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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Oct 30. 2016

(1분소설) 중년

클레멘타인 1분소설

내 나이 50이 되면 마누라랑 여행도 다니고 자식들 대학 다 보내 놓고 전원주택이나 하나 지어서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 어느 때 보다 고통스러운 50대가 되었다.



"어휴, 술 좀 작작 먹고 들어와. 인간아. 이럴 거면 아예 들어오지를 말던지."




마누라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한층 새된 못소리를 내며 쏘아붙였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인데 저러고 싶을까... 나는 미안하면서도 한 편으로 마누라의 똑같은 목소리가 짜증이나 말없이 일어나 샤워실로 갔다.



쏘아아-



따뜻한 물에 몸을 좀 쏘이고 나니 그제야 약간 정신이 드는 듯했다. 어제 마신 술기운이 아직 남아 있는지, 오늘따라 숙취가 지독하다. 마누라는 입에서 똥내가 난다며 말도 붙이지 말라고 딱 쏘아붙였다.... 참, 됐네요. 나도 할 말 없네요.



킁킁킁.

어제 입었던 옷의 냄새를 맡아 보고 대충 다시 걸쳐 입고 나갔다. 집 안의 바퀴벌레 보듯 보는 마누라의 눈빛도 이제 지겹다. 마누라뿐만 아니라 자식새끼들도 똑같다. 가끔 말이라도 붙이면 무시하는 듯한 그 눈빛... 가장의 구실을 못 한다는 듯한 식구들의 행동은 나를 더욱 우울하게 했다. 세상에서 가장 믿을 사람이 식구들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집안에서부터 편 가르기가 시작된다.



휴. 그런 탓에 요즘 들어 뭘 해도 그다지 신이 나지 않고, 집에도 들어오고 싶지 않다. 20대 때만 해도 결혼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 데... 지금은 오히려 혼자된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 가끔은 훌쩍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 데, 그랬다가는 괜히 바람난 거 아니냐는 둥 어딜 가냐는 둥 채근해대는 식구들 때문에 나는 매일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고 있다.



아니, 그냥 숨 쉬고 있다.






"여, 이사장, 뭐해?"




불알친구 한 놈이 오후 4시가 되자 저녁을 먹자고 전화가 왔다.



"한 잔 해야지? 요 밑에 추어탕 끝내주는 데 있는 데 그리로 와."



나는 알았다고 하고 날파리만 날리는 가게 문을 일찍 닫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종이에 대충 써서 가게 입구 문에 붙이고 돌아섰다. 어차피 하루 종일 5팀도 오지 않았다.




재료가 떨어져 오늘은 영업을 끝냅니다. 연락 주세요.




마누라가 알면 또 엄청 난리를 피우겠지만 나는 이 가게가 감옥 같다. 하루 종일 갇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내가 되어 가는 것 만 같아 미치겠다. 말만 허울 좋은 사장일 뿐이다.



으-추워.


갑자기 날이 추워진 바람에 거리가 썰렁하다. 김이 잔뜩 서린 가게 안을 들어가니 가게는 이미 만석이었다. 젠장. 이런 가게는 미친 듯이 잘 되는 데 내 가게에는 왜 손님 새끼 한 마리도 안 오는 거야.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가게 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찌르고 손님들은 다들 술 한잔에 얼큰해진 중년의 남성들이었다.




"야, 이사장! 여기 여기!"




친구 녀석은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대기업을 다니다 혼자 사업채를 꾸린 친구는 나름 꽤 잘 나가는 것 같아 보였다. BMW 7 시리즈를 모는 데 나는 아직도 10년 전에 산 구형 아반떼를 끌고 다닌다. 차가 뭐 사람의 기준점까지 되겠냐마는, 내 차를 볼 때마다 차 좀 바꾸라는 둥, 쫌생이라는 둥, 사장이 가오가 떨어진 다는 둥 친구들의 놀림이 몇 년 째다. 그때마다 자랑할 게 없는 놈들이 차 자랑이나 하고 자빠졌다고 말하지만... 모르겠다. 기분이 좋지 않다.



그래서 가게를 갈 때 빼고는 친구들을 만나는 술자리에 차를 끌고 오지 않는다. 그냥 차라리 택시를 잡는 게 편하다고 할까. 친구들 중에 내 차가 제일 초라해 보이는 것만 같아 나까지 초라해져 자존심이 상했다.




"야, 이거 할아버지 다 됐네. 인마. 옷이 그게 뭐냐. 우리도 이제 꽃중년인 거 몰라? 나 봐라. 오늘도 거래처 아가씨가 30대인 줄 알았다고 했다니까."



"지랄 헌다. 30대인 줄 알은 거지 30대냐? 헛소리 말고 한잔 따라."



"야 빈속에 먹으면 안 돼. 우리 나이는 이제 몸이 재산이다. 여기요! 사장님!!! 여기 추어탕 밥 하나 더 주세요!"



"까지 말고 줘."



"... 참나. 그래. 한 잔 해."




나는 빈 속에 소주를 연거푸 두 잔 원샷했다.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어,




"이모, 여기 맥주 하나!!"



"왜, 말게?"



"어, 오늘은 일찍 먹고 들어갈라고. 우리 마누라님이 오늘도 늦으면 비번 바꾼 댔어."



"그럼 나랑 좋은 데 가서 자면 돼지."



"염병 허네. 까지 말고, 안 바쁘냐? 웬일로 술을 먹재."



"바빠. 디질 것 같아. 야, 사람이 아무리 바빠도 친구 얼굴은 봐야지. 안 그래?"



"... 그래. 먹자."






요즘 잘 지내냐는 나의 말에 친구는 회사가 갑자기 커져서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다. 별 걱정을 다 하네. 잘 나가도 걱정이구만. 그러고 보면 인간은 그냥 걱정 덩어리 인가보다.


그 후로 1시간 넘게 친구는 업무 이야기를 했다. 자기가 진행하는 일이 어쩌고, 해외 지사가 어쩌고, 앞으로 투자를 받네 어쩌네, 4차 혁명이 어쩌고, 정치가 어쩌고... 어쩌라고...




나는 그냥 재미없었다.




어, 어. 그래. 그래. 대답은 했지만 사실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나는 단지 이 가게에 손님이 자꾸 밀려서 오는 게 신경 쓰였다. 추어탕을 먹어보니 맛이 있기는 했다. 근데 그렇다고 엄청, 뭐, 이야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르겠네... 이런 느낌은 아닌데.




"야, 너 내 말 듣고 있냐? 이 새끼 뭐 생각하냐. 왜 무슨 일 있어?"


"일은 무슨."


"뭐, 얼굴 보니 다 늙은 호박 같구먼. 뭔데, 장사 잘 안돼?"


"그냥 그래."


"너 인마, 내가 너 거기서 그거 한다 그럴 때 존나 말렸지!? 기어코 하더니... 어이고, 야, 장사라는 건 말이야..."



친구는 갑자기 장사에 대해 일장연설을 했다. 나는 떠들든 말든 그냥 맥주에 소주만 열심히 말아서 먹었다. 점점 머리가 띵하고 취기가 오르는 것 같았다. 30분이 지나가고... 친구는 밥알을 튀어가며 나를 가르치려고 했다.

시펄. 밥알을 튀겨?




"야!! 닥쳐!! 지랄하네. 장사에 장짜도 모르는 새끼가! 네가 언제 장사를 해보기나 했어?"




나는 소리를 버럭 지르며 맥주잔을 꽝! 소리가 나도록 탁자에 내려놨다. 친구 놈은 일장 연설을 하다가 눈이 휘둥그레 져서 나를 쳐다본다. 가게에 밥을 먹던 사람들도 힐끗힐끗 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수근 거렸다. 나는 짜증이 솟구쳤다. 뭘 봐.



"왜 이래. 갑자기. 너 취했냐?"


"씨, 됐고. 나 간다."


"야, 이거 쫌생이 같이. 너 내가 이런 말 한다고 삐졌냐? 어?"


"너 잘났으니까. 존나게 잘나셨으니까. 됐고. 연락하지 마라."


"이게 뻑하면 연락하지 말래. 너 내가 그렇게 우습냐? 그게 친구한테 할 소리야? 어? 아주 보자 보자 하니까. 이 새끼가. 야! 야! 그리고 어?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어? 너 인마, 니 성격 못 고치면 평생 그렇게 산다. 이거 옛날 똑똑하던 새끼가 상등신이 됐어? 회사 다닐 땐 안 그러더니 왜 이래? 어? 니 와이프 걱정도 좀 해야지!... 야! 야야야!................ 야! 진짜 가냐?"




나는 지갑에서 있는 돈을 다 꺼내 탁자에 던졌다.

소리를 지르는 친구를 뒤로 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가게를 빠져나왔다. 괜히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서 이를 꽉 깨물었다. 제기랄. 나도 다 알아. 내 문제는 내가 제일 잘 안다고. 근데 그게 잘 안 되는 걸 어쩌란 말이야. 이렇게 생겨먹어 버린 걸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나는 내 인생이 왜 이렇게 한심하고 꼬였는지 스스로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른 놈들은 다 떵떵거리고 사는 데 왜 나만 유독 이렇게 재수가 없는 걸까? 어릴 때는 다 나보다 공부도 못 하던 놈들이었는 데. 나이 50이 되고 나니 후회되는 일이 너무 많았다.


젊을 때 더 시도해 볼걸, 그때 하다가 포기한 일들 그냥 더 매달려 볼걸. 자존심 같은 건 버리고 더 부탁해 볼걸. 왜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아ㅏㅏㅏㅏㅏㅏ진짜!!!!!!!!!!!!!!!!!!!!....

나는 허공에 소리를 질렀다.



...이제 와서 다 무슨 소용이겠어.



나는 머리가 어지러워 택시를 타고 가게로 돌아갔다.  그냥 이대로 왠지 집으로 돌아가기 싫었다. 집으로 가봤자 또 술이냐고 분명히 잔소리를 들을 게 뻔했고 오늘은 잔소리 들을 기분도 아니었다. 그냥 혼자서 더 마시고 싶었다.


이런 기분을 알아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식구도 친구도 아무도 말할 상대가 없다는 게 외로웠다. 이렇게 힘들 때 누가 옆에서 위로라도 해주면 좋겠다. 왜 내 편은 세상에 아무도 없을까.


휴. 젊을 때는 그래도 마누라가 위로를 많이 해줬는 데, 힘든 일 있을 때마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오빠 괜찮아? 힘들지. 다 잘될 거야." 하면서 옆에서 위로해주곤 했는 데...


요즘은 매일 신경질만 내니, 나도 그다지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신경질 내는 이유가 내가 술을 먹고 와서 그렇다고 하는 데 딱히 그런 이유는 아닌 것 같다.



이게 갱년기인가.



여자들은 생리가 끊기고 나면 우울증이 온다고 했다. 잠도 오지 않고 짜증도 많이 나고 우울했다가 좋았다가 감정 기복이 심해진다고. 아마 마누라도 그때부터 좀 심해진 듯하다. 그렇다고 나도 사람인데 나도 우울하고 나도 힘들고 나도 짜증 나는 일이 있는 데 마냥 듣고만 있기도 힘들었다. 남자도 갱년기가 있는 게 분명해.



우리는 그렇게 한 발짝씩 서로 떨어져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더 가까이 다가왔다가는 언젠가는 서로 감당하지 못할 삶의 무게에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따지고 보면 내가 더 미안하지. 내가 뭐 돈을 많이 벌어다 주나 남들처럼 명품백을 척척 안기는 것도 아니고 평생 나만 보고 살아온 여자인데... 호강시켜준다고 큰소리쳐놓고 이제 와서 매일 피하듯이 살고 있는 내가 한심스럽다. 진짜.



가게로 들어가 불도 다 꺼놓은 채 소주를 잔에 따랐다. 마땅한 안주거리도 없고 대충 썰어놓은 오이를 꺼내 장을 푹 찍어 입에 집어넣는다. 서걱서걱, 오이 맛이 이렇게 물렀나. 눈물이 코 끝에 콱 맺혔다.






드럽게 물러 터진 게 꼭 나 같다.



카톡 카토옥-


마누라는 아까부터 전화를 해서 왜 안 오냐고 아우성이다. 그래도 찾아주는 사람이 미우나 고우나 내 마누라밖에 없구먼. 나는 미안하다고 금방 간다고 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머리가 띵하고 바닥이 울룩불룩해지는 기분이었다. 세상 참 잘~돌아간다.


대리를 불러 집으로 들어가는 길, 나는 젊어 보이는 대리 기사에게 말을 걸었다.


"기사 양반, 요즘 일 많아요?"


"요즘요? 뭐, 예전만큼은 아니에요. 워낙 대리 운전하려는 사람이 많아서. 그래도 꾸준하게 매출 있는 거 보면 사람들이 술을 많이 먹긴 하나 봐요. 술 없이 세상 어떻게 살겠어요. 하하."


"기사님은 술 못 드시겠네요. 술 먹은 나 같은 인간들 데려다줘야 해서. 술 없이 어떻게 사신 대요."


"에이, 대리 기사가 술 먹으면 쓰나요. 그리고 요즘 같은 시대에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 다 능력 있는 분들이 술도 자시고 하는 거 아니겠어요. 하하."


"참 그렇다. 살다 보면 내가 세상에서 많이 힘든 인간 같은 데 말이죠. 또 둘러보면 나는 그럭저럭 살만한데 맨날 죽는소리만 해대고 있으니. 나 참 등신 같죠.?"


"어이구 그런 말씀을 왜 하세요. 사장님이야 자기 이름건 가게도 있으시고 , 이렇게 차도 있으시고, 밤에 술도 드실 여유도 있으신 분이... 다 사람 걱정 비슷합니다. 돈 걱정은 진짜 부자들도 다 한다니까요. 제가 몇 억짜리 차 대리도 몇 번 해봤는 데 그 사람들도 다 집에 갈 때 한숨 쉬고 그러던데요. 하하. 그냥 억지로라도 웃으면서 사는 거죠. 저기 저 앞에 주차 해드림 되나요?"



젊은 대리기사는 뭐가 신나는지 콧노래를 부르며 마지막까지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자신의 개인 명함을 전달하고 갔다. 필요할 때 핸드폰으로 전화 달라고 했다. 회사에서 부르면 자기에게 이천 원을 떼어간다고... 이천 원...


나는 젊은 사람의 열정을 보니 다시 힘이 나는 듯했다. 역시 사람의 기운이란 건 이렇게 영향이 되는구나... 그래. 기운 차리자. 술도 그만 먹고. 징징 거리는 것도 그만 하는 거야. 내일부터 가게에 좀 더 신경 써야지.




경훈아, 너 인마 과거에 진짜 잘했잖아. 어? 진짜 돈 한 푼 없어도 불알 두쪽 가지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그때를 생각해봐. 일도 잘한다고 사람들이 너만 찾고 그랬잖아. 어? 그래. 너 진짜 얼푼이 같이 이러고 살 거야? 어? 그냥 그깟 사업 몇 번 말아먹은 거 가지고 우리가 굶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 겨우 그런 걸로 사람이 이렇게 까지 비참해지면 안 되지. 차도 있고, 마누라도 있고, 자식들도 다 건강하고 뭐가 걱정이야. 다 인생 경험 비라 생각하자. 응? 툭툭 털고 다시 시작해보자. 인생 100세라는 데 이제 반 절이다. 이제 반. 남은 기간 동안 계속 루저로 살 수 없어.



나는 조용히 나한테 웅얼웅얼거렸다. 지나가는 여자가 힐끗 보면서 경계하는 듯 발걸음이 빨라졌다. 하아. 밤하늘을 보니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 세상이 이렇게 암흑 천지인데 사람들은 무얼 희망하며 살아가는 걸까? 다 똑같아. 이놈도 저놈도 다 힘들지. 나만 그런 거 아니지.


여러 가지 생각이 가슴속을 스쳐갔다. 그래도 왠지 오늘 대리 기사랑 대화를 나눈 게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것 같다. 다 열심히 사는 데 나만 포기할 수 없지. 단지 기분에 휩쓸린 것뿐이야. 술도 그만 마셔야겠다. 진짜.



아, 위로는 사람에게서 받아야 하는 데...

아니다. 사심 없이 위로해줄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내가 마음의 문을 닫고 열어 주지 않은 건 아닐까? 괜히 친구에게 짜증내고 나온 게 마음에 걸렸다. 매일 밤마다 술만 마신 것도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또 마음이 울컥해져 코가 막혔다. 이놈의 눈물은 왜 이렇게 계속 나는 거야? 나도 참...늙었다.




전화를 걸어 볼까...




아까 친구에게 소리지른 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번호 목록을 뒤지다가, 어느새 새벽 2시가 넘은 게 보였다.





어이쿠... 마누라가 또 한 소리 하겠군.




나는 폰을 다시 잠바 주머니에 넣고 잰걸음으로 걸어갔다. 오늘도 한소리 듣겠군. 아니 분명 삐져서 말도 안 하겠지. 내일은 마누라를 위해 맛있는 거라도 해줘야겠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음식을 해 준 기억이 꽤 가물 거리네. 연애할 때는 자주 해주곤 했는 데.




괜히 옛날 생각이 나고 살아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크크큭....들뜬 마음이 들자 콧노래가 나왔다.


그래.다시 시작해보자.마음먹기 달린거야.


집으로 돌아오니 언제나 편안하면서도 불안한 고요함이 등줄기를 훑고 내려갔다. 그래도 집이 최고지...나는 대충 신발을 털어서 벗고 잠바를 벗어 던졌다.



다... 자나?




나는 마누라가 깰까봐 발걸음을 낮추고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대충 물만 묻히고 거실로 나왔는 데 이제 보니 마누라가 부엌 식탁에 앉아 있었다.




"깜짝이야. 안 자고 뭐해?"




마누라는 대꾸가 없었다. 나는 또 화가 났구나 싶어 가까이 다가갔다. 소주가 어느새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어휴, 뭔 술을 이렇게 먹어?"


"왜, 나는 마시면 안 돼?




목소리가 다른 날보다 더 차갑고 싸늘했다. 나는 기가 죽어 본능적으로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안 잘 거야?"




마누라는 대꾸 없이 다시 소주를 마셨다.




"어이고, 안주도 없이 마실까 우리 마나님이. 같이 한잔 할까?"





하면서 식탁에 앉았다. 마누라는 갑자기 벌떡 하고 일어나더니,





"마실 거면 먹고 치워."





라고 하면서 그냥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식탁에 멍 한 채로 앉아서 마누라의 차가운 뒷모습만 바라봤다. 이크. 술까지 먹는 걸 보니 오늘 화가 나도 단단히 났나 보네. 그래도 이번 건은 한 3일은 가겠다. 조심해야지. 평소에 하던 패턴을 보면 마누라가 언제쯤 화가 풀릴지 대충 짐작이 간다. 어차피 화났을 때 이것저것 말 붙여봐야 짜증만 내고 화만 돋구니까 가만히 있으면 며칠 뒤에 결국 대화를 할 수 밖에 없다. 같이 산 정이 몇 년인데...


내일 일찍 일어나서 해장국이라도 먹으러 가자고 해야겠다. 나는 식탁에 널려진 반찬을 뚜껑을 닫아 냉장고에 하나씩 집어넣고, 소주병과 소주잔을 싱크대에 쏟아냈다.


식탁을 한 번 닦으려고 하는 데 식탁 위에 못 보던 봉투가 있었다.



이게 뭐지?



나는 봉투를 꺼내보았다. 무슨 글씨가 깨알같이 쓰여있고 공문서 같이 보였다.





이게 뭐람?...



나는 좀 더 종이를 가까이들고

.

.








"협의이혼의사 확인신청서"




!!



내 나이 50이 되면 마누라랑 여행도 다니고 자식들 대학 다 보내 놓고 전원주택이나 하나 지어서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 어느 때 보다 고통스러운 50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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