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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Jun 11. 2016

인소: 습관성 복종

과연 이 사회에는 나 자신 스스로의 진짜 선택이 존재하는 것인가.

 TV 아침 프로에서는 세 명의 MC가 ‘여름을 물리치는 몸 보양식’을 주제로 젓가락을 들고 열변을 토하고 있다.


엄마는 밥을 먹으면서도 푹 고아진 삼계탕이 맛있어 보인다며 저녁에 우리도 삼계탕이나 해 먹자고 한다. 화면 가득히 살아서 꿈틀대는 전복 두 마리. 아래에는 오돌토돌한 살갗을 드러내는 닭의 흰 몸뚱이. 그리고 보신의 진짜 재료인 약간의 각종 약재들. 이런 것들이 하나 가득 어우러져 비좁아 보이는 냄비에서 펄펄 끓고 있다.


엄마는 삼계탕은 엄나무 삶은 물로 해 먹어야 국물이 진하다며 이따가 장을 봐야겠다고 했다. 그리곤 지난번 TV에서 엄나무의 효능이 한번 나온 이후 시장 할머니들이 터무니없이 비싸게 판다고 투덜거렸다. 그래도 동이 난다고.


이런 식으로 우리 집 밥상은 어느 순간부터 대중매체에 의해 간단하게 정해지고 있다. 어쩌면 엄마의 생각거리를 덜어주는 기특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들은 개인이 생각지 않은 선택을 개인의 욕망이라고 속이곤 했다.


 과연 이 사회에는 나 자신 스스로의 진짜 선택이 존재하는 것인가. 나는 수저를 놓고 출근 준비에 다시 박차를 가했다.




늦었다. 나는 늘 비슷한 시간에 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 조급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죽음을 피하려 도망치는 닭처럼 후다닥 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짜증 나는 사실은 가끔 망할 놈의 버스가 5분이나 일찍 오기 때문에 제시간에 도착해도 하릴없이 기다리다 결국에는 택시를 타고 지각을 한다.


 누구의 잘못인가. 시간이란 건 그렇게 주관적인 것을.


매 그렇듯 아침 출근시간은 1분이 1시간처럼 빠르다. 아직 덜 마른 머리에서 물기가 뚝뚝 떨어지고, 허겁지겁 뛴 탄에 정수리 위로 보이지 않는 열기가 스팀다리미처럼 뿜어져 나왔다.


더운, 너무나 더운 8월의 늦은 여름 아침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면 또 한참을 걸어야 한다. 매일 익숙한 그 길의 풍경들, 그리고 인사는 나누지 않지만 친구보다 더 자주 마주치는 상가의 주인들, 마을 사람들, 같은 버스를 타고 내리는 낯익은 얼굴들을 마주친다. 그 짧은 찰나에도 사람들은 서로 안보는 척, 모르는 척하고 있지만 사실은 속으로 다 안다. 서로가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아침 일상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속에는 날 슬프게 하는 것들도 더러 있다. 이 익숙한 퍼즐 속에서 가끔 빠져나가는 조각들, 어느 날 바뀌어 있는 상가 사람들, 임대문의가 붙은 텅 빈 가게들, 굳어버리고 열정 식은 비슷한 표정들조차도 하나의 일상이 되어 무덤덤해진다는 것이다. 무덤덤하게 슬픈 감정을 잃은 슬픈 사실이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어. 왔어? 커피 한잔 부탁해.”


사장은 밝은 얼굴로 인사를 받아주었다. 직장인에 하루의 시작은 이렇듯 카페인으로 시작한다. 어딘가 불투명한 뇌의 감각을 깨워주는 커피는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녹아내리는 뜨거운 한여름의 더위도 시리도록 차가운 카페인 한잔이면 신기하리만치 인생이 덜 고달파진다. 그래서 사장과 나의 암묵의 약속행위는 서로가 반드시 지켜야 할 징크스로 존재한다.


입사 초기, 엄마와 아침 댓바람부터 싸우고, 늘 타던 버스도 허망하게 놓치고, 내 스스로가 창피할 정도로 40분이나 지각까지 하던 날부터였을까. 우리 사장은 엄청난 인내력으로 내가 타 줄 진한 알커피를 오롯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지각할 거면 아예 나오지 마’라는 칼날 같은 충고와 동시에 '커피 한잔 타오라'는 말이 뒤에 아무렇지 않게 척-붙어 나왔다.


인간의 굳은 습관은 그 어떤 의식적인 행동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인가. 그 당시만 해도 입사 초반이라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사장의 아이러니하고 변태적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엿 먹이는 방법도 참 가지각색인 인간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업무 처리시간이 점차 짧아지는 때가 될 만큼 시간이 흐르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징크스처럼 나의 업무 일과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로 자리 잡았다. 우습게도 고작 커피 타주는 일이 말이다. 이 하찮고 작은 행동이 쌓이고 쌓여 무엇으로도 깰 수 없는 견고한 습관이 되어 갈수록, 무서워지는 건 한 가지였다. 


바로 사장의 아침커피에 집착하고 있는 나 ,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을 때다. 

이건 한편의 저주였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내가 타주는 커피를 기다리고 있을 사장을 생각하니, 몸이 조각 날 듯 아픈 날도 나는 버스에 몸을 싣고 출근을 하고 커피를 탔다. 그것은 날 위해서 타야 했다.


다른 수 만개의 이유보다 그 작고 치명적인 바이러스 같은 무형의 생각이 누워있는 내내 머리에 진득하게 달라붙어 기어이 몸을 일으키게 했다.


아. 나는 일종의 사장이 만들어 놓은 실험체였다. 댕-하고 종을 치면 침을 흘려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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