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클레멘타인 Oct 07. 2016

(1분소설) 짝사랑

그 끝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기억을 선택하고 지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나는 널 지울 것이다. 그래야만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



지긋지긋한 짝사랑도 벌써 5년째, 남들은 나보고 미쳤다고 하지만 그래, 사랑이 미치지 않고 어떻게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을 사랑한다고 하겠어?


소개팅을 하더라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너의 SNS 이야기가 더 신경 쓰이고, 니가 좋아한다는 음악이라도 들으면 나도 모르게 자꾸 거기에 빠져들게 되는 걸. 니 감정에 내가 춤을 추니 그래, 정상은 아니지.


그냥 당당하게 '좋아한다. 진짜 좋아한다.' 이렇게 말하고 그냥 거절당하면' 땡'치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러더라고. 나도 생각해봤지. 근데 난 그게 더 싫은 데? 왜 널 내가 포기해야 해? 만약 내 인생에 너라는 사람이 없다면, 난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되어 버릴지도 몰라. 지금까지 니 소식, 니 생각으로 내 여유시간을 보냈는 데, 그런 상상 속에서 너와의 달콤함을 꿈꿔왔는 데, 그런 게 아무것도 없다면 난 뭐가 되는 거지?


우리는 아주 가끔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마주치곤 했어.


너와 나는 같은 친구를 두고 있어서, 그런 소소한 모임이 있거나 작은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그 친구 덕에 널 볼 수 있는 일들이 생겼지. 너를 마주치면 인사 말고 딱히 무슨 말을 건네어야 할지 모르겠어. 그냥 매번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이 말만 했던 것 같아. 등신같지만 도대체 니 앞에 서면 왜 이렇게 얼어버리는지.


너는 늘 주변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있어서 난 늘 한 발짝 떨어져 있었어. 그러다 가끔 눈이라도 마주치는 날에는 나도 모르게 니 눈을 피하게 돼.


혹시나 내 마음이 들킬까 봐 어쩌지 못하고. 한 마디도 못 나누고 그냥 멀리서 너만 바라보다 헤어지는 날도 있어. 그냥 웃고 있는 거 보면 마음이 편해. 근데 주변에서 괜히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맴도는 걸 보면 빡치기도 하고. 너는 늘 사람들에게 친절하니까.



부탁인데 좀 그러지 마. 다른 사람 앞에서 웃는 거 말이야. 그것만 아니면 딱 좋겠다. 아니 더 좋겠다.

 



내가 널 가질 수도 있겠다고 착각한 날은 아마 비가 내렸던 거 같아. 



그날은 너와 친구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만 참석한 날이었지. 그런 적은 처음이라 나는 너무 긴장되고 떨려서 뜨거운 커피에 입천장까지 다 데었던 것 같아.


가까이에서 너랑 숨 쉬고 있으니까 진짜 기분 좋더라. 가끔 친구가 화장실이라도 가면 너는 다정하게 이것저것 물어봐 준 것 같아. 젠장. 나는 왜 이렇게 용기가 없을까. 너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고.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하면 되잖아. 근데 그게 뭐 그렇게 어렵다고 니 앞에 서면 꿀 먹은 벙어리냔 말이야.


이 커다란 마음을 몽땅 꺼내서 니 앞에 펼쳐 놓을 수만 있다면.


카페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은 안 나고,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 뒤 우리는 일어섰어. 밖으로 나와 보니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더라구. 나는 가방에 늘 우산을 들고 다녀서 크게 문제가 없었는 데, 너와 친구는 당황하더라. 그래서 나는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서 너에게 내밀었어.


"저, 이거 쓰고 가."

"어? 우산 있어? 올- 준비된 남자야. 그럼 너는?"

"나, 뭐. 괜찮아. 뛰어가면 돼. 너 써."

"에이. 같이 쓰고 가자. 가다가 우산 하나 사지 뭐."


그때 친구가 덥썩,


"야, 어차피 지하철까지 갈 거잖아. 그냥 같이 쓰고 가자. 가다가 편의점에서 하나 사지 뭐."


라고 하며 나보고 우산을 펼치라고 재촉했어. 나는 얼떨결에 우산을 펼쳤고, 너와 친구가 양 옆에 나란히 붙어섰지.



"야,딱 붙어."


친구가 내 어깨 넘어 너를 당기며 내 쪽으로 잡아끌었어. 작은 우산에 성인 셋이서 참 가관도 아니었지.


너는 어? 어. 하며 내 옆에 착 붙더니 우산을 든 내 한쪽 팔을 붙잡았어. 그 순간, 나는 중간에서 우산을 든 채로 기절할 뻔했지 뭐야. 정말 심장이 데굴데굴 굴러 떨어지는 순간이었어.


이렇게 가까이.

너랑 같이 이렇게 우산을 쓰고 걷다니...


갑자기 친구 새끼가 드럽게 싫어지더라. 아니지, 친구 덕인가? 아니야, 비가 와서 그런가, 아니지. 내가 철저해서 그래. 나는 언젠가는 너와 이런 순간이 한 번쯤은, 살다가 정말 딱 한번쯤은 올 거라 예상했어. 진짜야.




벌써 5년이잖아.



그날 저녁에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어.



잠이 오면 미친놈이지. 잘 들어갔냐는 너의 카톡이 온 거야.


지금까지 한 번도 너한테서 개인적으로 카톡이 온 역사가 없던 나인데, 그 많은 친구들 중에서 드디어 너와 개인적으로 이야기하는 날이 오는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나는 샤워하다가 너무 놀래서 대충 씻고 밖으로 뛰어나와 소리를 질렀어.



"잘 들어갔어?"

"응, 너는?"

"덕분에"



"그래, 감기 걸리겠다. 따뜻한 차라도 마시고 이불 잘 덮고 자."

"ㅇㅇ 너두"

"잘자라. 좋은 꿈 꾸고"


"응, 나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되서 빨리 자야해."

"몇 시에?"

"새벽 5시에는 일어나야함.ㅠㅠ"


나는 고민했어.

미친 용기가 필요해.


"내가 꺠워줄까?"

"너 그때 일어나? 쩐다."

"나 원래 아침에 조깅해. 나 딱 일어나는 시간이네.

(당연히 뻥이지.)


"오~레알? 그럼 전화 좀 !"

"ㅇㅋ"

"고마워!"


"굿빰!

"ㅇㅇ"




미친. 내 인생 최고의 날이다. 계탔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너와 점점 가까워질 수 있었어. 매일이 꿈같고, 마치 사귀는 연인이라도 된 것처럼 나는 너와 연락을 나눴지. 너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나에게 카톡으로 하소연했잖아. 나는 니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지 듣고 싶고, 관심이 있었어. 너니까. 니 얘기니까. 가끔 넌 답장이 늦긴 했지만, 당연히 일이 바빠서 그렇거니 했어.




하지만 너는 너무 솔직해서 탈이야. 나는 점점 너의 남사친이 되어 가고 있었던 거야. 그냥 남자가 아니라.


.

.

.


나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그날도 기분 좋게 같이 맥주 한 잔을 하다 날벼락같은 소리를 했지. 나는 너무 놀라 딸꾹질이 났어. 누군데?


... 알고 있었어. 짝사랑의 끝은 늘 정해져 있잖아. 이루어지지 않아. 나도 알고 있어. 이루어질 거였으면 아마 너도 신호를 보내왔겠지. 이렇게 니 곁을 맴도는 날 긍휼히 여겨 그 어떤 신호라도 보냈겠지. 하지만 넌 한 번도 그런 적 없어. 그냥 좋은 친구, 넌 좋은 사람, 넌 좋은 남자, 빨리 애인 만나라, 빨리 누구랑 연애라도 해라. 내 마음 다 알면서 너 역시 마음에 없는 말로 결론을 짓곤 했지.


이상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던 거야. 너와 나는.


그래도 그렇게 화가 나지는 않았어. 기분은 조금 나빴지만, 니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걸 처음 본 것도 아니고. 그런데 이번은 느낌이 이상하더라. 사람 촉이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건가? 지난번 누군가와의 만남보다 더 지독하게 열병에 걸린 것 같아보였어. 나는 너에게서 나의 얼굴을 봤어.


너는... 정말 사랑에 빠져 있었어.



그 일로 너는 가끔 내게 고민이 있다며 상담을 해 왔어. 나쁜 녀석. 그럼 나는 더 나쁜 사람이 될래. 나는 아무렇지 않게 너의 기분을 나쁜 쪽으로 몰아갔지. 내가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겠어. 너의 불안을 최대한 증폭시켜서 의심이 생기길 바랬어. 그 의심이 꽃을 피우고 단 한순간이면 돼. 딱 한 순간. 그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의심을 확신하는 순간이 오거든. 


나는 그러길 바랬어. 나쁜 놈이라 욕 해도 상관없어. 나도 살아야지.

그래서 다시 널 찾을 수 있기를... 널 위로해 줄 사람이 나 밖에 없기를.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너는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넌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걸.



짝사랑한지도 벌써 5년, 너는 청첩장을 보내왔지.




짝사랑의 끝은 결국 이런 건가. 참 지랄 맞다. 이걸 모르는 사람도 있나? 모르는 척하고 싶은 것뿐이지. 상대에게 연인이 있어도 버틸 수 있었지만, 결혼을 한다고 하니 정말 강제 종료되는 기분이더라. 쫓겨나는 기분 알아? 너무 허무해.


나는 그 뒤로 사랑이라는 감정에 분노를 느낀다고 해야 할까. 아니, 의욕을 잃었다고 해야 맞겠지. 그리고 더 짜증 나는 건 뭔지 알아? 난 여전히 너의 SNS를 보고, 너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거야. 그러면서 나는 상상하지.


언제쯤 너는 그 가짜 행복에서 벗어날까.


너의 삶에서 불행한 순간이 올 때마다 내가 기억이 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네가 너무 힘들어서 세상에 기댈 사람 하나 없다고 느낄 때 그때 내가 떠올랐으면 좋겠다.



나는 매일이 힘들어서, 세상에 기댈 사람이 너 밖에 없어서, 매일 네 생각뿐인 것처럼 말이야.



젠장.

누군가를 좋아한 다는 건 마음에 큰 돌을 지고 있는 거야. 때로는 그게 너무 무거워서 버리고 싶기도 하고, 내가 왜 이런 돌을 품고 다녀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지. 그 돌이 절대로 뭔가 생명체로 변하거나 다른 어떤 걸로 대체될 일이 없어도 그냥 품고 다니는 거야. 막연하게 보석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 내겐 보석이다 라는 착각을 하면서. 결국 돌은 돌일 뿐인데.



그래도 내가 좋으면 그만인, 그걸 인정해 주지 않는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감정의 돌일 뿐이야.


.

.

.

그리고 어느덧 니가 없는 삶에 익숙해지는 나를 발견했지.

그냥 일하고, 밥 먹고, 웃기도 하고, 다른 고민들도 하고 그래. 단지 너에 대한 어떤 열망이 좀 사그라 들은 것뿐. 나는 SNS를 탈퇴해 버렸지. 한 동안 탈퇴한 SNS를 오히려 더 집착하며 인터넷에 주소를 쳐 가며 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어. 근데 점점 멀어지긴 하더라. 자꾸 눈에 박히던 가시도 빼고 나면 아물더라.




지금은 나 좋다는 사람도 있고, 그렇다고 막 그 사람을 그때 너처럼 사랑할 자신은 없어. 그건 솔직한 내 심정이야. 지금 이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래서 때로는 네가 너무 싫기도 하고, 내가 너무 지겹기도 하고, 뭐 그래.



아, 시간은 멈추지 않는 데 왜 나는 여전히 굼뜬 인간인지. 돌이킬 수 있는 타임머신 같은 것도 없는 데, 난 왜 이런 인간인 건지. 짝사랑은 정말 지독하다야.




아-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기억을 선택하고 지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나는 널 지울 것이다. 그래야만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





<작가와 가까워 지는 방법>

www.facebook.com/loveseaclementine

인스타 @loveseaclementine

브런치@clementine


바다를 사랑한클레멘타인



!!아랫 쪽에 구독하기 버튼 클릭!!



매거진의 이전글 (1분소설)다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