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클레멘타인 Sep 08. 2016

(1분소설) 구원#1

1. 저주의 시작


이번 편은 시리즈 입니다. ^^;

오픈 되기엔 좀 잔인해서 연재 수위 때문에 고민 중입니다.


혜자야, 야 이년아! 이게 해가 중천에 떴는데 아직도 자냐? 게을러 빠진 년


나는 언제나 엄마의 같은 잔소리에 눈을 떴다. 내 나이 마흔, 일흔이 넘은 엄마는 누구보다 정정해서 새벽 5시면 활동을 시작한다. 나는 밤새 대리운전을 하고 돌아와 새벽 3시쯤 잠이 든다. 그런 나에게 아침에 일어나는 건 거의 고문 수준이다.


그러나 노모에게 아침 잠은

똥 같은 인간에게나 어울리는 게으름이었다.  내가 새벽 내내 일을 하든 말든,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은 모두 게으른 사람으로 낙인 찍어버린다.


혜자야, 야! 아침밥 다 됐다. 얼른 한술 뜨고 자. 찌개했으니까 언능!

어이구,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이꼴 안보려면 내가 빨리 죽어야지. 원.

아...엄마,쪼옴... 내가 알아서 먹을 게.

어이고, 알아서 먹으면 내가 이럴까. 진짜- 내 팔자야. 언능 한 술 떠! 먹고 다시 자더라도 언능 일어나. 언능!


엄마에게 양보란 절대 없다. 어느 집이든 마찬 가지겠지만, 가정이라는 사회에는 부모가 정해 놓은 새로운 룰이 존재한다. 그것만큼 불평등하고 가혹한 것이 없으니 대부분 부모의 사상과 삶의 지혜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그 법은 절대 고칠수도 깨서도 안 되는 불문율 같은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넘어가지 않는 밥을 억지로 먹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국을 뜨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 간다. 달그락 달그락 노모의 그릇 닦는 소리에 맞춰 잠에 빠져든다.


삐리릭-꽝-.


오늘은 22일 , 장날이다. 매일 2일과 7일이면 엄마는 다른 날 보다 더 화려한 꽃무늬 옷을 골라 입고 화장을 곱게 한다.


그렇게 본인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예쁜 얼굴로 한 껏 차려 입고 장에 나선다. 그곳에 가면 동네 아줌마들과 한 참 수다도 떨고, 그다지 필요 없는 물건을 사며 괜스런 흥정으로 하루를 보낸다.


때로는

낮부터 호흡이 떨리는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오는 데, 그 날은 100% 누군가와 싸운 날이다.

동네 어르신들과 막걸리 판이 벌어져 처음에는 서로 기분 좋게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도, 마지막에는 그 중 한 두사람이 꼭  싸우고 욕을 해야지만 술판은 끝이나고 뿔뿔이 흩어진다.


그렇지 않으면 밤새도록 술판이 벌어진다.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나나 싶기도 하지만, 그게 70넘은 노모의 유일한 삶의 낙이었다.




으음...

오후 3시쯤 돼서야 나는 다시 질척한 잠에서 깼다. 하루가 이렇게 가버리는 게 아까워 며칠 전부터 마트에서 하는 수업 전단지를 유심히 살폈다. 일찍 일어나서 남들 처럼 취미 생활을 해 볼까 생각도 했지만, 막상 생각만 있고 몸뚱이가 움직이지 않는다.


분명 젊은 엄마들 속에 삼삼오오 모여 이얘기 저얘기 하다보면, 아이도 없고 남편도 없는 나는 뭔가 비정상적인 여자로 비춰지기 마련이니까. 늘 걱정스러운 말을 하겠지. 그리고 마음에 없는 부럽다. 이런 마음에 없는 말들. 혼자 사는 게 훨씬 편하겠다.


이런 뭣 같은 말들이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그렇게 즐거운 대화도 아니다. 그런 시선과 이야기들을 감당할 자신이 아직 없다. 차라리 돈이라도 벌까? 마트에서 투 잡을 할까 생각 해 봤지만...솔직히 아직까지 고민 중이다. 왜 이렇게 세상은 험난하기만 한지...


어릴 때 내가 이런 꼴이 될 줄 알았다면 진짜 열심히 살았을 텐데. 젊은 시절은 죽어도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란 걸 왜 그때는 몰랐을까. 내 인생에 후회라는 건 돌이킬 수 없는 일들 투성이었다.


내 얘길 조금 해보자면,

나는 27살에 결혼 해 10년을 채우고 갈라섰다. 그렇게 한번의 결혼 실패 이후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 돌싱의 생활은 나름 자유롭기도 하고, 때론 외롭기도 하다. 손님 중에 때때로 나 혼자 산다고 그러면, 대놓고 껄떡 대는 인간들도 있지만 다들 술에 취한 농담일 뿐이다.


지금 같은 생각으로는 딱히 누군가와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다. 사람한테 질렸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무언가 다시 시작하기가 두렵다고 해야 할까. 나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편과 나 사이에 아이는 없다. 그래서 더 그런걸까? 10년의 결혼 생활도 잠시 스친 인연처럼,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흐린 추억이 되었다.


 지금 그는, 나보다 어린 여자와 중학생이 된 아이 한명의 가정을 꾸리고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분이 이상하긴 했지만 그다지 감정 소모는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때때로 술에 취해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전화를 하기도 했다. 글쎄. 뭐가 미안한지 잘 모르겠다.  좋아서 결혼 했고, 싫어서 이혼 한건데. 뭐. 나는 전 남편이 내게 미안하다고 그럴 때마다 서로 인연이 아닌 거지 뭐. 하고 빨리 들어가. 집에서 기다리겠다. 라며 적당히 달래 전화를 끊는다.


그런 전화가 올 때마다 속으로 그래도 10년 산 사람의 의리지 뭐. 하다가 결국 작년에 전화 수신 차단을 해버렸다.


우우웅- 우우웅-


벨소리 부터 왠지 느낌이 이상한 것이, 노모가 올 시간이 지난 건 같은 데. 뭐. 오늘 장날이니 불 보듯 뻔한 일이겠지.


여보세요?


야, 니 지금 뭐하나? 니 좀 나와봐라.


왜, 뭐하는 데? 또 싸워?


싸우긴, 니 어미가 뭐 쌈닭이냐? 그게 아이고, 여기 오늘 저 어디냐, 거 한의원 앞인데, 저 정선에서 고비가 나왔는 데, 싱싱하네.


근데 거, 내, 돈이 좀 모지리네. 니 좀 갖고 나와라. 어? 빨리와. 여여-김 씨 이제 막차 타고 가야 한다니께, 짐 바로 나온나? 알째?


아니 어디..?


뚝-


휴... 또 자기 할 말만 하고 끊는다. 도대체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역사가 없다니까.


나는 투덜거리며 눈에 보이는 대로 옷을 대충 걸쳐 입는다. 거울을 보니 한껏 늘어진 옷들이 오늘따라 추레해 보인다. 그렇다고 꾸미고 나갔다가는 괄괄한 노인네의 욕만 늘어날 뿐이니 급하게 나간 티라도 내려면 이대로 가야지 원.


나는 서둘러 장으로 향했다. 어디 있을지 몰라도 어차피 좁은 동네니 몇 바퀴만 돌아도 금방 찾을 수 있다. 이상하게도, 작고 꾸부정한 노모는 어디에 있든 눈에 띄었다. 그리고 목소리만큼은 열혈 청년 못지않아 때로는 목소리만 듣고도 찾을 수도 있다.


현관을 열고 나오니 회색 하늘이 잔뜩 지푸린게, 뭐라도 금새 떨어질 것 같은 우중충한 날씨다. 늦가을이 지나가는 길목이라 그런가. 스산한 기운이 목덜미를 소름 끼치게 만들어 나는 핸들을 꽉 쥐었다. 그리고 보리역 삼거리에서 신호 대기를 하고 있다가,


널 발견한 것이다. 차 뒤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승냥이같은 새까만 너를.


지금 생각해도 너와 나는 무슨 인연이었을까. 그날 굳이 노모가 날 불러 내지 않았다면, 그날 굳이 신호가 걸리지 않고 바로 출발할 수 있었다면, 그날 굳이 내 시야에 네가 없었다면


그랬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건데.


가끔은 그날의 모든 것이 저주스럽다. 더 끔찍한 것은 그 저주가 아직도 나에게 걸려있다는 사실이다.



이어서 계속...





페이스북 www.facebook.com/loveseaclementine

인스타그램

@loveseaclementine

브런치

@clementine


+구독하기 눌러 주시면 언제나 당신 곁에

매거진의 이전글 핑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