 그렇게 주관적인 해석이 가능한 객관식인가 보다.


야야, 혜자야! 여기여기! 저 우리 딸 온다. 우리 딸년이야. 어, 혜자야. 얼른 돈 줘바.


얼만데?


어- 이거 한 봉지 하고, 저거 한 다라이 다 해서 3만원. 너 차 어딨냐? 차에 실어야 해. 김 씨, 그럼 다음 장에는 내가 부탁한 거 가지고 와, 내가 그날은 딸년 데리고 나올 텡께.아르찌?


나는 작은 봉지 하나와 큰 봉지 세 개를 달랑달랑 들고 차로 향했다. 뒤를 돌아보니 엄마는 또 다시 장사꾼 앞에 앉아서 이것저것 고르고 있다.


엄마- 뭐 또 사게?


어, 이거 구찌뽕 이거 여자한테 좋데. 어제 티브이에서 그러더라. 근데 이거 왜 이렇게 비싸요, 좀 깎아줘. 어?


엄마는 다시 흥정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나는 차에 가다 말고 그냥 그 자리에 서서 엄마를 기다렸다. 아무래도 오늘도 빨리 돌아가기 틀린 것 같다. 이제 집에 돌아가서 빨리 준비하고 일하러 나가야 하는 데.


엄마, 나 돈 안 가져왔어. 그거 담 장날에 사!


으잉? 에이 그럼 진작 말을 해야지. 니는 뭐 돈을 딸랑 삼만 원 들고 나오냐, 누구 코에 붙인다고.


현금이 없어서 그러지. 오늘 주말이잖아. 은행 문 닫았어.


으유. 알았어. 아줌마 담 장에도 오제? 그리고 인간적으로 너무 비싸다. 그럼 누가 사긋어. 내 담 장에 올테니까 꼭 오쇼잉. 야, 가자.


오늘 돈이 없다는 스킬은 종종 엄마가 자꾸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집에 안 가려고 할 때 쓰는 방법인데, 꽤 효과가 있다. 그냥 나이가 들면 다시 애기가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처음 세상을 알아갈 때와 같아지는 걸까? 저 나이가 되면 글쎄,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이 아쉬워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남은 시간,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인지도 몰라.


아침부터 해가 어스름해질 때까지 장을 본 거라곤 나물 세 종류, 겨우 네 봉지, 이걸 가지고 하루 종일 장에서 놀 수 있는 엄마의 기술이 가끔 부럽다. 엄마는 나와는 달리 사람도 좋아하고, 동네 일에 이것저것 열심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오히려 더 괄괄해 지셨다고 해야 할까?


엄마도 나와 같은 나이가 있었겠지. 엄마도 여자니까. 그리고 엄마도 나와 같은 감정, 기분, 사랑, 애정 다 느꼈을 거야. 여자로서 말이야. 그래도 나에게는 평생 엄마라는 존재로 살아서 엄마에게도 그런 애틋함이 있을 거라는 걸 종종 까먹곤 한다. 그런 외로움들, 어떻게 견뎌냈을까.


내가 이혼 도장을 찍는 날, 엄마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내 손을 붙잡고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엄마의 그런 모습을 보니 더 죄인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 어린애처럼 엄마 품에서 엉엉 울었다. 엄마도 날 붙잡고 울면서, 다 괜찮다. 다 괜찮아. 이 어미가 이런 꼴 보여주니 자식년도 똑같이 살지, 다 내 죄다. 니는 잘 못이 읍어.라고 하며 자꾸만 등을 두드렸다.


그리고 나는 그 손길을 아직도 기억한다.



야, 차 좀 세워봐라. 자자, 저거 아직도 저 있네.


나는 엄마의 갑작스러운 외침에 브레이크를 꽉 밟았다.


왜왜? 뭐 있어? 고양이? 뭐 밟았나?


아니, 자자. 저어기 저 주차장에 자 보이제?


어디? 누구?


그 애다!


엄마 쟤 알아?


그래, 자가 지금 한 달째 저러고 있다는 거 아니여. 저저 똑같은 옷 입고, 내가 맨날 분이네 집에 갈 때마다 자한테 말 걸어 보려고 했는 데, 저 쪼꼬만게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나만 보면 쌩하니 도망간다니.


누군데? 누구 집 애야?


몰러. 저거 한 달 전에는 그래도 통통 했는 데, 아이고, 저 빠싹 마른 것 좀 보소. 자, 뭐 초등학생쯤 안 되었겠나? 가보자.


누군지 알고 가. 뭐하게.


아니, 누군지 모르니까 가보지. 가서 누군지 물어보자니? 엄마를 잃어버린 건지, 누가 내 삐리고 간 건지.


에? 그거 물어봐서 뭐 하게.


야 이년아! 자식이 없으니 그런 것도 모르지? 저봐. 딱 봐도 뭔 일이 있는 애잖여. 밥이라도 먹겠냐! 집에서 밥이라도 맥여야지!


...그래?


그래, 빨리 저 차나 세워. 그리고 멀리서 가야 해. 도둑 괭이 새끼도 아니고 엄청 빠르게 도망간다니께.


나는 차선을 변경해서 다시 일 차선에 붙었다. 유턴을 해서 역 쪽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지이잉- 징징-


여보세요?


회사에서 오늘 두 명이나 일을 펑크 낸다고 일찍 나와줬음 하는 전화가 왔다. 엄마, 나 일가야해. 나는 다시 차를 돌렸다. 아이는 그 자리에서 꼼작 안 하고 앉아 있었다.


쯔쯔, 누가 아를 저리 버렸을 꼬. 가출했나? 인간들이 아만 싸질러 논다고 다 부모가 아니여. 나쁜 놈들.


요즘 애들 탈선도 많이 한 대. 경찰에 전화할까?


야, 일단 사정을 들어보고 경찰에 전화 혀. 내 내일은 아 밥이라도 먹이고 찬찬히 물어 볼라니. 그럼 오늘 저녁은 고등어 쪼릴까?


응. 그래.


려그려. 내가 가서 냉동실에 고등어부터 녹일 테이까 니는 언능 일 갈 준비혀. 한 푼이라도 벌어야제.


어이구, 알았네요.


엄마는 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줄줄 늘어놨다. 나는 응, 그래? 왜? 저런 등 여러가지 맞장구를 쳐 주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냥 효도라는 건 별거 없는 것 같다. 외롭지 않게 해 주는 거. 혼자라고 생각 안들게 해주는 거. 이야기 상대가 되어 주는 거. 그냥 나이가 들면 건강이 가장 중요하고 그다음은 가족이다. 서로 부비적 거릴 사람이 이 세상에 이제는 엄마와 나 단 둘이니까.



사장님, 사장님, 정신 좀 차려 보세요. 다 왔어요.


음~왜이씨발-세상아~음냐음냐~다꺼지라그래...어푸우 드릉...


사장님, 댁에 다 왔어요. 예?


손님은 술이 떡이 돼서 일어날 생각이 없다. 흔하게 있는 일이다. 여자인 나는 남자를 깨우기도 쉽지 않다. 어떤 날은 욕설이 날아오고, 어떤 날은 주먹이 날아온다. 어떤 날은 괜한 시비로 돈을 안 준다 그러기도 하고 어떤 날은 팁을 두둑이 받기도 한다.


이번 진상은 나 혼자 처리하기 힘들 것 같다.


삼촌, 나 여기 모모 슈퍼 앞인데 응, 나 데리러 와. 근데 손님이 안 일어나네. 응. 빨리 와줘.


뿌우웅


어이고 지랄이다. 한쪽 다리는 바지를 둘둘 걷고, 거의 만삭의 배를 가진 남자는 배가 다 보이도록 까고 누워서 코를 골다 방귀를 뀐다. 나는 더럽고 짜증 나서 차에서 내렸다. 도저히 내가 깨울 수 없는 종자다. 그래도 일은 했으니까 만원은 받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회사에 삼천 원 떼주고 나는 칠천 원이 남는다. 이렇게 밤새도록 해서 벌면 어떤 날은 수입이 괜찮고 어떤 날은 최악이다. 그래도 별 기술도 능력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 해야지. 벌어야지.


삼촌이 오고 나는 다시 차를 타고 사무실로 돌아가 콜을 대기했다. 벌써 새벽 두 시 사십 오분... 마감시간이 다 되어 간다. 오늘은 두 명이나 빠져서 너무 바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차라리 몸이 바쁜 게 좋다. 이 생각 저 생각 안 들고...


저 오늘은 일찍 들어갈 께요. 비도 오고.


그래? 요 앞에 돼지 껍데기 먹으러 갈 껀데 먹고 가지? 누님 없으면 술자리가 썰렁 한디?


에이, 이 밤에 무슨 돼지 껍데기야. 자야지. 울 집에 호랑이 여사 알잖아. 나 조금 있으면 일어나서 밥 먹어야 해.


어따, 돼지 껍데기가 탱탱 피부에 얼마나 좋은 데. 글지 말고 먹고 가. 비도 오는 디 쏘주나 한잔 허게.


나 간다.


사무실을 빠져나오니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온다. 나는 천천히 골목을 빠져나가 집으로 향했다. 역 삼거리를 돌아 우회전하려는 찰나,


끼이이이이익!


도로 한 복판에 뭔가 시커먼 게.. 서있었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뭐지? 부딪힌 건가? 나 사람 친 거야? 

심장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다급하게 벨트를 풀고 차 문을 박차고 뛰어 나가듯 문을 열었다. 동네는 사방이 고요했고 비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조심히 차 앞으로 다가가니 헤드라이트 밑에 시커먼 짐승 같은 게 웅크리고 있었다.


히익-


뭐야... 죽었나?


컥. 다시 심장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너였다.

그리고 살기 가득한 그 눈...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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