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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Jun 11. 2016

(1분소설) 감정 알약

어느 살인마의 고백


자 , 이제 이 알약을 먹으면 자넨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거야 .어떤가 선택하겠나.




그 거지같은 선택은 절대 하면 안되는 일이었다.

 




2016년 12월의 어느 날, 나는 곰팡네가 가득한 창원의 반지하에서 체포되었다. 13명의 사람을 잔인하게 죽였다는 이유로.



감정을 못 느끼는 인간. 사이코패스. 사회적 공감능력 제로. 그게 나의 살인 원인이라고들 했다. 그런가? 나는 최고형인 사형을 받았고 오래 시간 감방에서 생활을 했다. 나는 연쇄살인마 자칼로 불렸고 감옥에서도 딱히 귀찮게 구는 녀석들은 없었다. 밥도 주고 여기도 살만 한 것 같다



복역 10주년이 되는 날 , 문득 나는 혼자만의 기념식을 실행 해보기로 했다. 적당한 놈을 골라 기념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일은 10년을 생각했기 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았다.



사람들은 10년동안 변하지 않으면 과거로 미래를 판단하기 때문에 내일도 조용히 지낼 거라고 생각하고 안심한다. 내가 어떻게 온 지를 까맣게 잊는 것이다. 인간들은 아무리 큰 일이 있어도 남의 일은 잘 잊으니까.



쉬웠다. 내 기념품은 빅 보스라고 불리는 덩치가 좀  큰 백 돼지같은 놈인데 밖에서 포주로 있다 아가씨가 몇 명 죽는 바람에 들어온 녀석이다.



딱히 자비라던지 정의라는 개념으로 놈을 고른 건 아니다. 단지 내가 갖고 싶었던 건 놈의 긴 팔뚝 뼈였다. 감옥 안에 있는 놈들 중 제일 통뼈에 골격도 좋아보였다. 10주년 기념품으로 안성맞춤이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정확한 계획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실행했다. 그리고 그 일로 나는 독방에 갇혔다.





몇 달이 지났는 지 기억은 안나지만 그 놈이 찾아온 건 따스한 어느 봄이었다. 비죽한 얼굴을 들이밀고 축축한 이마를 연신 닦아대던 녀석은 내게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내일 사형을 당할 것인가 아니면 정부의 의약품 실험 대상이 될 것 인가


너무 갑작스러운 사형이라 나는 고민이 되었다. 여기 있으면서 콜렉션을 좀 완성해보고 싶었는 데. 이제 겨우 시작인데. 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고 녀석은 아침에 다시 오겠다고 했다.


오랜만에 갖는 불면증이었고 나는 뜬 눈으로 푸른 달이 붉은 태양이 될 때까지 고민해야 했다. 무엇보다 대답을 할일이 많아 귀찮아 질 것들에 대해 생각해 봐야했다.





할께요. 그거.

 



잘 생각하셨습니다.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실 거예요. 그럼 이쪽에 싸인 하시고, 참. 깜박할 뻔 했는데 약간의 부작용은 있습니다. 모든 약이 그렇듯이.




무슨 부작용?




뭐, 별 건 아니고. 어지러움이나 구토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요. 크게 걱정할 건 없어요. 마음만 단단히 먹으면.



...?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나는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 하고 가는 놈의 얼굴에서 희미한 미소를 보았다. 누가 내 커피에 침이라도 뱉어 놓은 것 같은 심증은 있는 데 물증은 없는. 그런 드러운 기분.저 새끼는 내 다음 컬렉션할까. 에이 됐다.귀찮아. 안에도 많은 데. 그리고 일단 컬렉션을 하려면 살아있어야 하니까.



부작용? 어떠랴. 어차피 한 번 죽은 목숨인데. 죽기야 하겠어? 뒈지면 내 컬렉션이 완성이 안되잖아. 오우. 그건 안 될 말이다. 난 실행력있는 남자니까.


 




3일 째 되는 날, 나는 토했다. 20번 넘게. 정말 귀찮은 기분이었다. 계속 메스껍고 울렁거리는 기분은. 온 몸에 힘이 쭉 빠지면서 바닥에서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나는 마치 축 늘어진 걸레짝이라도 된 꼴로 하루종일 누워있었다. 그러다 결국 변기까지 가기 귀찮아 고개만 돌리게 토악질을 해댔다. 나오는 것도 없이 계속 신물이 올라왔다.





젠장...일주일 되던 날, 몸이 조금 가뿐해 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쥐새끼 같이 생긴 새로운 놈이 찾아왔다. 나는 이거 언제까지 몸이 비실 거리는 건지 궁금했다.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이 약, 효과 있는 거 맞아요?



쥐새끼는 박장대소했다.



하하하, 이봐요. 그건 제가 그쪽 한테 물어봐야 하는 거죠. 당신 가지고 실험하는 데, 그쪽이 대답해 보시죠? 어때요. 뭔가 다른 기분? 새로 태어난 그런 감정. 뭐 그런 거 없어?




저 등신 같은 게 말이 짧다.




없는데? 일주일 동안 하루 종일 토하는 데 이딴 것도 약이라고 만들어 가지고. 등신들.


큭큭큭. 아무래도 약을 두배로 늘려야 겠군요. 그럼 다음 주에 다시 뵐 께요.


뭐? 야이, 새끼야. 부작용이 심한 데 무슨 약을 늘려? 또라이냐? 야 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 나는 슬슬 짜증이 났다. 아니, 도대체 이딴 걸 약이라고 만들어? 내 몸에다 무슨 짓거릴 하는 거야? 이러다 죽는 거 아니야?


나는 또 어지러워 내 몸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보니 바짝 마른 나뭇 가지같다. 개새들. 약을 두 배로 먹으라니.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우우욱. 우욱. 욱 웩.


약이 두배가 되고 나는 만신창이가 됐다. 살이 몇 키로가 빠진 건지 모르겠지만 옷이 헐렁해졌다. 간수들은 매일 바닥을 더럽히는 나를 경멸했다.




야, 9189! 아, 이 드러운 자식. 너 진짜 언제 까지 이렇게 사냐. 하, 또 지랄해놨네. 비켜 이 새끼야.




나는 수치심이 들었다. 약이 좆같아.



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래요?



간수는 나를 한 껏 노려봤다. 나는 그 눈빛을 받아칠 힘도 없어 고개를 숙였다. 정말 이건 해도 너무하다싶다. 너무 힘들다. 지옥같은 하루가 지속됐다. 지금이라도 약을 그만 먹고 싶다고 하고 싶은데, 계약 할 때 멈추면 바로 사형을 집행한다고 들었다. 왜 내 인생은 이렇게 험난 할까. 눈물이 났다.




이 주일 되는 날 , 신기하게도 아침에 눈을 뜨는 데 몸이 가뿐 했다.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았고 찡찡대는 간수도 귀여워 보였다. 간수의 이마에 작은 점이 있는 게 보였다.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저기 점이 있다니. 나도 모르게 쿡, 웃음이 났다.




어때요? 몸은?




좋은 데요? 나 살빠진거 봐봐? 어제까진 세상 끝날 것 같았는 데. 오늘은 기분이 너무 좋아요. 날씨 때문인가? 밖에 날씨 좋죠? 꽃은 피었을라나?




큭큭, 효과가 좋은 것 같네요. 그럼 이 사진 한번 봐 보세요.




그는 테이블 위로 사진 몇 개를 펼쳤다. 나는 한 장을 들어 보다가 사진을 던져버렸다.




아놔. 뭐예요. 이런 사진은. 기분 좋은 데 . 

피 범벅이잖아.에이.씨.



사진은 얼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뭉개진 사람 형태의 시체 사진이었다. 좀 있으면 아침 먹을 시간인데 밥 먹기 전에 이런 사진은 왜 보여주는 거람? 변태 새끼.




다시 한 번 잘 봐봐요. 기억 나는 거 없어요?




아, 싫어요. 이제 밥 먹을 건데. 뭐야.내가 뭐 변태새낀 줄 아나.






후후후...정말, 기.억.나.는.거. 없.어.요? 자칼?


...!!!



나는 갑자기 심장이 두근 거렸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 바닥이 위로 치솟아 오르는 기분이었다. 미친 심장의 박동은 점점 커져 결국 딸꾹질이 올라왔다. 끅. 끄윽. 끅.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 들고 온갖 소음이 한 꺼번에 들려왔다. 마치 홍수가 날 것 같아 수문을 열어버린 댐처럼 갇혀있던 기억의 물이 원죄의 홍수처럼 쏟아져 내렸다.끅.





그는 내가 첫 번 째로 살인했던 우리 형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나는 기억이 났다. 모래알 하나하나를 셀 수 있을 정도의 디테일한 눈을 가진 사람처럼 지금 까지 살아온 내 인생 모든 것에 감정을 가졌다. 나는 악마였다.





저리가, 저리가란 말이야!!





나는 매일밤 악몽에 시달렸다. 잠을 잘 수 없었고, 소름끼치는 사람들의 절규가 머릿 속을 맴돌았다.






으허헝...살려주세요...제발요...살려..





공포에 빠진 눈,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맴돌 때 마다 나는 오히려 내가 그들에게 살려달라고 빌었다. 그만. 제발 그만. 나도 좀 살려줘. 제발 사라져 줘. ..








그러나 그 옛날에 이미 죽어 흙이 되버린 인간들은 시시때때로 나타나 매일같이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소리질렀다. 그 비명은 때론 하나 였고, 때론 13명의 목소리가 한 꺼번에 동굴 처럼 기괴하게 울려퍼졌다.끅. 그때마다 나는 구역질이 올라왔고 코에서는 피비린내가 났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머릿 속 환영으로부터 도망갈 길은 없어. 지옥이 있다면 이런걸까. 하루 종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

.

.




이 쥐새끼 같은 것들, 무슨 짓을 한 거야. 나한테 도대체!!! 이 악마 같은 새끼들아!! 이 짐승 같은 새끼들아!!!!!!...흐흑...흐흐흐흑....흑...살려주세요....제발...이 소리좀 멈춰주세요...살려주세요..잘못했어요. 네...?





하루에도 수십번 나는 감정의 기복을 느꼈다. 감정을 가진 다는 건 죽기보다 더한, 지옥 그 자체였다.




나는 매일 속죄와 자기고백, 자책감,미안함, 수치심 등 모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반성의 감정으로 머리가 폭발 할 것 같았다. 양심이란 게 도대체 뭐 길래. 그런 감정 따위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건지. 나는 죽고 싶어 몇 번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실패했고 나는 서서히 미쳐갔다.

.

.





이런 약을 만든 놈들은 필시 악마일 거야. 사람 미치는 꼴 보니까 좋냐?만족해?





너희같은 족속들이야 말로 이 약이 필요한 거 아니야? 사람을 실험용 생쥐 꼴로 여기는 이 개 같은 종자들아!돌려놔. 날 예전처럼 돌려놓으란 말이야!!



그 거지같은 선택은 절대 하면 안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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