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서 우리가 되기까지

집단의 욕망은 나의 욕망을 뛰어넘는다

by 클레멘타인

세상이 분열되고 작은 움직임들이 움트고 있다. 소셜로 인한 정보는 클릭 한 번으로 세상으로 뻗어가고, 친구가 무얼 하는 지 친구의 친구가 누구인지 앉아서 천리를 보는 시대가 되었다. 고로 내가 무엇 욕망하는 것까지 나와 관계 없는 누군가도 알 수 있다.


나는 욕망한다. 내 능력이상의 무언가를. 가끔 그런 것들이 당연하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 내가 욕망하는 것들은 내가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욕망하며 남의 욕망을 관찰한다. 그러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만나다 보면 자연스레 그 욕망의 덩어리는 하나로 통합된다. 신기한 건 통합된 욕망은 1+1=2의 숫자 개념이 들어차지 않는다. 이것은 1+1=2+@의 개념으로 변질된다.


식당이 있다. 서로 가격경쟁을 하는 상대들이다. 그러다 누군가 '이봐, 우리 이렇게 경쟁하지 말고 힘을 합쳐보는 건 어때? 우리끼리 경쟁해봤자 우리만 죽는거야. 우리가 힘을 합치고 우리는 소비자와 경쟁하자구.' 과도한 출혈경쟁에 머리가 아파지는 식당들이 하나 둘 모인다. 그렇게 서로의 살을 갉아 먹던 음식 가격 및 서비스를 머리 모아 하나로 만들어 낸다. 더 나은 서비스도 더 나은 가격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딜 가든 가격이 비슷해지고 서비스도 비슷해진다. 마치 모든 골목에 '원조' 할매가 들어선 것 같다. 소비자는 어리둥절 하다. 어디로 가나 거기서 거기니 그냥 같은 서비스와 같은 가격에 같은 음식을 고르는 선택의 자유를 빼앗긴다.


그렇게 식당이 편해지고 소비자도 불만은 있지만 무언가와 비교할 수 없으니 그냥 구매한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에 끼지 않은 식당이다.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해도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신념이 있고 철학이 있기 마련이다. 나름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수록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다른 집단의 단체 행동에 섣불리 힘을 합치지 않는다.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이다.


그렇게 집단에 끼지 않은 '식당'은 가격을 자신만의 룰로 정한다. 메뉴도 바꾸고 서비스도 차별화 한다. 그런 소비자는 눈에 튀는 이 식당으로 갈 것이다. 자, 문제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집단은 이런 '개인' 행동을 용납하지 않는다. 집단의 상식에서는 우리끼리의 과도한 경쟁은 우리 살을 깎아 먹는 자살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식에서 벗어난 자살 행위를 하려는 식당이 있다. 그러면 가서 목숨을 건져 주느냐, 글쎄


가서 일단 회유를 해보겠지. 우리 팀에 들어와라. 왜 혼자 고생하느냐. 그러나 먹혀 들지 않으면 결국 하는 일은 칼을 빼드는 것이다. 그냥 두지 않는다. 왜냐면 집단의 체계를 무너뜨리는 행위니까. 각종 비리를 고발한다. 끝없이 위생과에 신고한다든지, 법적인 조치를 취한다던지, 고객을 가장한 무언가를 한다든지, 영업을 방해한다든지 아무튼 그렇다.


사실이냐고? 글쎄. 그냥 예시다.


하지만 조금만 찾아본다면 그런 예시는 너무 많다. 오늘 교육을 갔는 데 그곳에도 협회가 후원을 하고 있었다. 간식거리와 기념품을 나눠 주면서 자신들의 협회에 가입하는 시간을 마지막에 시와 협의해서 갖기로 한다. 그렇게 교육을 하는 도중 협회 사람이 아닌 누군가가 교육에 대해 질문을 하면 , 교육을 방해 한다고 손가락질 하고 나무란다. 일명 '가만히 있으라' 이다. 선생님이 교육하실 때는 억지스러운 질문을 하며 흐름을 끊어서는 안된다. 그들의 생각이다.


이런 집단 행동은 왜 생겨나게 되었는 가? 인간은 태생적으로 연약한 존재이기에 무리지어 산다. 연한 나뭇가지도 묶어서 부러뜨리기 어려운 것 처럼 함께 할 때 안정감을 느낀다.


결국 문제는 생존이다.

지금같은 자본주의 경제에 생존은 무엇일까.이 좁은 땅떵어리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가격은 인터넷으로 인해 모두 오픈되었고, 특별한 노하우랄 것도 없이 기술과 지식은 공유되었다. 그 동안의 경력이라든지 자신들만의 유통경로도 없다.


이제는 자신 스스로의 존재 이외에는 모든 것이 경쟁체제 속으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그러니 100명 중에 한명이 되느니 100명인 1명이 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집단으로 움직이면 몸빵이 훨씬 수월하다. 우리의 의견도 더 빨리 퍼트릴 수 있고, 한 명이 와서 조율하는 것 보다 아무래도 떼로 가서 조율하는 것이 먹혀드니까.


집단의 이기성은 개인의 이기성을 넘어선다. 그것은 누가 누굴 손가락질 할 것도 없이 누구나 자신의 입장을 고집하기 마련이다. 누가 자신의 이득을 버리며 살신성인 할 것인가. 살신성인 하지 않아도 가만히 있어도 숨막혀 죽을 것 같은 요즘 세상에 굳이 남을 위해 살신성인하는 정신이 어디 쉬운가. 나도 어렵다. 나도 못 한다.


세상은 욕망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 욕망의 크기가 커지면 커질 수록 위험하지만 그 쪽으로 흐를 경향이 크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지역이기주의가 판 치고 동네 민심은 사나워 지며 청군백군은 갈린다. 세상이 원래 그러니 그려려니 하고 두고 보자는 이야기가 아닌다. 그렇다고 사사건건 모든 것을 따지고 넘어가자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다 이득을 취하려는 경향이 있고 욕망을 채우려는 욕심이 있다는 걸 인정하자. 그리고 그것을 서로가 견재하는 것 또한 당연한 것을 인정하자.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볼 수 있을 때 남의 허물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나를 위해 어떤 욕망을 부리고 있는 가. 가격은 더 싸야하고 질은 더 높아야하고 서비스는 친절해야 하며 하다못해 덤이라도 더 줘야하고 우리는 소비할 때 마다 많은 요구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원가, 원가 하며 따진다는 것도 문제가 있다. 원가는 원가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원가를 생각할 것이라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물건 구매를 하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마음이 어찌 그러랴. 내가 낸 돈 이상의 무언가를 바라고, 파는 사람은 내가 투자한 금액 이상의 이득을 바란다.


욕망은 늘 그렇게 서로를 견제한다. 그것이 집단화 될 때 개인의 욕망은 집단에 숨어들어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난다. 사회의 속도가 빨라지고 정보와 지식은 이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상향 평준화 세상이 되었다. 욕망의 눈높이는 어떤 세상이 오던 내 위치 보다 높다. 이런 세상에 우리는 이제 무엇을 욕망하는 가.


아마 그것에 대한 대답은 인문 그리고 마음과 자아성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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