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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Oct 17. 2016

(1분소설) 원 모어 커피

 그녀의 이야기

만나야 할 사람은 꼭 만난다는 말을 누군가 내게 하더라. 그렇다면 이렇게 헤어져버린 우린, 만나야 할 사람이었을까.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이었을까. 아직도 모르겠어. 그걸.     





어? 너...?

  


  

대학교 2학년, 선배의 소개로 나간 소개팅 자리에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너였어. 헐. 나는  익숙한 니 얼굴을 보자 마자 너무 놀라 얼어붙었다니까. 

너는 참 멋있게 커버렸구나.      




오랜만에 만난 너와 나는 변한 건 하나도 없었지만, 어린 시절의 우리는 아니었어. 너는 더 이상 알로에 주스는 마시지 않는다고 했지.

대신 진아메리카노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짜식.

그땐 왠지 정말 어른이 되어버린 느낌이더라. 




기분이 묘했어.    



자리를 옮기고 술을 마시면서 너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어.




마치 연어처럼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꼬꼬마 시절의 소년과 소녀가 된 듯한 기분.

아, 너무 재밌고, 너무 좋고, 때론 낯설고, 그런 복잡한 기분! 너무 짜릿했어. 


너랑 나 정말 오랜만이었잖아. 그래. 우린 정말 엄청난 일들을 함께 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정말 동네 말썽꾼이었다. 그치?




어릴 때 바닷가에서 같이 오줌 싸던 일,

동네에서 감자 서리하다가 둘 다 부모님에게 엄청 혼나던 일,

내가 벌에 쏘여 퉁퉁 부은 눈으로 너 녀석부터 찾았던 일,

말도 안 되게 슈퍼맨 흉내를 내고 2층에서 뛰어내린 일...          




그래. 그냥 내 인생의 절반은 너였어. 니 인생의 절반도 나였을까? 내 모든 기억 속에는 니가 있었는데.  그리고 눈앞에 또 이렇게 함께 한다는 게, 아, 내겐 너무 큰 의미였어. 나 진짜 솔직히 말하면, 그날 소개팅에 우리 다시 만난 날, 훌쩍 커버린 너 처음 딱 보고,  눈에 반했다니까. 진짜야.          




많은 추억을 함께 공유한다는 건 참 좋은 거야. 그치? 하지만 다시 못 볼 사이라면, 그게 너무 간절한 사람이라면,     




.... 좋은 건가?

         


그렇게 우리는 마치 자석처럼 점차 서로에게 빠져들었어.

친구에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 어쩌면 나 혼자 사랑한 사이가 된거지.  모르겠다. 그때 정말 날 사랑하기 했었는지. 아니야. 이제 와서 따지려고 이런 말 하는 거. 그냥 그때 우린 어렸잖아. 너는 워낙 감정이 느려서 우정을 사랑이라 착각하고 있었는지 궁금했을 뿐이야.




넌 표현을 워낙 안 해서. 그것 때문에 많이 싸우기도 했지.

 


    

그래.

유치하지만 사랑이라는 건, 마음이 큰 사람이 ‘을’이 되는 거 같아. 뭐든 크면 더 좋은 거 아닌가? 그런데 왜 사랑에서 만큼은 유독 반대일까. 아니 무슨 사랑에 '갑을 관계'가 있냐고 하겠지만 나는 그렇더라. 너 만날 때마다 미치도록 작아지는 기분이더라.

 


     

늘 초조했어. 불안하고.




그러니까,

왜 그럴까. 왜 나만 매일 이렇게 애타는 걸까. 왜 톡 한번 없을까. 왜 전화 한번 못 할까. 1분, 아니 10초의 여유가 없는 걸까?  



그런 생각으로 많이 울었어. 근데 그때마다 너 녀석은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항상 말했지. 진짜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중요한 거라고. 됐다. 좋아하면, 생각하면, 표현하는 게 자연스러운 거 아니야? 치. 어차피 나랑 같은 감정이 아니면 너 녀석은 아무리 내가 얘기해도 절대 이런 마음 모를 거야.

  



    

한편으로 지금 생각해보면 음, 아무리 성인식이 지난 스물 한 살이라도 둘 다 여전히 어린 데 말이야.



 

그날의 나를 되돌아본다면 말이야. 난 너무 고지식해서 그걸 인정하지 못했던 것 같아. 우리가 충분히 어른이라고 생각했지. 감정은 여전히 여물지 않은 열매처럼 떫고 신 맛이 도는 게 당연한데. 그렇게 매사에 서툴고 표현 방식이 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땐 몰랐나 봐.

  


   

그래서 너 녀석, 내 사랑의 갭을 감당하지 못했던 걸 지도 몰라. 치. 왠지 또 치사해지고 서러워진다야.





이제야 말하지만 나는 정말 , 너를 많이, 아주 많이 좋아했거든. 너도 알겠지만.

 


     

그래. 인정.

어쩌면 한 편으로 내가 이기적인 거지. 내가 혼자 사랑의 크기를 마구마구 키울 때로 키워놓고. 너도 빨리 커지라고. 발맞춰 사랑하자고. 뭐든지 나만큼, 나만큼, 나만큼. 그렇게 되길 바랬던 것 같아.

그때는.      




야, 이제 너도 컸으니 나 좀 이해해줘라.

나도 사랑이라는 감정은 처음이었거든. 그 감정이 감당 안 될 정도로 자꾸만 커져만 가는 데, 휴. 나도 조절하는 방법을 몰랐던 거 같아. 화력 조절에 실패한 셈이지.




그래. 뭐든 처음은 서툴잖아. 내가 오히려 너보다 서툴었나 봐. 그랬나 봐. 너가 자꾸만 손에서 미끄러지는 사람인 것 같아서, 나는 아무리 조심히 하려고 해도 빠져나가는 마음이 느껴져서, 그게 너무 시리고 아려서, 어쩔 줄 몰라했던 것 같아.

 




    

돌이켜 보면, 너는 내가 아닌 데.

그땐 바보같이 너는 왜왜왜  나랑 같지 않을까. 왜 같은 마음이 아닐까. 그런 일로 너 녀석을 많이 비난했던 것 같아. 이궁. 한 편으로는 미안하고, 한 편으로는 또 여전히 미운 기분.

미안해. 이렇게 복잡한 여자라서.

   



  

너는 늘 말이 없었잖아. 어릴 때는 미주알고주알 잘도 떠들던 녀석인데. 그게 이상한 거야.

난 내가 알고 있던 너와 스무 살이 넘어 변해버린 너가 지루한 나 때문인지, 아니면 시간의 변화 때문인지 도통 알 수 없더라. 바보야, 답을 모르면 상상하기 마련이거든.






그게 아마 날 미치게 만들었던 거 같아.

 



그래. 그날.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날. 내 인생에서 내가 가장 못 생겨보였던 그날.

   


 

그날 나, 너 생일이라고 잔뜩 이쁘게 하고 갔었어. 궁금하지? 치. 한 순간을 놓치고 나면 그날의 나는 영원히 없는 거야. 근데 그날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못 생기 여자가 되어버렸어. 너 때문에.





몇 달 동안 고민하던 예쁜 커플 커피잔 세트와 블루베리 생크림 케이크, 와인과 꽃 그리고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어 줄 생각으로 장 봐서 너 녀석 집으로 갔던 거... 너도 알꺼야.     




띵동-     





나는 너무 설레서, 30분나 일찍 도착했지 뭐야. 근데 집은 조용하더라. 아직 안 온 건가 했지. 전화를 해 보았지만 너는 배터리가 없는지 전화가 꺼져있더라구. 그래도 약속 시간이면 돌아올 것 같아 마냥 기다렸던 거야.





아, 그때 미리 눈치를 챘어야 했는 데. 너가 약속 시간에 늦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걸 잊고 있었지. 아니, 오히려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그런 생각을 못 했던 걸지도 몰라. 니가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미리 알았으면... 덜 서운했을 텐데.




나는 너를 기다리다 장 본 것들을 들고 다시 커피점에 갈까 하다가 너무 무거워서 그냥 앉아서 기다렸어.

참 미련하다. 그치?




그리고 시간은 달려가





7시가 되고,

7시 10분,

20분...     




째각, 째깍, 째각...







장 봐온 냉동 제품이 서서히 녹기 시작했더라구. 처음에는 살짝 당황했지. 봉지 밑으로 물이 줄줄 새기 시작했어. 옆에 앉아 있다가 예쁜 내 원피스 치맛자락이 그 물에 젖어 버린 거야.





그걸 보는 순간, 나는 왈칵 눈물이 났어. 몰라. 엄청 서운했나봐. 겨우 그런 걸로 울다니. 진짜 그때 엄청 화가 나서 너 녀석 얼마나 욕했는지 몰라. 귀 안 간지러웠니? 아마 너 오래 살 것 같아. 하두 내가 욕을 많이 해서.





나쁜 놈. 나쁜 놈. 오기만 해봐라. 생일이라도 절대 봐주지 않을 꺼야.

   




 

그런 생각도 잠시 나는 다시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 아, 바보 같이 니 대학교 친구들 전화번호는 몰라 전화하지도 못 하고, 고향에 있는 부모님에게 전화를 해 볼까 하다가 이게 또 별 일 아니면 너무 걱정 끼쳐드리는 것 같아서...




아...나쁜 놈. 너 정말 밉다. 지금 생각해도 이렇게 눈물이 나는 데.

나 정말 마음이 새까맣게 타서 지금도 이렇게 아리다. 휴.           







그리고...





8시가 다 되어서야...     

현실을 인식하고 나는 엉엉 울기 시작했어. 진짜 진상이었다니까. 장 봐온 제품들은 지 멋대로 녹고, 엉켜, 걸레짝처럼 너덜너덜 해졌고, 내 마음도 그랬어. 죽겠더라. 얼마나 한 참을 울었나? 니 옆집 사는 사람이 참다 못해 문을 열고 나와서 좀 조용히 해달래. 젠장. 그 순간 세상에 아무도 내 편은 없었어.


결국, 나는 모든 걸 문 앞에 버려둔 채로 조용히 일어났어. 바리바리 들고 온 니 생일 선물들이 문 앞에서 처참히 버려져 있는 게, 꼭 내 꼴인 것 같아서 더는 거기 있을 수가 없었어.

   


  

아. 눈물이 눈 앞을 흐려 계단이 잘 보이지 않더라. 그나마 밤이었기에 망정이지. 화장은 떡이 되고 볼에는 눈물 자국이 나고, 마스카라도 워터 프루프라더니 왠 걸, 정말 가관도 아니었어. 나 집에 와서 깜짝 놀라서 눈물이 뚝 그치더라. 어휴. 그러니까... 그날 나와 마주치지 않은 게 어쩌면 다행일지도 몰라. 마지막 모습이 그런 꼴이면,






정말 잔인하잖아.






길에서 울면서 걸어 본 적 있어?

참.. 너 때문에 내가 별걸 다 해봤다니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인 거라는 걸 너 녀석 때문에 알았다구. 예전에는 길에서 울고 있는 여자를 보면 이해를 못 했는 데 막상 닥치면 아무도, 아무것도 신경 쓰이지 않더라.






 

감당 안 될 정도로 미치도록

너무, 너무, 너무 슬프면 말이야.




다음 날 너 녀석,

 

미안하다는 문자가 와 있더라. 그냥. 아무런 설명도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달랑 그렇게 미안하다는 문자만. 나는 너무 괘씸해서 답장 보내지 않았어. 그게 마지막 남은 내 쫀심이었거든.




그날 그렇게 오랜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너 녀석과 이유도 모른 채 헤어진 거야.      






진짜 지금이라도 그날의 나로 돌아가,

왜 냐고, 나한테 도대체 왜 그랬냐고,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사람을 이렇게 바닥으로 끌어내릴 필요까지 있었냐고, 모든 걸 시시콜콜 따지고 싶어.          





그러나 늘 그랬듯이 너 녀석은 말이 없는 아이거든.

그걸 너무 잘 아는 내가 싫어진다.

   



       

아, 차라리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아, 그날 내가 소개팅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아, 우리가 영원히 친구로 남았더라면,     






이제와 후회해봤자 다 쓸데없는 생각이겠지.



너는 정말 날 사랑했을까? 아니면 나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갖지 못했던 걸까. 아무리 물어도 이제와 무슨 소용 있겠어. 모르겠어. 너의 마음속에 들어가 확인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게 깨끗하게 정리될 텐데.  




아프다.





만나야 할 사람은 꼭 만난다는 말을 누군가 내게 하더라. 그렇다면 이렇게 헤어져버린 우린, 만나야 할 사람이었을까.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이었을까. 아직도 모르겠어. 그걸.    




<남자의 속 마음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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