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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Sep 08. 2016

핑계

중요한 건 너였어

이건 다 그 맛없는 음식 때문이야.


나는 오랜만에 널 만나는 길이었고, 이런 기회는 없을 거라 생각했어. 너무 간절했고 마지막으로 무엇이든 해보고 싶었어. 나는 그랬어.


아주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사람들의 추천을 받은 그 집으로 간 거야.


그리고 30분 전부터 널 기다리고 있었어. 창문 밖에 너와 닮은 사람이 지나가기라도 하면 심장이 쨍하고 얼어붙는 기분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


...그리고 익숙한 너.


언제 우리가 헤어지기라도 했었냐는 듯 넌 너무 그대로였어.


늘 좋아하던 니 머리스타일, 조금은 마른 듯 한 니 얼굴, 내가 좋아하던 니 향기, 그리고 익숙한 니 목소리, 따듯한 니 눈빛


하나도 변한 거 없는 데 이거 그냥 시간을 뛰어넘어 그날의 우리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을 느꼈지.

그냥 착각이었어.


나는 준비해둔 말도 못 했고,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몰라서 계속 버벅 거렸어.

너는 똑같은 데 나 혼자 너무 긴장한 것 같아서 한 편으로 화도 나더라. 근데 너는 그런 내 마음 모르겠지. 왜냐면 넌 원래 그랬으니까.


무심하고, 무심하고, 무심하니까.


나는 조금이라도 네 마음이 궁금했어. 너는 그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이야기했어. 너무 재미있고, 그 짧은 기간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더라. 그리고 매일 네가 하던 일들은 변한 게 없고, 너의 상사도 변함없이 재수 없다고.


나는 모든 일상이 망가졌는 데 너는 그냥 그대로래. 그 때문일까. 그때부터 나는 힘이 없어졌지. 내가 없어도 너는 일상이 그대로 잘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거야. 나는 네가 없어지고 엉망진창이 됐는데도 말이야. 억울해. 억울해서 죽을 것 같아.


그 뒤로 나온 음식은 더럽게 맛이 없었어. 나는 한 입 먹자마자 화가 났지.


오늘 중요한 날인데, 네가 내가 준비한 모든 것에 감동해서 다시 마음 돌려야 하는 날인데.


착해 빠진 너는 점심을 늦게 먹어서 잘 못 먹겠다고 했어. 너는 늘 그렇게 남을 배려하는 말을 잘 했지. 그래서 내가 그렇게 지겨워져도 너는 그냥 뜨드미지근 하게 웃으면서 우리의 시간을 허비했지. 그리고 결국 나는 너랑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상한 말을 내뱉었잖아.


그런 너의 배려도 싫고, 맛없는 음식도 너무 억울하고, 이 집을 추천해준 사람들도 원망스럽고, 눈치 없이 친절한 사장님도 미워.


왜 세상 모든 것들은 다 그대로야? 다 별일 없이 잘 돌아가는 거야? 왜 나만 이런 거지?


정말 모르겠다.


너는 아무렇지 않게 일어났어. 그리고 다시 만나자는 말도 없었어. 그냥 잘 지내. 건강해. 이런 말만 뱉어냈지 아주 매너 좋게. 예쁜 그 얼굴로 말이야.


솔직하게 말하지 그랬어. 오늘 시간도 너무 지루했다고, 이 음식은 너무 맛이 없다고, 내가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하도 사정해서 또 착해 빠진 너는 어쩔 수 없이 나온 거라고. 그런 거라고 말이야.


.... 제기랄. 이건 다 맛없는 음식 때문인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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