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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Oct 14. 2016

(1분소설) 미세인간

피를 맺은 사이

제가 이렇게 된 건 일 년 전, 추석 날 밤이었습니다.

아, 지금 생각해도 소름 끼치는 날이었죠.



추석을 하루 앞두고 큰 집이었던 저희 가족은,

다음 날 올 친척들을 위해 장을 보느라 하루 종일 진이 빠져 있었죠. 큰 아들이자 집안 장손인 저는 면접 조별 모임도 빠지고 어머니를 도와 짐꾼 노릇을 해야 했습니다. 휴.


이른 아침부터 오후가 될 때까지 몇 시간 중앙 시장에서 이마트까지 끌려 다녔답니다. 왜 저희 어머니는 같은 물건을 또 보고 또 보고 만졌다가 내려놨다가 하는 걸까요.


이거 어때? 하고 물으시면 괜찮은 데요? 라고 대답해도 그 옆에 걸 집으시고 그럼 이건 어때?라고 하시죠. 저는 그래요 그럼 그걸로 하세요 라고 하지만 가만있어보자...라는 대답으로 같은 물건을 계속 째려보고 계신다니까요.


어머니와 장 보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객관식입니다.


하지만 그런 저의 노력은 아무도 몰라주더군요. 왜냐면 전 장남에 장손으로 태어났으니까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처럼 여겼어요.


넌 이 집안 기둥이니까

넌 남자니까

넌 장남이니까

넌 우리 이씨 가문 장손이니까

넌 서른이니까


난 태어났으니까



그게 무서운 거예요. 사람으로 태어났는 데 무엇으로 태어냤나에 따라 의례 해야만 하는 일들이 존재한다는 게.

그렇다고 제가 손이 네 개이거나 발이 여섯 개가 달려서 태어난 것도 아니잖아요? 그냥 태어났을 뿐인데 그런 감투와 기대심의 허물은 왜 덮어 씌어주는 거죠?





전 싫어요. 그건 제가 아닌걸요.




"얘 동훈아, 아들!! 이리 나와봐. 제기 좀 닦아!"



저는 명절 전날부터 미치도록 예민해져 있는 어머니가 무서웠습니다. 옆 집 아줌마보다 훨씬 적게 만나는 친척들이라는 이름의 사람들은, 매년 딱 두 번, 찾아와 집안을 들쑤시고 다니니까요. 일 년에 두 번이라니. 생각해보세요. 일 년에 두 번, 딱 이틀, 그게 정말 정으로 이어진 사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초코파이를 나누는 사이보다 더 느슨한 관계인데도 말입니다.



아 물론 베스트 프렌드, 배꼽 친구, 동창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몇 년에 한 번 만나도 반갑죠. 인정해요. 밖에서 만나면 다 반가워요. 그런데 문제는 요. 집안 깊숙이 들어와서 미주알고주알 따져 대지는 않잖아요. 근데 친척이라는 이름의 족속들은 올 때마다 빠짐없이 집안을 은근한 기싸움의 경기장으로 만들어 놓아요. 저는 힘없이 휘말리는 검투사일 뿐이죠.



진짜 가만히 있는 저만 새우등이 터진다니까요. 제가 뭔 죄라고.



그날도 어머니를 도와 이것저것 제사 준비를 하고, 저는 해야 할 공부도 못 하고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어요. 빨리 취업해야 하는 데 학교 휴학을 두 번 하고 군대까지 다녀오니 벌써 서른인걸요. 서른이요. 앞자리가 바뀌고 나면 보는 눈들이 뭐랄까. 안타까움에서 무시로 바뀌어요. 그건 가족들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너무 솔직한 가요?


물론 부모님은 걱정이 더 크시죠. 안에서는 걱정이 크신데 진짜 문제는 바깥에 있어요. 그러니까 외부인, 이 외부인들이 한 번씩 귀신같이 들어와서 저희 부모님의 불안을 조롱으로 바꾸어 놓아요.


물론 저 때문입니다. 제가 죽일 놈이죠. 근데요 어떡해요. 군대 안 가면 대한민국에서 무슨 취급받는지 아시죠? 정확한 문제가 있어서 빠지는 사람 제외하고 무조건 가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제가 취업 때문에 취업 준비해야 하니까 안 간다고 하면, 누가 오케이 해주겠어요? 미쳤다고 하겠지.


"동훈아 너 내일 뭐 입을 거야? 어? 어유 그리고 그놈의 머리 좀 깎고 와. 엄마는 아들 머리가 너무 길어서 별로다. 응? 요 앞에 미용실 갔다 와. 엄마 돈 줄게. 응?"


"아, 됐어. 지금 문 닫았어. 시간이 몇 신데."


"아, 그럼 내일 아침에라도 갔다 와. 내일 삼촌하고 고모 하고 다 오시는 데 그게 뭐야. 이왕이면 응? 예쁘게 하면 아들도 좋고, 응?"


"내가 뭐가 좋아. 난 지금이 좋아. 왜 남의 머리까지 그래. 엄마. 쫌."


"휴, 그래. 그래도 엄마는 아들 좀 깔끔했으면 좋겠네. 그럼 내일 조금 일찍 일어나. 삼촌 새벽 5시에 도착하신다니까. 힘들어도 쫌 일찍 자고 응? 내일 아침 7시에 제사하는 거 알지?"


"알았어."


"역시 우리 아들이 최고야."


"잔다."


"응, 좋은 꿈 꾸고. 아들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해."



나는 아침잠이 많은 편이에요. 새벽에 주로 활동을 하는 데 이게 나쁜 습관이 줄 알면서도 잘 고치지 못하겠더라고요. 전 새벽에 활동하는 게 마음이 편한데 왜 그렇게 하면 게으른 사람인 거죠? 새벽에 활동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말하면 아침 일찍 할 일이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한 데. 아침에 회사를 다닌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찍 일어났겠지만요. 오전에 영어학원도 끊어 봤는 데 못 일어나서 못 간 경우가 더 많고, 아침에 헬스를 해볼까 했는 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되더라고요. 결국 무슨 일이든 일주일을 못 넘기고 끝이 났어요. 저두 노력은 했어요. 근데 안되는 걸 어떻해요. 그렇게 태어났잖아요.





저두 이런 제가 싫어요. 난 왜 이런 걸까.


엄마는 친척들 앞에서는 한 껏 콧소리가 높아졌어요.




"어머~~오느라 고생하셨죠. 들어와 들어와. 밤에 운전 안 힘들었어요? 어유, 민희는 더 이뻐졌네. 어서 와. 야- 이제 아가씨야. 다리가 왜 이렇게 길대? 동훈아~ 아드를~ 동훈아 삼촌 왔어. 이리 좀 나와봐. 애가 어젯밤 새 공부하느라, 동훈아"



"삼촌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어, 똥훈이! 그래. 남자가 게으르면 안 돼. 이따 나랑 조기 축구나 하러 갈까?"



"아유 여보. 무슨 명절에 또 축구 타령이야. 이이는 매일 이런다니까요. 축구에 미쳤어 아주."



"어허, 내가 뭐 축구가 좋아서 가나? 다 인맥 쌓으려고 가는 거야. 인맥. 남자가 비즈니스를 하려면 모임 하나는 무조건 나가야 한다니까. 안 그르냐 동훈아? 어휴, 여자들이 뭐 그런 걸 알겠냐. 죄 수다들만 떨러 카페에 앉아 있으니 만나면 남자들이 노는 줄 알지. 그렇지?"



"아... 예..."



"아빠는 무슨 그런 성차별 발언이야? 정말 이상해!"



"아니 내가 뭘. 허허허. 우리 민희 판사 한다고 너무 아빠까지 판단한다? 어?"



"그건 또 무슨 상관이야? 진짜 아빠 이상해. 그렇지 엄마."




집안에는 늘 안 보이는 서열이 존재합니다. 가족끼리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약하고,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강하고, 누군가는 늘 눈치만 보고, 누군가는 늘 중재만 하는 싸이클.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는 어쩌면 피로 맺어진 더 지독한 서열 사회라니까요? 그렇다면 나는 가장 최하 계급, 아니, 장남에 장손이니까 계급은 높은 데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상사랄까. 아무튼 이런 사이는 정말 가시방석에 억지로 앉아있는 형벌입니다.



매년 추석이면 달님에게 명절을 없애달라고 기도까지 했다니까요? 나 원 참. 제가 왜 이런 기도까지 해야 하는 거죠? 제 인생에 도움 하나 안 된 사람들 때문에.


그러니까,

제사가 끝날 때쯤 고모가 도착했어요. 고모는 교회에 다녀서 제사는 질색팔색 하며 무슨 우리를 미개인쯤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결국 제사가 끝나고 같이 밥 먹을 시간 쯔음 되면 항상 도착해요.



 이 일로 몇 번을 아빠와 싸웠지만,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누가 무엇을 강요할 수 있을까요. 누가 누구 말을 듣겠냐고요. 내 속에서 쑥 튀어나온 자식 새끼도 말 안 듣는 판에, 종교가 됐든 뭐든 가족이라는 이름의 남에게 삶을 가르 칠 수 없죠.



 그래도 부모님 제사를 안 한다는 것 자체가 인간이 못 돼먹은 짓이라면 아빠는 고모를 욕했어요. 그게 참 지겹지도 않은 지 올해만 참석 안 하는 것도 아닌 데 매년 얘기한다니까요. 어차피 안 할 사람인 데. 저희 아빠도 참 어지간합니다. 



고모는 뭐라고 하시는 줄 알아요?

살아계실 때 매일 전화하고 찾아간 건 자신이라며, 죽고 난 뒤 효자인 척하지 말라고 몰아세웠어요. 그 말에 모든 식구들은 이의를 제기 하지 못 합니다. 고모는 진짜 잘 했거든요. 고모의 레퍼토리는 이거예요.

진짜 부모를 생각했다면 살아계실 때 코빼기라도 보이는 척하라고.


휴. 나는 그냥 두 사람 모두 효자 효녀 구나 하고 생각해버렸어요. 

왜 사람들은 더 인정받지 못해서 안달일까요. 뭐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냥 너는 살아계실 때 고생했구나, 너는 돌아가시고 부모님을 많이 기리는 구나,

이렇게 서로 잘했다 해주면 안 되요?


안 되나?

안 되려나?

안 되나보다.



집안에 고모가 들어서자 아빠의 낯빛은 파랗게 변했어요. 마치 맹수들이 싸움 전에 서로를 탐색하기 전 낮게 으르렁 거리는 그런 느낌이에요.


아버지의 선제공격,



"야, 너는 맨날 와서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얻냐?"


"명절에 왜 사람 보자마자 시비야 시비가."



고모의 방어,


"아니 이게 오빠한테 한다는 소리가, 너 아버지 보기 부끄럽지도 않냐? 이제 와서 밥이나 먹고 가는 게. 아버지가 널 얼마나 이뻐했는 데."



"아니 내가 그래서 아부지한테 잘 못 한거 있어? 죽은 사람 절 두 번 하면 효자 되나? 이야 그게 세상에서 효자되는 가장 빠른 방법일세. 흥. 언니 나도 국 좀"


오늘도 고모의 카운터 펀치,



집안은 얼음판이었어요. 그때 눈치 빠른 민희가 저를 걸고넘어진 거예요. 젠장. 이 집에서 제일 만만한 게 저거든요. 그냥 결국에 물어뜯을 누군가가 필요하다면 저예요. 제일 힘이 없는 저.



"근데, 오빠는 취업했어? 요즘 내 친구들도 벌써 취업 걱정이라니까. 아 대학생 되기 싫다."



그제야 모든 관심의 화살이 저에게 쏟아졌어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에요.

저는 갑자기 급체할 것처럼 속이 답답해지기 시작했어요.




"어, 그래. 이번에 동훈이 몇 살이지? 이제 장가갈 때  안 됐나? 허허허. 삼촌이 니 나이 때는 인기가 장난 아니었지. 여자 친구는 있냐?"


"아, 저..."


"아, 맞다. 오빠 근데 요즘 Y대는 취업률 어때? 오빠 친구들 중에 Y대 나온 사람 없어? 지금 무슨 일해?"


"아, 친구들..?"


"그래, 요즘 취업이 좀 힘드냐, 혹시 동훈이 너는 어디 생각하고 있어? 무슨 일 하려고? 니가 무슨 과더라?"


"아니, 당신은. 동훈이 국문학과 나왔잖아요. 매년 똑같은 걸 물어."


"맞아. 아빠는 식구들 한테 관심 좀 가져라."


그제야 엄마가 국을 들고 나타나,


"아유, 어제 내가 이거 장 보는 데 동훈이 아니었으면 진짜 큰 일 날 뻔했다니까. 이 사람은 회사에서 맨날 야근이지. 나는 진짜 동훈이 아니면 제사 장 보는 것도 못 할 거야."


"언니 그러니까 제사는 이제 그만 하고, 그냥 이런 명절에 가족끼리 여행이나 다니자니까 괜히 고생하고 그래."


"너 인마, 제사를 안 지내는 게 말이 되냐?"


"그럼 진작에 잘 하지."


"내가 뭘 또 그렇게 못 했는 데 어?"


"아니 그걸 내 입으로 말해야 해?"


"그래, 뭐 내가 뭐! 도대체 뭘 그렇게 못 했길래 네가 쌍심지를 켜고 오빠한테 대들어 대들기를?"


"진짜 웃긴다. 그때 아빠 어? 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때 누구 하나 코빼기라도 보인 사람 있어? 어? 아빠 똥오줌 받아가면서 나 혼자 발 동동 구르고. 어? 그때 동훈이 고3이라고 어? 참나. 무슨 엄청난 대학을 가는 것도 아니고, 애들 지키고 선다고 공부하는 것도 아닌데, 아들 고3이라고 집에서 애 학교 데려다주고 해야 한다며? 쟤 누가 밤에 데려가기나 해? "


"아니, 고모. 그런 말은 좀 그렇다. 저희가 그날 못 간 건 진짜 미안한데, 우리도 다 사정이 있지. 애 아빠는 회사에서 일하지, 애가 수능생인데 그럼 애 밥이라도 챙겨주고 해야 지. 다른 엄마들 다 그래.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그때 애가 한 참 사춘기라 방황하고 그랬잖아. 동훈이가 그때 입시 스트레스가 엄청났다고. 요즘 애들 공부가 그냥 공부가 아니라니까."


"맞아. 그거 나도 인정."



졸지에 집안은 나를 두고 토론의 장으로 변했습니다. 나는 점점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죠. 정작 주인공 아닌 조연, 조연 아닌 주인공인 나는 단 한마디도 못 한 채 써걸써걸한 밥 알을 씹고 TV에 눈을 돌렸습니다. 지겨워.


먹던 밥 숟가락을 놓고 내 방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것도 그럴 수도 없는 입장입니다. 어찌 되었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면 또 일어나는 걸로 한 참 토론을 벌일 테니까요. 진짜예요. 작년에는 내가 그렇게 했다가 결국 엄마와 고모가 싸움을 했다니까요.


휴. 나는 빨리 사람들이 지치길 바랬어요. 하지만 오히려 지치는 건 나였죠. 싫다. 너무 싫다. 지겹다. 징그럽다. 아무렇지 않게 남에 대해 떠드는 저 입, 저 눈, 저 생각들. 우욱. 우우 욱. 속이 울렁울렁거리고 구역질이 날 것 같아 입을 꾸욱 다물었습니다. 욱- 우욱- 나는 침을 꿀꺽 삼켜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어요. 학. 학. 숨 쉬기가불편했어요. 뭔가 내 안에 뭔가가 점점 시멘트처럼 굳어가고 꽉 조여져 좁아지고 있었습니다.



아, 나는 어지러워 눈을 깜았다 떴다 하면서 이리저리 눈알을 뒤룩뒤룩 굴렸습니다. 안돼. 버텨. 버티란 말이야.

사람들은 저마다 나를 도마 위에 놓고 괴기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어요. 그들은 언제든 나를 해체 해버릴 수 있다는 듯이 시뻘건 칼을 들고 설쳤습니다. 이윽고 서로 자기가 썰겠다는 듯 당찬 표정으로 서로를 밀치며 기세 등등하게 기싸움을 하고 있었어요.


살려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어요. 저는 엄마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냈죠. 하지만 엄마는 미쳐 저를 보지 못 했어요. 엄마. 엄마 나 좀 살려줘. 응? 엄마. 엄마 제발!


지금껏 느껴보지 못 한 공포가 저를 압도했어요. 이런 기분은 저도 처음입니다. 처음엔 너무 부끄러웠고, 다음엔 도망가고 싶었고, 점차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공포스러웠어요.


끄으으윽- 세상이 점점 어지럽고 넓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밥상이 점점 커지고 주변의 사물들이 쑥쑥 자라났어요. 세상에. 친척들은 모두 하나 같이 살찐 거대한 거인으로 변했어요. 아아아.나는 몸이 줄어들었어요. 정말 실제로 점점 작아졌다니까요.


스르륵.. 스르륵..

옷이 헐렁헐렁한 기분이 들어 나는 깜짝 놀라 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옷이 커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저 세상이 커지는 줄 알았다구요. 그러나 모든 건 그대로 일뿐, 변하는 건 나뿐이었습니다. 제기랄.


내 회색 후드티와 까만 진 청바지가 늘어나는 듯하더니 나는 헐렁헐렁해진 옷 속으로 들어갔어요. 그 자리에 있는 식구들 중 아무도 내가 작아진 걸 눈치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결국 내가 앉은자리에는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이 벗어진 내 회색 후드티와 까만 진 청바지만 덩그러니 그 자리에 놓여 있었습니다.







아아, 그날 나는 그렇게 미세 인간이 되어버렸다구요.

평소에는 눈에 보이지 않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그러나 알고 나면 아주 불편한 미세 먼지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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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사랑한클레멘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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