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클레멘타인 Oct 03. 2016

(1분소설)꿈

그런거라 믿었다.

K는 오늘도 무언가 열심히다.

그는 연락할 때마다 한층 밝은 목소리로 요즘 너무 바쁘고 그래도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얼마 전 다니던 회사를 당당하게 때려치우고 나온 K는 종종 SNS에서 밝고 희망찬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누군가와 협업하는 이야기, 자신의 단상, 앞으로의 열정, 꿈, 희망, 소신, 기대감, 힘들지만 괜찮다, 부족하지만 열심히 할 거다 등등 아무튼 일종의 희망 고백? 같은 자위가 매일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런거라 믿었다.




나 : 여~ 오랜만, 잘 지냈냐?

K : 왔냐?


나: 뭘 또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냐?

K : 뭐하긴 일하지.


나: 무슨 일을 휴일에도 해. 바빠?

K : 야, 혼자 다 하려고 하면 휴일이 뭐냐, 그런 거 없어. 그냥 계속 일하는 거야. 사장이 세상에서 제일 바빠.


나: 야 사장이 제일 편한거 아니야? 스케줄 맘대로 정하잖아. 그래도 아침에 일찍 안 일어나도 되잖아. 그지 같은 지옥철 안 타도 되고, 조오켔다~. 나도 자유롭고 싶다~

K : 너도 사표 써. 나와. 나랑 같이 하자.


나: 나도 그러고 싶지. 이놈의 텅장만 아니면. 이 텅텅 빈 잔고가 매달 날 옥죈다 옥죄.

K : 뷰웅신. 너 한 달에 얼마 버냐? 한 200? 300?


나: 왜 남의 자금 조사를 하고 이러실까? 무슨 세금 징수하러 나왔냐? 공무 집행해?

K: 그게 아니라 , 너 인마 그 돈 버는 거 그거 진짜 그걸로 될 거 같냐?


나: 되다니 뭐가 , 또 뭔 소릴 하려고 됐어. 븅딱아!

K : 너 저금 얼마나 해?


나: 이 새끼가 뭘 잘 못 처먹었나, 텅장이라고 , 좀 전에 말했잖아. 저금은 무슨. 저금이야. 두꺼비 부랄 터지는 소리 하고 자빠졌어.

K:  그러니까 인마, 너 뼈 빠지게 일하고 어? 실적 올리고 몇 천만 원짜리 일 따오면, 그게 니 돈이냐? 어차피 회사 돈이지. 뭐하려고 남 좋은 일 시켜? 너 일도 잘하잖어.


나: 뭐, 일이야 내가 좀 하지. 어디 가도 안 빠져 내가.

K: 그러니까 나오라고. 너 혼자 독립해서 그 일 니가 따면 그 돈 다 네 거잖어.


나: 야, 그거야 우리 회사 이름 믿고 나한테 일 주는 거지. 내가 따로 나오면 나한테 일 주냐?? 내 자리에 앉은 우리 회사 다른 후배한테 주지.

K: 너 그 정도 능력도 안돼?이거 학교 헛 다녔네.


나: 몰라 인마, 커피나 처먹어.

K: 쯔쯔, 임마, 형이니까 말해 주는 거야. 어? 회사 암만 오래 다녀 봐라. 어차피 무슨 명퇴다 어쩌다 하면 너 어차피 니 일 해야 돼. 회사 한 20년? 다니면 징글징글 딱껌처럼 붙어서 다닌다고 해도, 어차피 니 다시 찾아서 일해야 된다. 그때 어떡할래?

50줄에 다 늙어서 뭐 빠지게 고생할래? 그때 혼자 회사 차리려고 해바. 회사도 안 차려 본 놈이 회사 차리는 게 쉬운 줄 아냐? 남의 돈 따박따박 텅장에 꽂은 습관 버리는 게 쉬운 줄 아냐고. 그리고 그때 까딱해서 자빠지면 남자 못 일어나. 그냥 바로 무덤 파는 거야. 그러니까 인마, 나처럼 한 살이라도 젊고, 어? 그나마 손 털고 일어날 수 있을 때, 책임 질 가족 없을 때 지금부터 연습하는 거야, 연습!


나: 이 새끼 혼자 일 하더니 뭐 개똥철학 많이 늘었다, 어? 그래. 그래서 넌 할만하냐? 어때? 좋겠지 뭐, 말하는 거 들어보니 뭐 완전 사장님이네.

K: 좋지. 힘들긴 한 데 좋아.


나: 그래서 얼마 벌어?

K: 뭐, 그냥... 아직 뭐. 딱히 버는 건 없는 데 내가 이 사업 진짜 아이디어가 괜찮아서 여기저기 투자받아 보려고. 한 3년 정도 생각하고 있어.


나: 뭐? 3년? 그럼 3년 뒤에 사업 시작한다는 말이야?

K: 사업이야 시작했지. 지금 아이템 콘셉트 잡고, 시제품 만들려고 하는 데 아직 사업 서류가 통과가 안되네. 아, 이 둔탱이 같은 공무원들. 이거 진짜 돈만 있으면 대박 아이템인데.


나: 그럼 그동안 어떻게 버틸려고. 진짜 비전이 있긴 해?

K : 있지. 있어. 근데 일단 만들어 봐야지. 이거 되기만 하면 돈 받아서...


나: 야, 안되면 어떻게 되는 데?

K: 이 쇄키 또 똥탕 튀기네. 안되긴 왜 안돼?


나: 인마, 니가 하면 뭐 다 되냐? 그러니까 안 되면 어떡하냐고, 만. 약. 에. 아주 만약에 말이야.

K: 안 될 리가 없어. 그리고 안된다고 해도, 또 좋은 아이디어 많으니까 그때 다시 만들면 돼.


나: 이거 정말 노답이네. 뭔 사업을 그렇게 장님 코끼리 만지기로 하냐?

K: 야, 니 눈엔 이게 막무가내로 보여? 씨알, 지금 휴일도 없이 골머리 싸서 만들어 내고 있는 이 내가 노는 걸로 보이냐고? 어? 잡스도 다 처음엔 사람들이 다 헛소리라 그랬고, 다 창고에서 시작했다 이 말이야. 아무튼 인간들이 남 잘 되기 전에는 죄 무시한다니까. 두고 봐. 내가 존나 잘 되면 너 우리 회사 직원 시켜줄 테니까.


나: 아, 예예에.

K: 아, 예예예. 언능 식기전에 쳐 드세요. 커피.

나: 아, 예예예. 미래 사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K: 예, 그래요. 마음껏 쳐 드세요. 평생 과장님. 그리고 나 존나 바쁘니까 빨리 드시고 가세요. 가서 출근 준비하세요. 저는 일해야 돼요.


나: 지랄 쌈을 싼다. 그래. 바쁜 것 같은데... 나 간다.

K: 어. 가라.


K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열중했다.

진짜 열심히 하는 구나.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괜히 기분이 우울해서 몇 정거장을 걸었다. 갑자기 내 자신이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내 삶은 진짜 내 인생을 살고 있는 걸까?


나 정말 이대로 평생 과장, 부장만 하다가 어느 순간 짤리는 거 아닐까. 그럼 그때부터는 뭐 해야 하지? 이 회사 들어오려고 내가 얼마나 지랄을 했는 데. 면접 학원도 다니고 스피치도 배우고 심지어 서류 작성도 돈 주고 만들었는 데. 회사에서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다 들어가면서, 재수 없는 팀장 앞에서 찍소리도 못 하고 군대보다 더 한 군기 잡는 회사 분위기에도 진짜 낙오 안 되려고 아둥버둥 했는 데...


K 가 옳은 걸까? 나 지금 잘 하고 있나? 나 정말 이 일 좋아서 하는 걸까? 나 진짜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괴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머리가 복잡했다. 괜히 속이 허하고 목이 말라하는 편의점에 들러 카스 캔맥 하나를 샀다. 그리고 편의점 앞에 앉아 그 자리에서 안주도 없이 맥주 한 캔을 벌컥벌컥 마셨다. 끄윽- 트림이 나오니 이제 조금 살 것 같았다. 휴- 머리도 약간 어지럽고 밤공기도 점점 축축해지는 것이 빨리 집으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빨리 들어가서 자고 내일 출근해야지. 아. 출근하기 진짜 싫다.




그 날밤,

K에게서 전화가 왔다. K는 울고 있었다. 나는 잠결에 너무 놀라 벌떡 일어나 무슨 일이냐고 했다. 혀가 잔뜩 꼬부라져 알아듣기 힘든 소리를 내며 막무가내로 울었다. K는 힘들다고 했다. 너무너무 힘들다고 했다. 자기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이제 그런 허세는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솔직히 말해서 다시 회사를 알아볼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너 절대 회사 나오지마. 어? 위에서 지랄을 하든 밑에서 똥을 싸든 !


회사는 절대 나오지 말라고 했다. 그냥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라고 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 새끼가 미쳤나.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머리가 돌았나? 약을 처먹었나, 조울증이라도 왔나?


나는 그 동안 그렇게 열정적이던 K가 갑자기 이러는게 이상했다.


왜 그러는 데, 응? 인마, 너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는 놈이 왜 지럴 이야. 그러니까 그만 울어. 새캬.


나는 되려 그를 위로 해야 했다. K는 나의 위로를 듣자마자 서러운 아이처럼 꺽꺽 소리를 내며 더 크게 울었다. 왜 그냐. 제기랄. 나도 괜히 눈물이 나서 같이 울었다. 이런 씨발. 세상 진짜 뭐 같네. 뭐가 이렇게 힘드냐. 이게 시커먼 남자 둘이 뭐하는 짓이냐고.


보름달이 뜬 새벽, 우리는 작은 전화통을 붙들고 말없이 한참을 그렇게 울기만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해 줄 수밖에 없었다. 둘 다 마땅한 해결책 따위는 없었다. 그냥 울다가 지쳐 잠드는 수 밖에.



저를 포함해? 모든 방황하는 청춘들을 응원합니다. 화이팅.



페이스북


www.facebook.com/loveseaclementine



인스타

@loveseaclementine


브런치

@clementine



+구독 하시면 매일 당신만을 위한 즐거움이 공짜!

매거진의 이전글 (1분소설) 우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