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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Oct 07. 2016

(1분소설)다음

인생에 다음은 없다.


"돌쇠야, 아, 돌쇠 이놈아 거기 없냐!! 이 망할노므 자식이 또 어디로 간 거야? 돌쇠야!!"


최 판서는 독이 바짝 오른 독사처럼 고개를 치들고 쉭쉭- 욕을 쏘아 뱉었다.  


"이 곤장을 쳐 맞을 놈! 하라는 일은 안 하고 뻑하면 놀 요량이니, 에휴 저놈 아가리에 들어가는 풀 하나도 아깝구나. 야- 이놈 돌쇠 자식아!"


"예 예, 예 주인마님."


"저저 굼뜬 꼬락서니 하고는 원. 이 돼먹지 못한 놈아. 넌 뭐하느라고 불러도 대답이 없어? 어? 이게 아주 주인 알기를 지나가는 개새끼보다 못하게 알지?"


"아이구, 아닙니다요. 주인어른. 오전에 마님께서 저 앞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라기에 거기 다녀오는 길입니다요.  감히 제가 어찌. 그런 생각은 추호도 한 적이 없습니다요 주인어른."



돌쇠는 땅에 납죽 엎드려 머리를 있는 대로 땅에 박았다. 최 판서는 분을 삭이지 못해 버선발로 성큼성큼 내려와 발로 있는 힘껏 돌쇠를 팍- 밀어붙였다. 썩을 놈. 식식.


"으억!"


"예이 쓸모없는 놈. 천하에 버러지 같은 놈. 내 곡간에 밥만 축내는 놈. 느려 터져가지고 내가 지나가는 동네 개를 불러도 너보다 잘 하겠다. 에잇 퉤!!."



최 판서는 땅바닥에 마른침을 퉤 하고 뱉어냈고, 돌쇠는 어구구구- 옆구리를 부여잡고 나동그라졌다.



"저저 또 일하기 싫어서 엄살 부리는 꼴 좀 보게. 더 쳐 맞기 싫으면 그 드러운 볼기짝 들고 어서 가서 물 한 그릇 떠와! 이 굼벵이 같은 놈아. 아까부터 목말라죽겠구먼 으휴, 저 놈 때문에 제 명에 못 살지."



돌쇠는 마치 거북이 마냥 땅바닥을 굼실굼실 기어서 앞으로 가다가 옆구리를 부여잡고 비틀비틀 물을 뜨러 간다. 그리고 물 한 그릇을 쟁반에 받쳐 들고 최 판서에게 갖다 바친다.



"커억- 시원하다. 이제야 좀 살겠네. 휴휴휴. 그나저나 우리 우순이는 이제 곧 막달이지? "


"예 주인어른, 조만간 새끼가 나올 것 같습니다. 우순이 고년이 아주 예민해졌습니다요. "


"그래, 짐승이든 사람이든 지 새끼한테는 목을 매기 마련이지. 너 같은 쌍놈이 뭘 알겠냐만은. 다 자기 자리에서 지켜야 할 도리가 있고, 모든 생명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도가 있지. 에휴. 얼빠진 놈한테 내가 무슨 얘길 하겠냐. 가서 일 봐라."


"예, 주인어른. 쉬셔요."


"또 농땡이 칠 생각일랑 하지 말고. 부르면 재깍재깍 달려와. 다음에도 늦으면 경을 칠 것이야."


"예,주인어른. 예."




주인의 욕을 한 바가지 먹은 이내 돌쇠는 외양간 옆으로 가 장작을 팼다. 턱턱- 시원하게 나무가 쪼개져 나갔다.

돌쇠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고 잠시 허리를 피려고 하자, 으윽-  아까 맞은 옆구리가 너무 욱신 거렸다.


아야...


돌쇠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잠시 몸을 웅크렸다.

일어나 보려고 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몸이 잘 펴지지 않았다.


흐음...


돌쇠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안정을 찾으려고 했다. 오늘 밤에도 편안하게 자기는 그른 것 같다.

지랄 같은 주인어른의 행패는 익숙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오늘은 잘 못 맞은 것 같다.



음무-




외양간에서 우순이가 가뿐 숨을 뱉었다.


쇄액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길-게 목청을 뽑아냈다.




음무-우우-




우순이의 배는 한 껏 부풀어져 있었고 묵직해 보였다.

금방이라도 새끼가 가랑이 사이로 줄줄 쏟아져 나올 것 같은 모양새였다.  때문에 우순이는 잘 움직이지도 못 하고 숨 쉬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


씨벌. 죽어라 일만 하는 소나 내 인생이나 다를 게 하나도 없구만.

이제 곧 태어나는 소새끼도 곧 힘만 쓰다가 결국 밥상에 고깃국 신세가 되겠지.

씨벌.


돌쇠는 카악 퉤 하고 마당에 침을 뱉었다. 그런데 침 색깔이 불그죽죽 한 것이 영 보기가 나빴다.

돌쇠는 입에서 쇠 맛이 돌아 다시 한번 침을 퉤! 뱉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돌쇠야. 돌쇠야. 돌쇠야."

"썩을 놈아. 후레자식아. 염병할 놈아. "

"곤장을 쳐 맞을 놈.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 천생 노비 같은 놈."



최 판서는 돌쇠가 없으면 아무 일도 못 하는 머저리 상등신 같았다. 하루 종일 돌쇠를 부르고 또 불렀다.

덕분에 돌쇠는 주인이 눈 뜬 순간부터 다시 잠들 때까지, 아니 잠든 순간에도 늘 노심초사하면서 하루를 보내야 했다. 어떤 날은 최판서의 무소식이 불안하기도 했다.


이윽고 희뿌연 하늘 넘어 새초롬한 초승달이 뜨고, 최 판서의 집도 겨우 쥐 죽은 듯 잠잠해졌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돌쇠만 뜬 눈으로 방안에서 잠 못 이루고 있었다.


아아아...


그날 밤 돌쇠는 영 숨 쉬기가 어렵고 가슴이 묵직하게 뻐근했다.   



..어유, 후 스읍...후. 가만있자. 왜 이런데. 니미럴.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가진 건 몸뚱이밖에 없는 데 이것마저 지랄이네 지랄이. 아…….



돌쇠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한껏 말아 웅크렸다. 끄응. 온몸이 불에 덴 듯 화끈 거렸고, 식은땀이 비 오듯 줄줄줄 흘렀다. 돌쇠의 옷에서는 꼬릿꼬릿한 죽음의 땀내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돌쇠의 정신은 땀으로 푹 젖었고, 끊임없이 기침을 콜록콜록 해댔다.



콜록- 콜록- 쿠아악, 푸웁.



으헉! 이게 뭐시여.


돌쇠의 입에서 시뻘건 피가 한가득 뿜어져 나왔다.

돌쇠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니미. 이렇게 죽는 건가. 시버럴. 아직 장가도 못 가고, 요로코롬 총각 개구신이 된단 말인가. 아직 옆 동네 의분이도 못 품었고, 아직 나 닮은 자식새끼도 못 봤는데! 억울혀. 너무 억울혀. 진짜 이렇게 죽는 건가?


돌쇠는 지금 상황이 때려죽일 만큼 억울했다. 벌겋게 충혈된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마구 쏟아져 내렸다.


으허허어엉ㅇㅇ엉엉ㅇㅇㅇㅇ...어이고 아부지이이이....콜록, 콜록...엉엉엉...


돌쇠는 태어나 처음으로 엉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최 판서의 더러운 욕에도 이유 없는 매질에도 단 한번도 눈물 보인적 없는 돌쇠였다. 그려. 내가 조금만 더 잘하믄, 내가 못났으니께, 18살 되면 의분이랑 혼사도 치뤄준다고 했으니께...이런 생각으로 우직하게 참아온 돌쇠였다.


그러나 탑승해야만 하는 죽음의 배를 앞두고,

이렇게 노비로 태어나 죽어라 일만 하다, 장가도 못 가고 죽는 제 자신이 너무 가여웠다.

그리고 별 것 없이 발길질만 해대는 최 판서가 미웠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 최 판서 놈 목을 당장 졸라 죽여 버리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멀리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시뻘. 어차피 이렇게 죽을 거면,어,이렇게 뒈지나 저렇게 뒈지나 한번 밖에 못 산다면,


내 죽기 전에 저, 최 판서 놈이라도 죽이고 죽는 게 낫겠다,

오물통에 콱 박아서 바둥 거리는 꼴이라도 봐야 속이 시원하겠다,

아니, 주방에 있는 산해진미라도 다 훔쳐 먹고 죽는 게 낫겠다,

그래, 거기다 사랑방에 있는 최 판서 쩐이라도 훔쳐 달아나서, 옆 마을에서 몰래 양반 문서를 사고 양반 노릇 하루라도 해보고 죽는 게 낫겠다, 그려,


 이대로 죽을 수 없어!!


 

돌쇠는 별에 별 억울한 생각들이 그 와중에 촌각을 다투며 머리를 휘저었다.

그리고 아픈 몸뚱이보다 그런 생각들이 더 자신을 괴롭혔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돌쇠는 점점 기억이 희미해졌다.  음무우우- 멀리서 고통에 찬 소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까무러지는 눈을 하며 돌쇠는

다시는, 죽어도 다시는 노비로 태어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음 생애에는 그럴싸한 양반집 자제로 태어나 한 세상을 호령하며 살리라…….  




다음 날 돌쇠는 멍석에 대충 말아져 멀리 돌산에 묻혔다.

그렇게 열일곱의 생은 너무나도 짧았고, 간소하고, 보잘 것 없었다.




그러나 단 한사람,

최 판서는 또 빌어먹을 식충이 노비를 돈으로 사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벌컥! 짜증이 밀려왔다.  



에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 한참 일할 나이에 요절을 하니 거 정말 경을 칠 놈이다.

내 그 동안 먹여주고 재워준 걸 생각하니 부아가 치민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 쫓아가 죽은 놈 아가리를 가로, 세로로 찢어 그 동안 처먹은 걸 도로 뱉어내게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제야 밥값 좀 하나 했더니. 가장 열심히 일할 나이인데, 발길질 한 번에 고꾸라지니 원. 재수도 옴 붙었다.퉤잇!




다음에 노비를 살 때는 일단 허약한 놈 말고, 무조건 튼튼한 놈으로. 일 잘하고 똘똘하고 그리고 건강을 잘 따져보고 오래오래 살만한 놈으로 사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에필로그> 최판서 이야기.


그렇지. 내가 누군데. 인생이 꼭 나쁜 일만 있으란 법은 없다. 간밤에 우순이가 새끼를 떡 하니 낳았다.

소는 농사일에 필수라 잘 키우는 게 중요하다. 무탈하게 무럭무럭 잘 커서 새끼까지 낳으면 복 있는 녀석이다.

우순이는 그런 면에서 어제 발길질 한방에 나가 뒤진 돌쇠 새끼보다 백배 천배 낫다. 암 그렇고 말고.


나는 집안에 새로운 일꾼이 자연스럽게 생긴 게 기분이 좋아져, 우순이 새끼를 보러 외양간으로 갔다.


허- 요놈 보게. 조그만 녀석이 벌써 네발로 버티고 서있는 걸 보니 저 녀석은 지 애미 닮아 튼튼하겠구먼. 오냐오냐. 잘 먹고 일 열심히 하자. 응?


하인들을 시켜서 든든히 잘 먹이라고 해야겠다.


비틀비틀, 우순이 새끼가 흔들리는 다리로 가까이 다가온다. 옳지. 옳지 귀여운 녀석. 주인을 벌써 알아보는 구나? 빨리빨리 커서 너도 밥값 해야지. 응? 그렇지?


꺼먼 눈동자의 우순이 새끼가 빤히 쳐다본다. 둥글고 촉촉한 저 눈, 올망졸망한 것이…….

이상하다.  어디서 봤더라,..


요래...가만가만 소 새끼를 보고 있는 데,

,자꾸, 돌쇠 녀석의 얼굴이 어른어른 보이는지 모르겠다.


저 눈깔, 순둥 하면서도 뭔가 생각을 읽을 수 없는 저 눈깔, 뒈진 돌쇠가 다시 돌아온 건가? 설마.



우순이 새끼가 처음으로 음무-우하고

억울한 듯 길게 울음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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