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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Jun 13. 2016

인소 :욕망의 바다

정해진 삶

여왕님, 여왕님 일어날 시간이예요.


...벌써?


눈을 떠 보니 방안은 여전히 밤은 공기로 가득하다. 새벽달이 어스름하게 창가에 걸터 앉아 그네를 타고 있었다. 나는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떨어트리며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하인 찰스가 침대 맡에 서서 빙긋 웃으며 나를 내려다 보았다.


으으응, 아직 새벽인거 같은 데? 해도 안 떴잖아.


아유 참, 여왕님도. 오늘은 일찍 일어나서 예절 교육하셔야지요. 그래야 저희의 훌륭한 여왕님이 되시죠. 자아, 이제 그만 일어나셔요. 목욕물 준비됐습니다.


나는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찰스가 준비해준 옷을 주섬주섬 입으며 욕실로 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욕조가 유난히도 깊어 보였다.


그 속에 들어가면 영원히 나오지 못 하는 건 아닐까. 하인들이 나를 죽이려고 물에 독을 탄건 아닐까. 혹시 누군가 나를 물 속에 집어 넣지 않을까.


나는 쓸대없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욕조로 다가갔다. 물은 깨끗했고 고요했다.


여왕님, 어서요. 시간이 없답니다.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나는 찰스의 보챔에 한 숨을 쉬며 욕조로 들어갔다. 조금 뜨거워 순식간에 온 몸에 닭살이 돋았지만 참을만 했다. 불과 잠들기 전에 목욕했는데 왜 일어나면 또 목욕을 해야 하는거람. 난 겨우 4시간 잤는데. 가끔 이런 말도 안 되는 규칙들은 누가 만들어 놓은 건지 당장 그를 잡아다가 처형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찰스가 아니란 건 확실했다. 왜냐면 찰스는 하인이니까.


10분 정도 욕조에 앉아 있다 답답한 숨을 참지 못 하고 욕조에 한 동안 걸터 앉아 있었다. 목욕시간은 정확히 40분. 그 시간을 채워야지만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옆에서 시중드는 소냐는 입이 무거운 편이라 내 이런 행동도 눈감아 준다. 하지만 24시간 가까이서 늘 나를 지켜보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없어.


그래도 찰스처럼 잔소리를 한다거나 이리저리 보채거나 하는 타입은 아니다. 참말 다행이다. 다음 시녀를 또 뽑으라 한다면 무조건 벙어리로 뽑을 것이다. 그러면 잔소리에서 해방될 것 같아. 이곳은 잔소리 하는 인간들로 넘쳐나거든.

이거해라. 저거해라.안된다.된다. 여긴 감옥이야. 편안하고 꽤 넓은 감옥. 내 의지나 생각은 필요없어. 난 그저 해야 할 일만 있을 뿐. 



난 시간에 맞춰 욕조에서 빠져나왔다. 소냐가 커다란 타월로 김이 나는 몸을 감싸주었다. 잠시 스친 그녀의 손은 얼음같이 차가웠다. 부드러웠지만 사랑스러운 손길은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이 모든 것이 그저 일이였을 뿐이다.


여왕님, 식사 시간입니다.  식사 후에는 이웃나라 대신과 교역 문제로 외국어 공부를 하셔야합니다. 다음으로 뒷뜰에서 승마 교육이 있으며, 허기를 채우기 위한 다도 시간이 이어서 잡혀있습니다.


어휴.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어쩐지. 모래알을 으적거리는 기분이다. 도대체 아무짝에도 쓸일없는 이런 교육들을 왜 계속 받는 거지? 어차피 외국 사신이 오면 통역관이 해주고, 위험하다고 말타고 궁 밖으로 나가지도 못 하는 데. 그리고 난 대충 마시고 싶어. 무슨 차 한잔 마시는데 뜸 들여라 손은 이렇게 해라 그런 게 다 무슨 행복이지? 대충 먹으면 그 사람을 무시하는 거야? 왜?


도대체 이런 모든 일들은 다 누굴 위한 거야?

 

나야? 하인이야?


난 어쩌면 여왕이라는 감투를 씌운 한낱 꼭두각시 일 뿐이야. 하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여왕이 반드시 필요하지. 그래야 하인으로서의 삶이 빛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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