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꿈을 꾸는 건 하지 못 한 말이 있어서 일까.
그 집이 날 부르고 있다.
깜빡 졸았나 보다. 요 며칠 동안 이유 없이 몸이 나른하다. 며칠째 남편은 출장 중이고 집은 내 것이 되었다.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익숙함 속에 낯섦이 느껴져 한 동안 멍하다. 습기찬 이불을 다시 돌돌 말고, 눈만 꿈뻑 거리면서 잠에서 벗어나길 기다린다.
잠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왜냐면 며칠째 같은 꿈을 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눈만 감으면 그 집으로 다시 돌아간다. 마치 그곳이 진짜 나의 보금자리인냥.
그 집은 어릴 때 잠깐 놀러갔던 외할머니 댁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해도 슥슥 그려낼 수 있을 정도의 선명함. 그 진한 기억 때문일까. 그래서 뇌에서 자꾸 그 기억을 꺼내어 보는 걸까.
나는 며칠 째 그 집에서 살고 있다. 내 기억 속의 사람들과 함께.
으윽. 발효라도 되는 것인지 팽창해서 터질 것 같은 종아리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오늘도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죄스러움. 단순히 의도 없는 낮잠을 잔 것뿐인데 세상에서 제일 게으른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아.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하는 수치스러움이 온몸에 덕지덕지 붙는다. 그렇게 불필요한 지방질처럼 게으름의 살이 오른 것만 같아 기분이 께름칙하다.
으차. 터덜터덜 걸어가 커피 머신을 켠다. 아무래도 카페인 부족인 것 같아.
아니면 너무나 단순하게, 남편이 없어서 일 지도.
우우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커피가 내려진다. 나는 이 짧은 순간에도 뜨겁게? 차갑게? 우유를 타서? 등을 고민한다. 결국 정신이 번쩍 들게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만들어진다. 자질구레한 선택까지는 생각이 없었으면 한다. 난 생각이 너무 많아. 그리고 그런 잘잘한 생각의 조각들이 뇌에 박혀버려서 그래서, 자꾸만 예전 기억들이 날 불러들이는 걸 거야. 그 집과는 상관없어. 나의 게으름과도.
커피를 마시면서 잠들기 전의 나의 행동과 잠이 깬 후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내가 뭘 하다가 잠들었지?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6시 30분. 원래 지금쯤이면 남편이 퇴근한다는 전화가 걸려올 때인데, 집은 미친 듯이 고요하다. 마치 멸망한 세상에 나만 남겨진 것 같은 기분. 갑자기 꿈에서 보았던 사람들이 생각이 난다.
그 익숙한 집에서 다 같이 밥을 먹고, 다 같이 이야기하고, 다 같이 그리웠다고... 웃고 있었다.
꿈속 세상, 그리고 늘 따스했던 그 집.
그러나 뭐가 문제일까. 모두가 평화로운 그 순간에도 나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 했다. 마치 입 안에 무언가 가득 들어찬 것처럼 웅얼웅얼...
보고 싶었다고, 어떻게 살았냐고, 그동안 잘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고
그런 말들이 하고 싶었는데.. 입안에서 웅얼웅얼 맴돌기만 했다. 거품을 가득 뿜어내는 한마리의 작은 붉은 게처럼. 할 말들이 보르르르 보르르르 끓어오르기만 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데.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 데. 같은 꿈을 꾸는 건 하지 못 한 말이 있어서 일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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