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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Jan 10. 2017

(1분소설) 맞춤 아이

클레멘타인 1분소설







진심이라고 생각했던 일도 한순간 아니라고 결론이 내려질 때가 있다. 거짓도 계속 이어가면 진심이 되어버리고, 진심도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거짓이 되어버린다. 사람의 마음은 단단하지도 무르지도 않다. 그냥 언제나 자신의 입장에 맞춰 모든 것이 진심이거나 거짓일 뿐이었다.






"아니요, 그건 빼주시고요. 아, 아이 일 때 말투는 좀 더 애교스럽게, 성인 목소리 데시벨은 아나운서 수준으로 맞춰주세요. 키는 167cm에 몸은 44 사이즈 표준으로 맞춰주시는 데, 대신 가슴 볼륨은 B컵 이상이 되게 만들어 주세요."




나는 오랜 고민 끝에 아이-로봇을 입양하기로 했다. 세상의 경계가 무너지고 여자들은 출산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결혼 제도는 사라지고 사람들은 공동체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래도 약간 낭만 주의자라서 꽤 오랫동안 한 사람과 연애 생활을 하고 있다. 이번 200일을 기념하여 우리 사이에 흔적을 남겨보자고 제안해 왔고, 나는 오랜 고민 끝에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자, 그럼 다시 한번 확인드립니다. 지금 설정하신 레벨은 3살부터 시작됩니다. 또한 10살부터 20살까지는 스킵, 건너뛰기하신 관계로 10살이 되는 시점이 되면 아이-로봇이 자동 부팅되며 이틀 동안 변화가 옵니다. 이때는 각별히 주의하셔야 하는 데 만지시거나 따로 전원을 끄시면 안 됩니다.


항상 전력이 충분하게 제공되는 인큐베이터에서 실시하시되 재부팅된 이후에는 배고파하니 먹을 것을 준비해두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20살이 넘으면 로봇의 입맛이 살짝 변할 수도 있으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마시고, 먹는 걸 거부하면 이것저것 시도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25살부터 다시 세팅하실 수 있는 데 그때는 아이-로봇의 미래를 미리 설계하고 결정하셔야 하기 때문에 저희 회사에서 보내드리는 설명서를 꼼꼼하게 읽어 보시기 바라며 어려운 점이 있으면 자동 설루션 시스템을 구매하셔서 간편 세팅하시면 됩니다."




우리는 계약서를 꼼꼼히 읽어 본 후 동공 스캔으로 인증을 하고 비트 코인 3개월치를 미리 납부하고 왔다.




"오빠, 근데 우리 로봇 눈을 좀 더 작게 해줄 걸 그랬나? 약간 동양미 있는 게 귀엽지 않아?"


"음. 글쎄. 지금 전화해서 눈 크기 좀 줄이라 그럴까? 아직 세포 분열 안 들어갔을 텐데?"


"음 고민되네. 오빠 생각은 어때?"


"일단 만들어지면 키워보고 마음에 안 들면 바꾸지 뭐. 다시 세팅하면 되잖아. 키우다 보면 익숙해 질지도 모르고. 난 너 닮은 큰 눈이 좋은 걸."


"힛. 그래. 알겠어."


아이-로봇은 3살 때 가장 귀여움이 폭발한다고 해서 우리는 시작을 3살로 했다. 뭐 나이야 우리 마음대로 정할 수 있긴 한데, 그래도 너무 갓난쟁이면 귀찮기도 하고 사용 후기를 보니까 새벽에 잘 안 잔다고 한다.


최근 들어 가상 게임 하나에 푹 빠져있는 터라 너무 손이 가면 렙업에 방해가 될 것 같아 갓난 쟁이는 피하기로 했다. 오빠도 요즘 생물 고양이한테 푹 빠져 있어서 그렇게 하자고 동의했다.


집에 생물 고양이 한 마리가 있는 데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유행이다. 한때 고양이와 강아지는 멸종 위기 동물이었으나 미국 셀럽의 고양이 동영상이 돌면서 너도 나도 생물 고양이를 키워 인증하기 시작했다.


나는 로봇으로 구매하자고 했지만(로봇은 저렴하고, 결정적으로 똥이나 병치례가 없다) 오빠는 자기가 관리할 거라고 어디선가 생물 고양이를 비싼 가격에 데려왔다. 나는 처음에는 조정이 안된다는 사실에 심한 멘붕에 빠졌으나 역시 뭔가 키우는 맛이 남다른 건 있다.


하지만 먹는 비용이 실제로 든다는 것과 병원비, 똥 싸는 것과 우는 것 이런 것들이 조정할 수 없다는 게 가끔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이런 것들은 굉장히 비효율적이고 고비용이라 다른 사람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세상은 로봇과 컴퓨터 그리고 수치와 예측으로 이루어져 모든 것은 개인화되었다.

하여 걸리적거리 거나 불편한 점은 언제든 없애버릴 수 있다. 이미 편리함과 정확함에 익숙해져 있는 세대였다.


역사 책에 따르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려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기술은 이런 방향으로 점점 발달하고 우리는 한 명 한 명 모두 신이 되었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유토피아를 꿈꿨다고 하던데, 누구도 슬퍼하지 않고 누구도 아프지 않은 곳, 언제나 행복하고 자신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가상현실로 이룰 수 있는 곳, 굶주린 자가 없으며 모두가 평등하게 제공받는 곳.


지금은 서기 2078년.




드디어 아이-로봇 택배가 도착했다. 아이는 전력을 켜자마자 엄마 엄마 하며 안겼다. 오빠와 나를 적당히 닮은 얼굴은 왠지 친근감이 갔다.


"꺄-오빠 얘좀 봐. 어머 어머 벌써 애교가. 어머 넌 누굴 닮아서 이렇게 이쁠까? 오빠, 얘 내 유전자가 더 많이 들었지? 아마 그래서 그런가? 엄청 이쁘다. 뭐라 부를까 오늘을 따서 20781111이라고 부르자. 어때?"


"좋네. 1111"


"엄마 마마마-"


"얘 엄마밖에 세팅이 안 됐나? 오빠 거기 설명서 좀 줘봐. 아이큐 178로 세팅한 거 맞아? 이상 한데."


"응 맞는데. 아빠도 되고 기본 단어 구사가 다 되는 걸로 했는데. 이상하다."


"아, 뭐야. 짜증 나. 이것들 돈이 얼만데 불량을 만들어?"


나는 아이-로봇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짜증이 나서 밀쳐버렸다. 1111은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눈만 말똥말똥 굴렸다.


아, 진짜 고민해서 세팅해놨건만 버그가 웬 말이야. 짜증이다. 뭐야. 다시 다 세팅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시작하자마자 바이러스 먹은 건가?




나는 쓸 대 없는 데 비트코인을 쓴 건 아닌가 해서 왠지 불안해졌다. 어차피 환불 보증 기간이 7일은 되니까 일단 설명서 보고 다시 세팅해봐야지. 아니면 바로 반품이다. 넌.


3일이 되도록 1111은 아빠라는 단어를 못 했다. 아무리 재부팅해도 그랬다. 회사에 전화해 봤지만 그냥 반품하거나 교환하라고 이야기할 뿐 유전자의 불량의 문제는 0.001%의 불량률이라 자기네도 어떻게 손 쓸 방도가 없다고 했다.


3일 동안 1111은 말은 못 했지만 애교가 철철 넘쳤고 사랑스러웠다. 곱슬 거리는 머릿결과 밥 먹기 전에 입을 벌리는 것도 귀여웠다. 작은 입을 오물오물 거리 거나 자기 전에 내 품에 딱 붙어서 자는 것도 좋았다. 가끔 생물 고양이를 괴롭혀서 오빠에게 혼이 나기도 했지만 아직 고양이에 대한 세팅이 약해서 그런 것 같다. 아니면 진짜 유전자 문제여서 멍청한 건가?




나는 6일 되는 밤 고민에 휩싸였다.


반품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1111은 내 가슴에 딱 붙어서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코에 코딱지가 쌓여서 숨소리가 쇅쇅하고 났다. 나는 코 안을 이리저리 살펴보다 손수건으로 깨끗하게 닦아 주었다. 입을 오물오물 거리며 먹는 흉내를 냈다. 작은 손이 정말 이뻤고 은은하게 풍기는 애기 냄새도 너무 좋았다.


하지만 이대로 멍청하게 자랄까 봐 고민이 되었다.

그전에는 한 번도 고민해 본 적 없던 일이 내 인생 처음으로 생겼다.





로봇일 뿐인데.

진짜 아이가 아니야. 이건 프로그램의 세팅일 뿐이야.





하지만 아이의 미소와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자꾸 귀에서 맴돌았다. 나는 오빠에게 이런 감정을 토로했다. 내일 반품 결정 마지막 날이라고, 이건 분명히 로봇인데 사람과 똑같이 생겼고, 똑같이 행동해서 자꾸 마음이 흔들린다고.



"그건 말이야. 음. 그냥 이런 거랑 비슷한 거 아닐까? 나는 내 생물 고양이를 엄청 사랑해. 사람이 아니지만 사람보다 더 이쁘게 보이고 그래. 때로는 맞춤 고양이 로봇은 아니라 내가 조정할 수 없어 불편하지. 그리고 엉뚱하고 멍청해. 아주 폭발할 정도로. 하지만 행동 하나하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워. 미칠 정도야. 그러니까 무언가에 애정을 쏟는 건 불안한 게 정상이야. 니가 느끼는 그런 감정도 이상한 게 아니지. 로봇이든 생물이든 어쨌든 너가 실제로 사랑할 수 있다는 거 그게 중요한 거 아닐까?"


"하지만 나중에 오류가 점점 심해지거나 바이러스가 변형이라도 되면 어떻게? 요즘 뉴스에서 로봇이 심심치 않게 오류를 일으켜서 말썽이잖아. 지난번에 폭발한 적도 있고, 때로는 주인을 해치기도 한다던데?"


"그런 문제는 그때 생기면 고민하자. 어때?"


"그건 너무 구식 아니야? 어제 프로그램 오류 확인에 의하면 문제가 생길 확률이 63%나 되는 데. 어쩐지 익숙하지 않은 데."


그때 1111이 놀던 장난감을 들고 와서 내 다리에 매달렸다.



"엄마, 엄마. 이거, 이거. 엄마 엄마"



나는 1111의 몸을 들어 올려 안았다. 6일 만에 벌써 무게가 더 나가는 것 같다. 아이는 작은 손으로 내 얼굴과 코 뺨을 이리저리 만지면서 까르르 웃었다. 휴.




"아빠 해봐. 아빠! 아빠"



"아..... 마! 엄마! 엄마!"



"아니, 아빠! 아, 빠"



"암마! 암마! 암 마마 엄마 밥 밥!"





아이의 혈당 수치를 보니 꽤 떨어져 있었다. 나는 버튼을 눌러 수치를 높여 주었다. 아이는 언제 밥을 찾았냐는 듯이 다시 신나게 뛰어놀았다. 아, 나쁘지 않은 데. 그냥 키워봐?





꺄아아악!



나는 다음 날 거실로 나와 소름 끼치는 장면을 보고 기절할 뻔했다. 아이는 오빠가 끔찍이 아끼는 생물 고양이를 죽였다. 기존 의사에게서도 약간의 경고는 들었지만 실제로 이 일이 현실이 될 줄 몰랐다. 아. 이게 뭐람. 아. 아. 아.


아이-로봇은 로봇이라도 아이와 같은 연령의 행동으로 세팅이 되었기 때문에 생물의 펫을 키우는 사람은 그 점을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로봇 펫이라면 다시 재부팅하면 되지만 생물 고양이는 한 번 죽으면 다시 살릴 수 없다. 물론 복제할 수는 있지만 오빠는 유니크함이 없다고 복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모든 게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사고라니.



나는 오빠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환불 요청 버튼을 눌렀다. 1111은 아무것도 모른 채 천사처럼 낮잠을 자고 있었다. 자꾸 신경이 쓰였지만 이건 아닌 거 같다. 오빠도 카메라로 우리 집을 스캔해 보곤 잔뜩 화가 난 듯했다. 1111은 어찌 되었든 사람 아이처럼 보이는 로봇이고 고양이는 진짜 생물이었다.



잠시나마 아이가 소중해질 것 같았던 진심은

현실과 이상의 벽이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다 쓸데없는 감정이 되어버렸다.




진심이라고 생각했던 일도 한순간 아니라고 결론이 내려질 때가 있다. 거짓도 계속 이어가면 진심이 되어버리고, 진심도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거짓이 되어버린다. 사람의 마음은 단단하지도 무르지도 않다. 그냥 언제나 자신의 입장에 맞춰 모든 것이 진심이거나 거짓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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