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멘타인 솔직 에세이
'글쎄. 잘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 중 하나가 아닐까. 많은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 동시에 많은 사람이 자신은 정직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 두 부류는 어느새 합집합이 된다. 따로, 또 같이 존재하는 진실과 거짓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일단 나는 거짓말을 잘 한다. 그 이유는 나의 글에서 볼 수 있다. 소설이라는 것은 어찌 되었든 나만의 거짓말에서 시작한다. 어떤 진실에서 시작해 거짓으로 가기도 하고, 거짓에서 시작해 진실에 도달하기도 한다. 이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진짜처럼 느낄 때 나는 희열을 느낀다.
그렇다.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본인의 거짓말이 세상에 먹힌다는 걸 알게 될 때다.
얼마 전 거짓말에 대한 다큐를 봤는 데 무척 흥미로웠다.
사람이 거짓말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스스로의 용인이 이라는 점이 특히 그랬다.
누구에게나 어떤 결정에는 약간의 여유가 있다. 무언가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우리 결정을 완충제 역할을 한다.
우리는 컴퓨터가 아니며 본능과 감정 그리고 무의식이라는 손에 잡히지 않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것들은 스스로 세팅값을 집어넣을 수 없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 멋대로다. 이 녀석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바로 '합리화'의 공간이다.
하여 거짓말을 했을 때 이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는 위아래 오차범위가 저마다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음료수 자판기가 있다.
여기에 천 원을 넣으면 음료를 고를 수 있고 희한하게 돈이 다시 나온다.
나는 아무런 손해 없이 음료수를 얻게 된다.
여기서 멈추면 좋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대게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한다.
1. 자판기에 돈을 넣는다.
2. 음료를 뽑는다.
3. 돈이 그대로 나오면 다시 자판기에 넣는다.
이 행위를 3-4번 반복한다.
4. 가까운 지인에게 전화해 이 사실을 알린다.
자판기에서 돈이 나왔다고 자판기 주인에게 전화해 알리지 않는다. 대신 과거 어느 때 인가 내 돈을 먹었던 자판기를 기억해 낸다. 나는 같은 자판기는 아니어도 자판기라는 물체에게 내 돈을 빼앗긴 기억이 있다. 그것은 음료 자판기 일 수도 있고, 오락실 게임기 일 수도 있다. 어떤 상황이었든 나 역시 손해를 본 기억이 있다.
이런 행위를 5번 이상 반복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 이후로는 왠지 마음에 가책 또는 양심이 찔리기 때문이다. 무한정 반복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선에서 손을 턴다. 그리고 아무도 이 사실을 비난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거짓말에 대한 본인 스스로의 허용범위다.
이 일은 하루의 추억거리가 되거나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며, 다른 사람에게 비난받지 않으면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 다른 사람의 돈을 4천 원 몰래 훔쳐가는 것은 도둑질이다. 나쁜 일이라 판단할 수 있다. 그것이 나의 돈이라면 더더욱 분노는 커진다. 그것 역시 자신의 정의의 범위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 일이 사회적으로 이해하는 범위에 있다면 더욱 심해진다. 왜 자판기가 고장 나서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지인에게 알리는 걸까? 우리는 협력자를 원한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날 때 동질감을 느끼고 사회적으로 괜찮은 일이라 생각한다.
혹 이런 말 해 보았는가?
'저 사람들도 하는 데 왜 나에게만 그렇게 팍팍하게 굴죠? 다 그러는 데?'
결국 거짓말도 사기라는 것도 일차적으로 내가 가장 먼저 허용할 수 있는 범위에 있어야 하고, 그다음으로 주변인들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누구나 그런 결정을 하며, 그 일로 이익을 얻어야 한다. 또한 사회적으로 최대한 알려지지 않아야 하며, 짧게 짧게 하고 지나쳐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어느 시기가 되면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거짓말에 놀라 펄쩍 뛰지만 자신이 아이에게 약속을 어기는 것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잠시 미안하다 생각할 뿐 다음에 보상해 줄게 라는 말로 지나간다.
거짓말에 대한 보상보다 벌이 심각하면 우리는 고민에 빠진다. 예를 들어 무단 횡단하는 사람을 신고만 해도 1억이라고 하고, 벌금도 동일하다고 하자. 무단 횡단에 대한 잘못의 인식이 높지 않은 것은 우리가 '그럴 수도 있다'라는 여유의 생각과 '그동안 무단 횡단을 해도 문제가 없었다.'라는 사회적인 용인이 있었다. 하지만 얄짤없이 최악의 벌금형이라면 우리의 뇌는 항상 경고등을 켜놓고 있을 것이다.
경제사범과 사기가 우리나라 범죄의 5위 안에 들 정도로 우리나라는 거짓말이 판치는 곳이다. 거짓말에 의해 누군가 인생의 나락에 떨어진다고 해도 사기범죄에 대한 형량은 무겁지 않다. 사기 전과가 있는 사람들은 재범의 확률이 높다.
거짓말은 하면 할수록 늘어난다. 그것은 뇌에서 제동 하는 활동이 점차 무뎌지는 것인데, 이는 어떤 자극이 처음에는 당황스러울 지라도 익숙해지면 보상이든 처벌이든 크게 동요되지 않는 것과 같다.
거짓말은 하나의 정보이며, 점점 커지는 욕망이다. 이익을 취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며 결과에 대한 책임은 모호하다.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고, 털어놓고 싶은 비밀이 있다. 우리는 거짓말이 거짓말을 불러온다는 걸 안다. 하지만 허용범위가 각자 다르기 때문에 결국 이해관계가 비틀리고 각자 스스로에게만 합리적이라 결론 내린다.
사람이 거짓말을 할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누군가 미심쩍다면 그 사람 너머에 있는 커다란 이유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어떤 욕망이 그를 거짓의 칼날 위에서 춤추게 할까. 물론 본인도 모를 수 있다.
거짓말이 없는 세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오차 범위가 없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글쎄. 불가능해 보인다.
거짓말을 진짜라고 믿는 게 더 쉬워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