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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Oct 17. 2016

(1분소설)원 모어 커피 2

그의 이야기

마음이 크면 오히려 말이 안 나올 때가 있어. 도대체 무슨 말부터 어떻게 정리해서 말해야 할지 모를 때가. 

그날도 그랬던 것 같아.


남자는 첫사랑을 가슴에 묻는 다고들 하더군.

첫사랑이 처음 사귀는 남자친구 여자친구 라고 하면 너무 시시하잖아. 

처음 미치도록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 사람, 그 사람이 첫사랑 아닐까?




공교롭게도 내게 첫사랑은 오랜 친구였던 너였어.


그날은,

친구가 갑자기 연락이 와서 자기 대신 소개팅에 나가 달라고 했지. 나는 취업 준비로 바빠서 싫다고 했지만 친구 놈이 그냥 잠깐 앉아 있다가 밥만 먹고 나오면 된데. 나중에 자기가 밥값은 따따블로 쳐 준다고. 아, 시간도 없고 바빠 죽겠는 데 이 새끼는 무슨 연애질이야. 




나는 그때 쪼금 짜증이 났던 거 같아. 아니, 그럴 거면 그냥 펑크 내면 되지, 뭘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하냐니까, 선배 부탁이라 당일에 당장 펑크내기가 미안하다나?




지랄도 풍년일세.

이게 별 시답지 않은 자기 합리화하고 있어.





암튼 그런 실랑이를 꽤 오랫동안 했어. 나는 당장 한 달 뒤에 토익인데. 친구 놈이 계속 졸라대니까 또 마음이 약해지더라고.





휴, 가고 싶지 않은 데 기다리니까 가는 게 맞는 건지, 가고 싶지 않으니 당일이라도 퇴짜 놓는 게 맞는 지,

과연 어떤 게 상대에 대한 예의인지 몰라서. 그래도 일단 친구 부탁이니까 나간 거야. 그냥 가볍게 밥이나 먹고 빨리 와서 공부해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나간 자리였지. 근데.




거기서 널 본거야.



진짜, 이게 몇 년만이냐. 와.


나는 너무 놀라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아무튼 엄청 긴장해서 그날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야. 넌 못 믿겠지만. 진짜 그날 내 행동을 지금 생각하면, 너무 오글거려서 가끔 밤에 이불 킥하게 될 정도라니까. 


너한테는 그런 내색 못 했지만. 게다가 넌 예전 그대로였어. 귀엽고 동글동글한 코, 내가 맨날 깨쟁이라고 놀리던 얼굴에 오돌도돌 주근깨, 내가 좋아하던 오른쪽 덧니, 웃을 때마다 막 사람 때리는 것도,




아무것도 변한 게 없네. 





그냥 헤어지기 싫어서 나는 널 안 먹는 술집에 끌고 갔지. 

2차로 옮긴 나비 bar에서 너랑 이야기하는 동안, 진짜 아무 걱정 없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더라. 그 시절에 우리는 진짜 매일이 즐거웠잖아. 너 그때 벌에 쏘여서 얼굴 호빵만 해진 날, 너 업고 뛴 거 기억나? 진짜, 너 그때 얼마나 무거웠는 데 ㅋㅋㅋ, 그리고 나는 그러다 네가 죽는 건 아닐까 걱정이 돼서 엄청 울었거든. 넌 치료받느라고 몰랐을 거야. 나 진짜 그날 평생 울 거 다 울은 것 같아.




아, 행복한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서 나는 멈춰버리고 싶어. 영원히 말이야.





어른이 되어 간다는 건,

너무 힘들지 않니?




나는 취업 준비할 동안 연애 같은 건 꿈도 못 꿨는 데. 젠장.



모르겠다. 그냥 너한테 푹 빠져버린 거야. 미치겠더라고. 공부가 눈에 들어오겠어? 생각해봐. 초등학교 때 짝사랑하던 여자애가 이렇게 예쁜 숙녀가 돼서 내 앞에 보란 듯이 나타나면, 이거 인연 아니냐고.





한 번도 그런 적 없는 데 나는 중심을 잃기 시작했던 거 같아. 너 때문에. 내 인생의 중심 바퀴가 너에게 맞춰지기 시작했지. 도서관에 있다가도 네가 보고 싶다고 하면 쪼르르 달려가게 되고, 너가 친구들이랑 농활이라도 가는 날에는 걱정돼서 미치겠고.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그냥 혼란했던 거 같아.





학자금 대출도 빨리 갚아야 나중에 너랑 더 알콩달콩 할 수 있을 것 같은 데, 

그런 말은 너한테 차마 못 하겠더라. 나는 사실 점점 겁이 났어. 진짜 미안하지만 세상에 모든 일이 부담스럽더라. 군대, 직장, 대출, 자격증, 스펙...


뭣 하나 제대로 올인할 수 있는 게 없어서 흔들리고 불안했던 거 같아.





그런 심정, 다 얘기 못 해서 미안해.


그냥 이런 생각하고 있는 내가 겁쟁이 같고, 당당하지 못한 거 같고, 괜히 못 난 놈 같아서..




지금도 뭐가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 지금도 그냥 다 모르겠고.

니가 보고 싶어.

그게 솔직한 내 심정이야.





어린 맘에 빨리 돈 벌어서 너랑 결혼하고 싶었거든. 

몰라. 그냥 너 책임지는 남자가 되고 싶었어. 너 내가 맨날 어릴 때 얘기한 거 기억 안나? 우리 서른 넘어서 둘 다 결혼 안 했으면 그냥 같이 살자고. 내가 왜 그런 쓸대 없는 농담을 했겠어. 너랑 빨리 결혼하면 왠지 나도 좀 안정될 것 같았어. 내 곁에 니가 연인이 아닌 평생 반려자로 옆에서 날 위로해준다면 말이야. 그러면 이 험난한 세상, 헤쳐나갈 힘이 생길 것 같은 데... 도대체 모든 문제들은 나에게 어렵기만 할까?



그런 생각들과 다르게 , 마음이 깊어 갈수록 우리는 싸우는 날이 많아졌지.

이상하다. 좋아하는 마음이 점점 커지는 데 왜 서로에 대한 서러움도 같이 폭발하는 거지?





너는 왜 짧은 연락 한 번 안 하냐고, 왜 전화를 안 받냐고, 왜왜왜 왜.

질문이 많았어. 뭐든지 불만이었어. 알아. 나도. 내가 더 챙겨줬어야 했는 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그땐 나도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 데, 내가 이렇게 진정으로 널 사랑하고 아끼는 걸 안다면 너도 이해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 데. 모르겠다. 내가 너무 큰 욕심이었나.





솔직히 말할게.

나는 점점 지쳐갔어.


내 생일을 앞두고 3 달 전에 집으로 입영통지서가 날아왔지. 너는 그 얘기를 듣고 또 한참을 울었어. 나는 너무 속상하더라. 그리고 학자금 대출은 또 어떻게 해야 할까. 휴학하는 것도 너무 싫고, 가기 전에 알바를 두세 개는 더 해야 하는 것도 너무 싫고, 가장 싫은 건 너랑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게 죽기보다 더 싫었어.





이런 내 마음 네가 알아줬으면 했는 데.

남자는 강해야 한다지만, 나도 사람이잖아. 나도... 불안했어.





그때 너는 늘 너의 감정만 앞세웠지. 우리 사이에 위로 받아야 할 사람은 언제나 너였어. 

그래. 사실 나는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솔직히 내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나 봐. 내가 좀 더 니 얘기 들어주고, 니 감정받아주면 되는 건데. 내가 등신이라 그래. 나도 혼자 멘탈 관리 안 되니까, 정말 죽겠더라. 이런 이야기 해도 넌 늘 논리인 듯, 아닌 듯 뭔가 계속 따지는 데...





나는 할 말이 없었어.





알다시피 내가 말재주가 없잖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어떻게 하면 너에게 내 마음을 전달해야 할지, 영 모르겠더라고. 괜히 말꼬리 붙잡혀서 싸움이 끝날 것 같지도 않고.





괜히 나름대로 내 감정을 이야기한다고 한마디 하면

오히려 그게 불씨가 돼서 너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아. 작은 투닥거림도 결국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어. 그게 싫더라. 그래서 나는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다. 싸우기 싫다. 너무 좋은 데. 계속 좋은 데 싸워야 할까.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




그래. 우리 둘 다 너무 어렸잖아. 아니야 내가 부족했어. 내가 좀 더 널 이해시켰어야 했는 데. 

나는 그랬어. 그냥. 고등학교 때도 대학 때도 연애는 꿈도 못 꾸다가 

막상 니가 너무 좋아서 너무 사랑스러워서 막 잘해보려고 했던 노력들이... 너무 어설펐나 봐. 그냥 그랬던 거 같아. 내가 생각해도 진짜. 바보 같네.





뭘 해도 어설프냐 나는.


그 어설픔이 결국은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거야.

입대를 한 달 앞두고, 또 내 생일날을 앞두고 우리는 심하게 다퉜지. 그래도 넌 내 생일이라고 저녁에 온다고 했어. 휴. 며칠 동안 풀이 죽어 있는 널 보니 나도 마음이 불편하더라고. 그래서 내 생일을 기회로 너에게 내 마음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널 사랑하고 좋아하는지 보여주고 싶더라.




나는 알바를 일찍 끝내고 돌아가겠다고 미리 사장님에게 양해를 구했어. 다행히 생일이라고 사장님이 이해해 주시더라고. 나는 너에게 군대 가있을 동안 기다려 달라는 의미로 작은 반지를 사러 갔어. 진짜 그게 화근이었던 거 같다. 




며칠 전부터 미리 봐 두었던 커플링을 사러 시내에 나간 거야.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나는 이걸 사 가면 네가 좀 풀리지 않을까 내 마음 이해해 주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했던 거 같다. 그냥 널 깜짝 놀라게 하여 주고 싶은 마음? 나 혼자 공상에 빠진 거지. 진짜 난 왜 이렇게 어설플까.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 나는 깜박 잠든 거야.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을 때 벌써 회기역인 거야. 어떡해. 미친 듯이 뛰어내렸지. 문제는... 널 위해 준비한 반지랑 내 핸드폰 지갑 통째로 두고 내린 거야. 




진짜 내가 미친놈이지.




나는 지하철 개찰구에 가서야 그걸 기억해 냈어. 왠지 뭔가 손이 허전하더라. 퇴근 시간이라 지하철은 미친 듯이 밀리는 데, 급한 마음에 무작정 뒤로 내려가려다 올라오는 사람들한테 욕까지 얻어먹었어. 진짜 거기 있는 사람들 다 줘 패고 싶은 심정이었어. 돌겠더라. 나는 잃어버린 무엇보다 너에게 줄 반지를 잃어버렸다는 게 내가 너무 싫은 거야. 





왜 그렇게 소중하게 다루지 못했는지. 마치 널 잃어버릴 것 같은 그런 미친 불안감.





일단 지하철 역무소에 가서 사정을 이야기했어. 당연하게 찾을 확률이 낮지만, 그래도 간혹 분실물이라고 돌아오기도 한다더군. 나보고 몇 호 칸에 탔는지 기억하냐는 데, 내가 뭘 알아야지. 아,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고 아무 생각도 안나는 거야. 그대로 머리가 하얗게 되더라.





너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 생각했는 데... 빨리 이야기 해 줘야 한다 생각했는 데...




미친놈, 전화번호가 기억이 안나는 거야.





기억나는 대로 이것저것 눌러봤는 데, 내가 핸드폰을 너무 맹신했구나. 내가 이렇게 무심했구나. 그때서야 내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깨닫게 되더라고. 아, 이런 사정을 어떻게 또 너에게 설명해야 할까. 번호를 어떻게 기억도 못 하냐고 헤어지자 할테지. 아, 어떻게 너의 화를 풀어줘야 할까. 아, 핸드폰은 어떻게 찾고, 

반지는? 지갑은? 집에는 어떻게 가야지??????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어.




나는 어쩌면 마음 한 편으로는 어느 정도 포기했었는지도 몰라. 이대로 이렇게 되어버리면 어쩌면 그동안 쌓인 게 폭발해서 정말 끝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그런 자포자기 심정 말이야.



이제와 생각해보면 나는 더 널 붙잡았어야 했는 데. 내가 이렇게 아쉽고 널 그리고워하고 여전히 널 기다린다고 하면




넌 내 말 안 믿겠지?



새벽에 전화를 찾았지만, 넌 전화가 꺼져있었지.

나는 진짜 엄청 고민했어. 어디서 부터 어떻게 설명하지? 나는 왜 이렇게 최악의 인간인걸까. 너가 화낼 일을 생각하니까 오히려 겁이 나는 거야.


일단,

문자를 보내고 시간을 두고 감정이 좀 풀리면 그때 이야기 하자.


아마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 나는 지금 당장 너에게 이야기 하면 이해 못 받을 것 같아서 그냥 너 화좀 풀리면 말하려고 했던 거야. 그게 내 멍청한 선택이었지. 이게 정말 잘 될 인연이 아니라서 그런 걸까?


그 뒤로 넌 내 연락은 받아주지 않았어. 나는 너의 학교에도 가보았지만, 니 친구들은 도통 어디있는 지 이야기 해주지 않더라. 이미 나는 병신 또라이에 나쁜 놈 낙인이 찍혀 있었어. 아무도 내 편은 없었지.


억울하지만, 나 잘한게 없어서. 그래서 모르겠다.



그렇게 3주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군대에 가야 했어. 그리고 우린 영영 서로 볼 수 없었지.



그날 집 앞에 다 녹아버린 니 마음과 예쁜 커피잔 세트만 날 기다리고 있었어. 그리고 벌써 4년이 흐른 지금 나는 여전히 ing 인가봐. 



미안해.

이 말 밖에 할 줄 몰라서 또 미안하다.



마음이 크면 오히려 말이 안 나올 때가 있어. 도대체 무슨 말부터 어떻게 정리해서 말해야 할지 모를 때가. 

그날도 그랬던 것 같아.



<남자의 속 마음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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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모어 커피 전편을 못 보신 분이라면?


그녀의 엇갈린 마음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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