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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Sep 30. 2016

(1분소설) 우연

처음부터앞으로도계속

연애도 안 한지 벌써 몇 년째,

그동안 잠시 스쳐 지나간 사람은 몇 있었지만 아무도 지독한 사랑은 아니었고, 큰 의미를 준 사람도 없었던 것 같다.


모르겠다. 그들에게도 내가 그런 상대였는지는.


뭐 , 이쯤 되면 외롭...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아무런 감정이 없어져 버려 글쎄... 말로는 애인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다녔지만, 솔직히 말하면 크게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30대 중반이 지나고서는 나름대로 외로움을 즐길 줄도 알게 되었고 , 혼자서 쇼핑하는 법, 밥 먹는 법, 영화 보는 법, 카페 가는 일, 소소한 취미들, 책 보기, 음악 듣기, 나가서 볕 쬐기 , 여행까지


부족하지 않은 싱글 라이프를 즐기면서 살고 있었다.


그렇게 이 세상에 딱히 둘이 될 이유를 찾지 못하고 혼자 무던히 지낸 나날들이었다.

소개팅을 해도 뭔가 상대가 미적미적하면 나 역시 열정을 쏟을 생각이 없었고, 오히려 자유를 잃을까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삼포 세대, 오포 세대 이런 말들이 나오는 가. 순수하게 연애의 감정까지 포기하게 되는.



그날도 그랬다.

평소와 다름없이 그렇게 순수하게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늘 가던 카페에 들러, 늘 시키던 카푸치노를 시키고, 늘 앉던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데,

 


... 내 자리에 누군가 앉아있다.



딱히 볕이 드는 자리도 아니고, 좀 구석진 자리라 항상 비워져 있었는데... 나는 괜히 주인과 눈빛 교환을 했다. (눈빛으로 저 사람 누구?라고 보내자 주인은 미안하다고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진짜 자리 주인이라도 되는 냥 자리가 보이는 대각선 자리에 앉았다. 일어나면 옮길 요량으로.


그래서 본의 아니게 나는 그곳을 계속 쳐다보고 있는 꼴이 되었다. 내 자리를 차지한 그 사람도 같이.


깔끔한 하얀 셔츠에 단정히 내려앉은 머리를 한 그 사람은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뭘 그리 열심히 쓰고 있는지 노트에 얼굴을 박고 고개 한번 들지 않았다. 나는 내심 신경 안 쓰는 척하며 눈으로만 흘끗거렸다.... 언제 내 자리가 나려나. 뭔가 작업 중인가?


참 별 일에 다 집착한다 싶지만, 다른 자리에 앉으니 영 가시방석이었고 뭔가 미묘하게 불편했다.

그 순간부터 나는 앉아 있는 게 앉아 있는 게 아니었다. 그냥 잠깐 커피 마실 요량으로 간 건데, 어느새 자리에 집착증을 보이고 있었다. 참나. 나도 별나네. 애인이 없으면 다 이렇게 되는가. 내 것이라 여겨지는 사람이 없으니 별 거에 다 집착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도 참, 변태스럽다.



카푸치노의 시나몬 가루가 점점 내려앉아 커피잔 바닥에 닿아 갈 때쯤, 그 사람이 서서히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커피도 다 먹은 상태라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옮길 기미를 보이자, 괜히 또 자리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뭐야, 갈 거면 좀 진즉에 갈 것이지.


이윽고 짐을 챙기는 듯한 모습이 보이고 나 역시 따라 짐을 주섬주섬 넣기 시작했다. 동시에 주인은 눈으로 나를 보며 턱짓으로 그 자리를 가리켰다. 나도 희미한 웃음을 보여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고개를 들고 그 사람이 일어서는 찰나,

나와 눈빛이 마주쳤다. 나는.

나는. 뭔가 한 순간 몸이 쪼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당신이었다.




왜 몰랐을까. 한 번쯤은 어디선가 마주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살아왔던 당신이었다. 그래서 당신 소식이 끊긴 이후에도, 나는 매일매일 거리에서 당신과 비슷한 모양새의 사람만 봐도 심장이 덜컹덜컹 고장 난 수레바퀴처럼 헐렁 거렸었다.



그런 당신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내 것이 아니면서 늘 빛나기만 하는 당신.




그런 당신의 뒷모습을 너무도 많이 봐서 멀리서 실루엣만 어른거려도 알아볼 수 있던 나였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 뒤통수를 보고 있으면서도 못 알아보다니. 뭔가 허망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은 잊으며 살아가는 동물인가 보다. 잊을 수 있어서 살 수 있었었던 시간들이었나 보다. 나는 다시 아물어있던 상처들이 따끔따끔거렸다. 당신을 알아본 그 찰나가 종이에 베인 손가락처럼 섬뜩하면서 아려왔다.




갑자기 당신과 나의 추억이 쓰나미처럼 날 덮쳐왔다.

당신 앞에만 서면 나는 이상해졌다. 어린 시절 발표하기 전날 배가 아픈 것처럼 긴장되고 왼쪽 가슴 한쪽 구석이 따끔거렸다. 당신은 선생님이었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일 뿐이었다. 언제나 당당한 당신을 동경했고, 흠모했고, 사랑했다. 왜 사랑이란 것은, 내게 있어서 늘 과거형일까. 당신은 내게 늘 현재형인데.


당신은 금세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갔고 나는 카페 문을 나서는 당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가방을 챙겨 당신을 뒤쫓았다. 그건... 본능이었다. 머리로 계산하지 않았던 마음의 행동.



나는 뒤에서 익숙한 당신의 모습을 따라 익숙하게 걸어갔다. 예전에 당신은 , 곁에 다른 사람의 그림자가 늘 함께여서 가까이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지금이라면, 혹시라도 내가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옆자리에서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냥 , 당신의 안부가 궁금했다. 그리고 당신이 날 알아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심장이 요동쳤다.


그저 어린 누군가로만 당신의 곁을 맴돌던 나였는데, 오늘은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나는 당신을 따라가며 내심 기대되었다. 그래도 반가워해주면 좋겠다.

... 당신의 발걸음은 그때와 비슷하네. 늘 천천히 걸어서 미리 움직여야 하던 당신. 걸음이 느려 당신의 속도에 맞추는 것이 더 조심스러웠는데, 바람이 부니 익숙한 향기가 맴돌아. 바람에 우리 추억의 날들이 실려와서 날 들뜨게 했다.



나는 , 나는, 오늘은 왠지 용기를 내야 할 것 같아.

머릿속으로 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 라는 인사를 계속 되뇌었다. 눈으로는 당신을 쫓으며 머리로는 ,

'오랜만이네요. 저 기억나시죠.'

라는 말을 속으로 천 번도 넘게 연습했다. 됐어.


나는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내고 뛰어가 당신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돌아보는 당신의 얼굴,



놀라는 당신의 표정,



한결같은 당신의 눈빛,



...그제야 나를 알아보는 그 표정,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



반갑다고 말해 주는 그 목소리.




모든 것이 한순간이었으나 슬로 모션으로 흘러갔다.

머릿속으로 준비한 말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아 나는 횡설수설했고, 당신은 연락처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바보. 젠장. 이 둔탱이. 돌머리.



그래도 번호를 받아서 다행이다. 당장 계속 메시지를 보내며 대화하고 싶지만 나는 참았다. 나는 참는 거 잘해.참고, 참고, 참아서 밤이 오길 기다렸다. 밤은 어찌나 더디 오는지, 나는 밤 열한 시가 되길 기다렸다. 당신은 늘 늦게 잠들잖아. 새벽을 좋아한다고 했잖아.



그날,

우린 처음으로 긴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너무 조심스러워 작은 글자 하나하나도 소중히 남겼고, 당신은 많이 웃었다. 나는 그게 또 좋아서 자꾸 이야기하고 싶어서 질문을 계속했고 멈추고 싶지 않아 계속 말을 이어갔다.



쌤.


ㅇㅇ?


금요일에 머하세요?



그렇게 나는 만날 약속을 잡고 설레는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빨리 만나고 싶다. 빨리 금요일이 오면 좋겠다. 그 사이에 연락을 너무 자주 하지 말아야지. 귀찮아하면 어떻게.

만나기도 전에 질리면 어떡해.



약속 전날, 당신은 우리가 함께 아는 누군가와 같이 보자고 했다. 반가울 거라며.




싫어.

난 당신과 둘이 있고 싶어. 방해 받고 싶지 않아. 우리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잖아. 응?




하고 투덜대고 싶었지만 난 그래요...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언제나 약자는 나니까.

약속 장소에 나온 눈치 없는 그 사람은 예전에 다른 과목 선생님이었다. 말도 더럽게 많았다. 무슨 그렇게 재미없는 일들은 살다가 처음 들어봤다.


나는 그냥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은데 어쩐지 당신은 동행의 말의 맞장구만 쳐 줄 뿐, 딱히 자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나는 당신 이야기가 궁금한데... 저런 놈의 멍청한 소리에 시간을 방해받으려고 기다려 온 게 아닌 데.


당신이 어떻게 지내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좋아하는 노래는 뭔지, 자주 가는 장소는 어딘지, 뭐 그런 거 그냥 요즘 당신의 생각들. 그 생각들 속에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당신은 웃기만 할 뿐 여전히 곁을 내주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었다. 당신은 늘 마음의 자리가 비좁았다. 그래서 마음이 너무 큰 나는 그곳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내 마음의 크기를 줄이고 줄여 아주 작게 축소할 수만 있다면 좋겠는데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벌써 이렇게 또 당신을 보자마자,



쑥쑥 커져버린걸.





우리는 가볍게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다. 나는 너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음에는 어떻게든 꼭 둘이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당신에게 연락이 왔다.


아까 그곳에 노트를 두고 왔다고 했다. 나는 기회다 싶어, 내가 근방이니 노트를 찾아다 주겠다고 했다. 근처 커피점에서 보자고 했다.


나는 용기를 내어 과감하게 술을 사달라고 했고,

그 사람은 알겠다고 했다.



도착하니 조용한 바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노트를 내밀며 자리에 앉았다.



"고마워! 근데 설마 읽어보거나 한건 아니지?"


"에이 아니거든요! 어허! 찾아준 사람에게 이러기예요?"


"크크 그래 고마워 뭐 마실래? 너랑 술을 다 먹다니! 이건 내가 살게!"


"예쓰!! 그럼 와인 마셔요"


"그래 그러자."




쨍-


청아한 와인잔 부딪히는 소리와 진동하는 포도 향내가 달짝지근하였다.

습- 부드럽고 쌉싸름한 유혹이 딱 당신 같았다. 나는 자꾸만 자꾸만 마시고 싶었다. 아무리 마셔도 갈증 나는 당신 같은 맛이었다.


"으음~ 맛있다."


"그렇죠? 괜찮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와인이에요. 깊고 진하면서 부드럽고 어딘가 수줍은 느낌도 있어. 딱 내 스타일이야. 마시면 마실 수록 더 좋아지는..."


"그런가? 난 와인은 잘 모르겠네. 근데 맛있다. 다음에도 이거 사 먹어야지."


"다음엔 제가 살게요. 이거보다 더 맛있는 걸로."


"오~ 정말? 그래? 좋아!"




나는 수줍은 장미처럼 붉게 물들어가는 당신을 빤히 바라봤다. 웃으면 살짝 덧니가 있는데, 그 입술 사이로 혀끝에 부딪히는 소리가 날 때마다 그냥... 좋아요. 막.... 좋아. 확- 그냥 이대로 정말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켜.


꽉 잡고 싶어. 너무 좋아서 꽈악- 끌어안고 당신 목에 얼굴을 묻고 싶어. 깊이 숨을 들이 마시고 싶어.


....

그거 알아요?

나 당신 좋아해요. 정말 정말 정말 많이.

처음 알았던 우리 그 순간부터- 지금 함께 있는 이 공간, 이 순간까지. 그리고 또 마음이 언제 끝날지 모를 그 날까지요. 미치겠다.




나는 당신밖에 모르는 데,



당신, 모르죠?...그때나 지금이나.






이 글은 예전에 써둔 글입니다^^;

감성 감성 열매를 먹어야 뭔가 감성적인 글이 나올 것 같은데. 뭐 좀 더 재밌는 이야기 없을까. 고민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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