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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Oct 13. 2016

(1분소설) Blue Day

잠시 머물다

한 순간 짧은 만남이었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


늦겨울로 들어서는 황량한 길목을 서성이다 싸늘한 고독의 냄새가 일상을 가로 막을 때 그때, 떨어진 눈처럼 내 발 밑에서 나뒹구는 그런,그런, 기억의 한 조각이 있다.


띠리리링


"어서오세요. 몇 분이세요?"


"저...



 혼자요."


종종 혼자 노래방을 오는 손님이 있다. 대부분 남자 손님이 도우미를 부르려는 요량으로 혼자 오긴 하지만 아주 드물게 여자 혼자 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녀들은 아이들이 학원을 가고 남편이 회사에 있는 오후 3시나 4시 처럼 어정쩡한 시간에 홀로 와 목청을 있는 힘껏 놓고, 남편 퇴근 시간이 되기 전에 돌아간다. 대부분 슬픈 노래로 시작해 댄스나 락으로 끝낸다.





그런데 그날의 그녀는 그런 타입은 아니었다. 일상의 탈출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일상의 그늘에 갇히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음. 그러니까 그녀는

그냥 시리고 메마,이름 모를 겨울 바람 같은 느낌이랄까.


음. 그녀가 처음 우리 노래방에 온 건, 어디 보자, 작년 겨울 크리스마스를 일주일쯤 앞두고 였을 거다.


12월은 아무래도 행사나 모임이 많아서 단체 손님이 많다. 저녁이 되면 떼거지로 와서 노는 데 방을 지저분하게 쓸뿐 그닥 메리트는 없다. 대신 술이 들어가면 매상이 다른 때 보다 꽤 쏠쏠한 편이다.


하지만 다들 사는 게 힘들고, 노래밤, 노래빵, 술파는 노래방 등등 각종 유사 업종들이 문어발처럼 늘어나면서 가게 매상은 곤두박질 쳤다. 그 여파로 몇 년 전 부터 겨울 피크타임의 매상도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는 데, 그것 때문에 매년 가게를 이제 팔아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였다.




띠리디링



"어서오세요. 몇 분이세요?"


"저..한 시간에 얼마에요?"


"만 2천원 입니다. 서비스 많이 드리니까 걱정마세요. 몇 분이신가요?"


"아..


저..혼자..."


여자 혼자 였다.


"네? 아, 네네... 지금 결제 도와드릴게요. 만 2천원 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1번 방으로 오세요. 저 따라 오세요."




까만 긴 머리에 빨간 니트 목도리로 얼굴을 다 덮은 그녀가 지날 때 겨울 바람 냄새가 물씬 났다. 그녀는 조신하게 내 뒤를 따라왔다. 대부분 혼자 오는 여자들은 사연이 있는 데, 남친한테 차였나? 뭐 그런 상상을 했던 것 같다. 목도리로 얼굴이 둘둘 감싸져 있어서 당시에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녀가 온 뒤로 곧이어 단체가 오고 정신이 없었다.


30분이 지나고 나니 그제서야 뭔가 좀 이상한 것 같았다. 노래방에 있으면 본의 아니게 손님들의 노래 실력을? 알게 되는 데 혼자 온 여자의 노래가 들리지 않는 거다. 그러니까 계속 해서 반주만 나오고 아무 소리도 안난다는 걸 30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뭐지? 이상한 데. 뭔 짓 하는 거야.



나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해서 괜히 음료수를 들고 1번 방을 기웃 거렸다. 그녀는 모니터를 향해 등을 돌리고 있는 데, 얼핏 보니 마이크는 손에 쥐고 있어도 노래를 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어쩌까나. 들어가 볼까나. 괜히 욕먹는 거 아니야?



나는 잠시 고민하다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노래 소리에 노크 소리가 들리지 않는 지 여자는 뒤를 돌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쾅쾅. 크게 문을 두리고 동시에 문을 열었다. 순간 여자가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는 데




생각보다 꽤 미인이었다.



나는 그녀의 외모멈칫하고 섰다가,




"실례합니다. 서비스 음료수 드립니다."




하면서 음료수와 새우깡을 내밀었다. 그제서야 여자는 웃으며 고맙습니다. 인사를 했다. 그제야 나는 마음이 좀 안심 되었다. 뭐야. 멀쩡한 것 같은 데 머리가 좀 이상한가?





"근데 손님, 죄송하지만 왜 노래를 안 하세요? 혹시 마이크가 고장 났나요?"


"예? 아..아니에요."


"아, 노래 소리가 안 들리길래. 혹시 저는 기계 고장인가 걱정되서요^^"


"그냥 노래 듣고 있었어요."


"예?"


"좋아하는 노래인데 노래는 잘 못 불러서. 그냥 들으러 왔어요."


"아, 그러시구나. 무슨 노래길래 노래방까지 와서 들으세요? 정말 좋아하시나보다. 하하하."



나는 밍기적 거리며 괜한 농을 거는 건 아닌가 걱정되었다. 근데 왠지 그냥 나가기 싫은 그런 마음이 들었다. 자꾸 말을 걸게 되는 그런...


"포지션의 BLUE DAY 란 노래 아세요?"


"음... 뭐더라?"


"잠깐만요"





여자는 예약된 노래를 다시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예약된 곡이 죄 같은 노래였다. 포지션의 블루데이. 전주를 듣다보니 아, 이 노래.




지친 내 눈을 깨우며 쏟아지는 햇살에

오늘도 난 못 이긴척 담배에 불을 붙여


내가 왜 일어나는 지 이유도 알지 못 한채

메마른 내 입술은 또 하루를 살겠지






"이 노래 아세요?"


"아, 예. 저도 좋아해요. 이 노래. 이 노래 진짜 팬이신가보다. 그럼 즐거운 시간..."


"저! 잠깐만요!"


"예?"


"저기...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뭐..."



"이 노래 한 번만 불러주시면 안되요?"





나는 고민이 되었다. 알긴 아는 데 내 음역에 맞지 않는 데. 이제와서 모른다고 할 수도 없고.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눈빛을 보니 차마 싫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노래방에서 일을 하면 손님들은 노래 한곡 해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니다. 마치 술집을 하면 사장, 술 한잔해 와 비슷한 늬앙스로 사장, 노래 한곡해 이런 말들을 잘 한다. 주로 술에 취한 손님들이 하는 말이지만.



때때로 아줌마 부대들이 와서 치근거리며 농을 걸때도 있다. 남자든 여자든 결혼하고 나면 부끄러운게 없어지는 지 노골적인 성 드립도 심심치 않게 해댄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깔깔깔 껄껄껄 거리는 데 솔직히 그다지 재미는 없다.


그러나 나도 나이를 먹었는 지 어릴 때는 기분이 나빴는 데 요즘은 장사라 생각하고 성적인 농에도 그냥 맞받아 쳐준다.





"그럼 노래는 잘 못 하지만 한 번 해볼까요?"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 빛이 났다. 나는 괜히 어깨가 으쓱해져 마이크를 들고 한 껏 감정을 잡았다. 키를 한 키 낮출까 조금 고민을 하다가 에라이,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노래를 불렀다.





노래때문일까.

나까지 감정에 도취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대 긴머리를 풀고 잠을 청해보나요

그 누구의 품에 안겨 나를 잊어 가나요


이밤 나 그대 꿈꾸던 그자리에 잠이 들죠

아직도 그대만의 숨결을 느끼면서





크. 내가 생각해도 좀 잘 나온것 같다.

가끔 목이 안 트이는 날이 있는 데 다행히 오늘은 성대가 아주 기름이 좔좔 흐른다. 이 정도면 뭐 누구든 넘어오지 않고 베기겠어? 하고 의기양양하게 그녀를 봤는 데,





울고 있었다.




그 정도야? 헐. 나 아직 안 죽었네.




뭔가 분위기가 뻘쭘해 나는 웃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아이구, 손님 우시는 거에요? 캬, 내가 또 감동 한 카트 먹였네. 휴지가... 가만 있어보자."



하는 데, 그녀는 벌떡 일어나더니 '안녕히 계세요' 라는 말을 흐린 채 나가버렸다.





...? 이거 무슨 시츄에이션?





나는 뭐야. 별 미친년이 다 있네. 하면서 황당한 표정으로 1번 룸 안에 그대로 서있었다. 옆 방에서는 음정 ,박자 모두 탈출한 알 수 없는 노래를 열창하고 있었다. 기계에서 예약된 '포지션의 BLUE DAY' 가 다시 자동으로 흘러나왔다. 나는 왠지 짜증이 나면서도 궁금해졌다.





기껏 해달라고 해서 해줬더니.

내가 뭘 잘 못 한 걸까? 왜 우는 거지? 노래가 그지 같았나?아씌 왜 우는거야? 신경쓰이게.





그 후로도  나는 그녀의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 일이 일어난건,

눈이 엄청 쏟아지던 12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낮부터 학생들, 가족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냈다. 나는 시간 조절을 해가며 손님을 빼고 넣고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런 날은 알바 하나쯤 있으면 더 좋은 데, 며칠 너무 바빠서 사람 구할 생각도 하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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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뉴이어!



TV에서 폭죽이 터지고 사람들의 환호가 보였다. 제야의 종이 뎅뎅 하고 울렸다. 젠장. 또 한살 먹는 군. 가게를 시작한 이후로 이렇다할 이벤트나 여행은 가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벌써 5년 째 가게에서 혼자 쓸쓸히 새해를 맞이 해야만 했다. 장사를 한다는 건 때론 외로운 일이다. 그러니까 이 좁은 카운터에서 평생을 바치면서 살 생각을 하니 때로는 내 인생이 너무 우울하게 느껴졌다.


TV에서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 놀러온 손님들의 얼굴에는 언제나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늘 놀고 있는 그들을 상대로 일을 해야 했다. 하루라도 문을 닫으면 매출에 영향이 있어서 그러지도 못 했다. 게다가 연휴에 사람들이 노래방을 찾으니 나는 딱히 놀 시간도 없었다


한 번은 명절에 제사를 하고 있는 순간에도,


"사장님 문 열었어요?"


하고 전화가 왔다. 그러면 나는 손님을 놓치기 싫어서 다 팽개치고 가게로 달려왔다. 때로는 기다리다 돌아갔다는 말을 할 때마다 알 수 없는 무기력함이 밀려오곤 했다. 노래방은 늘어만 가고, 손님은 한 정 되어 있으니 그저 단골을 놓치지 않는 것만이 살 길이었다.



이 얘기는 그냥 번외인데

노래방을 할 때 가장 심각한 문제가 두 가지를 말하자면,



하나는 청소년의 문제이고 하나는 술이다. 요즘은 애들이 나이를 속이면 알아내기가 힘들어. 왜 이렇게 노안인지. 게다가 그런 애들이 술까지 먹고 말썽을 피우면 정말 골때리게 된다. 경찰서를 몇 번을 들락날락 해야하는 지 모른다. 영업정지라도 걸리는 날이면 있는 울며 겨자 먹기로 강제 휴일을 해야 하는 데 손해가 이만 저만 아니다. 지들이야 한 때 추억이고 재미겠지만, 당하는 나에게는 커다란 손실이다.


나도 장사하다보니 생존 욕구가 커져 때로는 밖에 샷다만 내리고 안에서 몰래 장사 할 때도 있다. 월세는 내야지.


애들도 문제지만 어른들은 더 가관이다. 애들은 어려서 철이 없다고 쳐. 나이만 먹었지 하는 짓은 애나 어른이나 별 다를 게 없다. 진짜 진상들은 술과 안주 그리고 도우미까지 불러서 세 시간 열심히 놀고 신고하는 인간들이다. 수법이 아주 악랄해서 노래방 협회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간도 있다. 진짜 몇 만원 때문에 왜 그러고 살지? 란 생각을 많이 해봤는 데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무전취식을 권리처럼 사용하며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을 볼 때 마다 참 세상살이의 다양함을 느낀다.




1월 1일 새벽 4시가 되어 가고 나도 슬슬 문을 닫을까. 가게 정리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오니 한 여자 손님이 앉아 있다.





"으 추워. 눈도 참...죄송합니다. 어서 오세...?어?"






뒤돌아본 사람은 , 그녀였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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