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현실
마음이 부대껴 새벽 바다로 나갔다.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방법이자 탈출구
비가 내리고 주말이라 그런지 젊은 사람들은 여전히 인증 사진을 남기고 있었다.
뭐든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을 구경할 때는 무엇이든 즐거운 법이지만.
그러다 후드티에 바지를 입은 한 사람이 걸어온다. 그리고.
조심히 쓰레기통을 뒤진다. 우유팩을 흔들어 보고 입으로 가져간다. 나이가 얼마쯤인지 여자인지 남자인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먹을걸 찾는 본능적인 뒷모습만
나는 기분이 요란해졌다.
얼마나 굶으면 쓰레기통을 뒤지게 되는 걸까.
한 끼는 아닐 것이다. 하루도 아닐 것이다.
인간에게 체면이란 적잖이 중요하니까.
혹 지난번 엄마가 얘기한 집 나온 떠돌인가
엄마는 동네를 돌다 매일 같은 장소에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한다.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가방을 메고 이어폰을 낀 사람을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누군가 버리고 간듯한 쓰레기 봉지를 뒤지는 것도.
그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같은 옷에 같은 장소에 있었고, 같은 장소를 운동하는 엄마의 눈에 띄어 결국 엄마는 말을 건다.
엄마는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관심도 많고 정도 많아서 그냥 지나친 적이 없다.
가까이 간 그녀는 냄새가 엄청 심했다고 한다. 얼마나 씻지 않은 걸까. 그녀는 자신의 말로
서른이 된 아가씨였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마음 정리가 안돼서 강릉에 왔다고 했다.
정신적 충격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도 사실 믿지 않았다. 모르겠다. 그동안 만난 사람들의 경험에 의해서 일 지도 모른다.
사실 엄마가 이런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집에 데려와 밥을 먹이고 재워 주고 한 게 처음은 아니라 그렇기도 하고. 그들은 한결같이 거짓말을 했다.
일단 엄마는 그런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그리고 밤에 여자 혼자는 너무 위험하니 집이 있으면 빨리 돌아가라는 말과 차라리 숙식이 되는 식당에서 일을 해보는 게 어떠냐는 말도 함께. 딱히 뭘 해주거나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내 눈 앞에 먹을걸 찾아 헤매는 길고양이 같은 사람이 있다. 이것은 현실.
몇 번인가 입에 무언가를 집어넣던 그 사람은
더 이상 먹을 게 나오지 않자 어딘가로 또 이동했다.
나는 이 빗속에 쓰레기통을 뒤져야만 하는 젊은 삶을 티브이에서만 봐서 그런가, 이제야 내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듯했다.
차 안에서 그를 보는 나와 쓰레기통을 뒤적거리는 그 사이 거리는 불과 50미터도 안될 정도로 짧았지만 현실은 너무나 멀었다.
혹 돈이라도 주고 밥 한 끼 먹으라 해야 할까 갈등이 일었지만 새벽에 여자일지 남자일지 모를 사람에게 다가가기엔 조금 무서웠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은 과연 얼마나 되는 걸까 책 속의 이야기들은 얼마큼 현실인 걸까
우린 왜 이토록 지독한 불평등을 경험하고 죽어야 하는지. 운명이 , 세상이 , 삶이 너무 가혹해서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모든 것은 결국 내 일이 아니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