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클레멘타인 Feb 08. 2017

전학생 1

#클레멘타인1분소설

그를 처음 만난 건 더위가 성가시던 고3 여름 방학 전이었다. 나는 서울에서 전학 온 첫날부터 엎드린 그의 동그란 뒤통수를 보았다.


전학 첫날, 3교시 담임의 국어 수업이 끝나고 반 아이들 앞에서 데면데면한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는 텅 비어 있던 맨 끝자리에 그의 짝꿍이 되어야 했다.


경은 안 쓰지만 눈이 나쁘고, 키가 좀 작은 탓에 뒷자리는 칠판이 보이지 않는 데.


잠시 머뭇대는 동안 곧바로 수업 시종이 울렸고, 담임은 빨리 가라는 듯 나를 빤히 보았다. 이상한 건 그의 옆자리에 앉으라는 담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이 수근 거렸다.


뭐지. 불편한 기운이 감지됐다. 하지만 빈 자리는 하나였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자석처럼 끝자리로 걸어가 그의 옆에 앉아야 했다.


아 끈적거려...


6월의 햇볕이 뜨겁게 만져지는 창가 자리였건만, 왠지 모를 음침함이 느껴졌다. 덥다 라기보다는 끈끈한 습기가 허벅지에 달라붙었다.


나는 첫날이라 조금 어색 괜히 새로 산 노트를 펼쳤다. 정숙하게 앉았지만 아직 무슨 수업인지 몰라 주변만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말이라도 걸어주지. 옆 자리를 곁눈질 했지만 그는 내가 앉아도 여전히 엎드린 채 미동이 없었다. 


휴.짝꿍 복도 없는 년...


그러고보니 선생님이 오기 전인데 아이들은 어쩐지 기운이 고요했다. 뭐지. 종이 울려도 여전히 누워있는 옆 짝 뒤통수를 보고 있자니...어디보자. 가마가 두 개?뒤통수 꼭지에 머리카락이 군데 군데 뭉쳐 이리저리 어지럽게 흩트려져 있었다. 으휴. 드러.


너무 잤네. 너무 잤어. 까치가 둥지 틀겄어.쯧.


이윽고 험악한 호랑이 같이 생긴 영어 선생님이 들어오고 아이들은 영어로 인사를 했다.


어텐션! 바웃!

헬로 미스터 김!


후아. 아까 담임 시간이랑은 차원이 달랐다. 나는 왠지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손으로 여전히 자고 있는 짝꿍 어깨를 살살 밀었다.


뭐야. 이 인간. 나무 늘보야?



"저기, 얘, 수업 시작했어"



그는 약간 움찔하는 듯했지만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는 괜히 초조해져서 다시  한번 엎드린 녀석의 귀에 가까이 가서 속삭였다.


"야,쌤 들어왔어. 일어나."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뭐야, 레알 딥 슬립??

혹...노는 애인가?일진?



순간, 나는 호랑이와 눈이 마주쳤고 포스에 눌려 괜히 노트에 필기하는 척했다. 영어 쌤이라 그런가 등치가 서양스타일이야...




아 근데 뭐지.

첫 날부터 괜히 나까지 불편하네.




아이들은 수업 내내  숨도 쉬지 않았고, 갑자기 단어 쪽지 시험을 보기 시작했다.


아, 무슨 단어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러다 갑자기 호랑이 선생이 교실을 돌기 시작했다. 내가 앉은 뒷자리에도 올 것 같아 나는 긴장했다. 아 어떡하지? 나는 손에 쥔 샤프를 꾸욱 쥐고 괜히 노트에 동그랗게 색칠하며 까만 점을 그렸다.


저벅저벅.


호흡이 가빠져 나는 코를 박고 노트만 봤다. 호기 좋게 자고 있는 녀석때문에 괜히 나까지 불안해졌다. 불똥이 튈 것 같아.


앞을 보고 있지는 않았지만 가까이 오는 기운이 느껴졌다.


이윽고 호랑이는 내 앞자리에 까지 왔고 나는 심장이 곤두박질 쳤다. 다시 한번 슬쩍 옆 짝을 샤프로 쿡쿡 찔러봤지만, 그는 고양이처럼 다시 몸을 웅크리기만 할 뿐 일어나지 않았다.


"너 뭐야? 책도 없고."


호랑이는 우뚝 서서 나를 잡아먹을 듯 쳐다보았다. 들고 있던 지휘봉으로 내 노트를 뒤적뒤적 건드렸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약 3초간 아무 말도 못 하고 책상만 보았던 것 같다.


"책 얻다 팔아먹었냐니까?"


그때 어디선가,


"걔 전학생이에요"

"오늘 전학 왔어요."


라고 했다. 나는 그제야 용기를 내며


"아...저... 전학 왔는 데요. "


"전학생? 언제?"


"오늘..."


"... 그래? 다음 시간에는 반 애들한테 물어보고 다 준비해오고, 어? 노트만 덜렁 꺼내놓지 말고. 전학 왔으면 더 열심히 해야지. 안 그래?"


그는 커다란 지휘봉으로 내 노트를 툭툭 때렸다.


아씨... 쫄았네.


 나는 고개를 끄덕 걸렸고, 그는 다시 교실을 천천히 한 바퀴 돌고 있었다. 졸고 있거나, 다른 짓 하는 아이들, 책이 없거나 어리바리 거리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잡아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여전히 내 옆자리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아무 말도 없었다. 왜 얘는 그냥 두지?



나는 그렇게 긴장한 채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 수업 종이 울려도 그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단순히 지각인가 생각했지만 점심시간이 다되도록 그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반 아이 중 누구도 그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선생님들도 내 옆자리가 왜 비었는지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으나 똑같은 취급을 받고 있었다. 나는 너무 궁금해 앞자리에 앉은 미리에게 살짝 물어보았지만, 응. 원래 그래. 라시큰둥한 말로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아. 원래 그렇구나.


뭐가 원래 그런 거지?

모두가 그아이를 유령 취급하는 게?



나는 사라진 내 짝보다 그를 사라지게 만든 반 아이들과 학교가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방학을 하루 앞둔 아침, 앞문으로 교실에 들어섰을 때 나는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그를 보았다. 아니 정확히 그의 뒤통수를 보았다.


 여전히 그의 자리는 그가 존재해도 그림자가 드리운 듯 텅 빈 것처럼 느껴졌고, 나는 조용히 교실로 들어가 책상 위에 가방을 벗어 올려놓았다. 오랜만이라그런가. 괜히 어색한 기분이 들어 나는 분주하게 자리 정리를 하는 척 하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엎드린 그의 등 뒤에서 말을 걸었다.


"저기...

...... 야"


여전히 묵묵 부답이었다.


...자냐...?



흡. 가까이간 그에게서 뭔가 울적한 냄새가 났다. 습기 가득 품은 냄새가 6월의 땀내와 섞여 오묘한 느낌이었다. 뭐랄까. 마치 지하실로 내려가는 낡은 시멘트 계단에서 나는 물 냄새 같았다. 어둡고 콤콤한 그 냄새가 나는 자꾸 신경 쓰였다. 뭐지. 얘는 도대체 뭐하고 다니는 걸까.


다시 한번 깨우려는 데


"야야야 담탱이 떴다."


우리 반 까불이 정재가 앞 문을 열어 젖히며 요란하게 들어왔다. 아이들은 저마자 자기 자리를 찾가 앉았고,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톱 깎기를 찾아 길어진 손톱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너네 내일 방학인 거 알지?"

"네!"

"괜히 시내 술집에서 어슬렁거리다 나랑 마주치지 말자? 어? 엄하게 아르바이트한다고 이상한데서 마주치지도 말고, 알았지?"


나는 아침 종례가 끝나자마자 그를 흔들어 깨웠다.


"야, 야, 일어나 봐. 야!"

"아. 진짜"


그는 엎드린 채로 대꾸를 했다. 뭐야, 다 듣고 있으면서 왜 그동안 씹은 거지? 이것 봐라.


"너 자러 왔냐? 수업 시작했어"

"아,어쩌라고."


그는 다시 깊게 웅크리며 몸을 말았다.뭐야. 재수 없는 놈. 나는 어이가 상실해서 더 말을 걸지 않았다. 곧 호랑이 영어 수업이 시작된다.



아놔.

자빠져자는 너 땜에 호랭이 관심 끌기 싫단말이야!





"자, 다음 읽어봐. ......전학생."


아씨. 갑자기 뜬금없이 나를 지목하다니. 왜?왜?

늘 날짜에 따라 번호대로 시키는 데 왜 하필 나야? 자기 차례를 준비했던 아이도 놀라고, 나도 놀랬다. 더불어 룰이 깨지자 다음 차례가 자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멘붕에 빠진 아이들은 갑자기 책에 코를 박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전학생, 너 해보라니까."

"네? 네... 어... 아이 위시 어... 릴.. 릴..어...뭐지.."

"아쭈. 날탱이가 전학 왔구먼. 됐고. 서 있어. 그 앞에."

"네? 어..."

"이 자식들이, 됐어. 그 앞에"

"캔 아이.."

"뭐? 어디 보고 있어? 어쭈. 이것들이 긴장 안 하지? 어??"


갑자기 목소리 데시벨이 비행기 소음처럼 커졌다. 끄악. 나는 깜짝 놀라서 딸꾹질이 나왔다. 내 앞으로 반아이들이  줄줄이 다 서있었다. 호랑이는 열이 잔뜩 받은 표정으로 길길이 날뛰었다.


"되는 놈만 손들어봐. 되는 놈. 나 할 줄 안다 하는 놈"


몇몇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번호 불러"


그는 어딘가에 번호를 받아 적더니,


"나머지는 다 생활 점수 마이너스다."

"엉~"


아이들은 단체로 야유를 보냈다.


"이 새끼들이 어..? 아직 정신 안차려? 어 -소리 낸 놈 누구야? 일어나! 불만 있는 놈 나와!"


아이들은 그의 고함에 아무런 대항도 못 했다. 뭔가 불공정한 듯 공정한 거래에 아이들은 덫에 걸린 생쥐 처럼 찍찍 거리기만 할 뿐 아무도 나설 수 없었다. 측은한 꼴이였다.


나는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상황에 벌써 이런 일이 생겨서 짜증이 났다. 게다가 하루만 버티면 방학인데.


그러나 이런 사태에도 맘 편안히 자는 녀석이 있으니 바로 그였다. 대박.


그는 혹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내 눈에만 보이는 걸까? 왜 호랑이 선생 조차 그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걸까?




혹, 이사장 아들?




나는 그의 깡다구도 부러웠고, 이런 사태와 상관없는 그의 속사정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야, 너 혹시 신의 아들이냐?"

"야, 너는 왜 아무도 뭐라고 안 해?"

"야"

"야!"

"야!"



"거참 더럽게 말 많네. 디쥘래?"



천천히 그가 몸을 풀고 일어났다. 나는 깜짝 놀라서 필통을 다 떨어트렸다. 뭐야. 갑자기 일어날 게 뭐람? 고개를 숙이고 지우개와 연필을 주워 담았다. 그리고 책상 위로 올라와 그와 마주친 나는 순간, 호흡이 멈추는 줄 알았다.



오 신이시여.

세상에서 이렇게 잘 생긴 소년은 처음이었다. 



"죽고 싶냐?"



나는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손에서 지우개가 다시 미끄러졌다.


"왜 자꾸 사람 귀찮게 해? 어?"


"아... 저기..."



반 아이들이 그의 목소리에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너무 얼어서 아무 말도 못 했다.



"건들지 마라."



그는 다시 엎드렸다. 나는 필통을 집어든 채, 책상 위로 올라온 그 자세 그대로 계속 멈춰있었다. 시간이 멈춘 건지 내가 멈춘건지. 


머리가 하얗게 변해서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무슨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아무런 지시를 내리지 못했다. 뇌는 멈춰버렸고, 세상은 백지장으로 변했다.




아...존잘.

...연예인 지망생인가보다...




나는 금새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방학이 시작되고 나는 맥도널드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고3이지만 대학에 목 맬필요없다는 쿨한 엄마덕에 나는 어릴 때부터 알바를 해왔다.


이곳에서는 나름 사이즈 업을 위한 멘트가 잘 먹혀 점장님에게 칭찬을 받으면서 일했다. 하루는 오픈 조에 언니가 갑자기 그만두는 바람에 점장님이 나에게 부탁을 해왔다. 나는 엄마에게 미리 말하고 새벽 조에 헬퍼를 나가게 되었다.



"어, 너?"



그였다. 사복을 입어서 처음에 알아보지 못했지만 분명 내 짝꿍이었다. 밖에서 보니 훨씬 잘생긴 얼굴이네. 입구에서부터 빛이 났다.


아. 얼굴 진짜 미쳤네.


그런데 새벽 6시가 되어가는 이 시간에 햄버거라니. 공부했을 리는 없고 겜방 갔다 오나? 그러나 여전히 관심 없다는 듯한 무표정이었다. 두근두근. 그를 본 후 눈치없는 심장이 나대기 시작했다. 



"빅맥 세트 하나"

"드시고 가시나요?"

"어."



아유. 저저 말하는 꼬라지 보소.

재수 없어.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좀 전의 환상이 단번에 깨지는 저 싸가지없는 말투.


열일하는 얼굴 때문에 내가 깜박했네.

학교에서도 재수 없는 데 밖에서는 다를까. 얼굴값하나?


나는 약이 바짝 올랐지만 여기서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빅맥세트 하나 나왔습니다!"

"야. 너는 코 앞에 사람있는 데 뭘 그리 소리쳐. 손님도 나 뿐이구먼. 수고!"




이런 씨...정말 뽱당한 ㅅㄲ ...헐.



다음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1분소설) 맞춤 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