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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Jan 30. 2018

소확행, 킨포크, 다 집어던지자.

#클레멘타인 솔직 에세이

신경질이 났다.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소확행이다, 슬로우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산다, 나를 찾아라 등등 이런 이야기가 마치 유행가 가사처럼 여기저기 떠돈다.


TV만 틀어도


아등바등 살지 마세요~

왜 그래요? 작은 일에도 이렇게 기부니가 좋은 걸.


하면서 더 느리게 살아도 된다고, 너는 그동안 너무 고생하고 살았다고,

우리는 원치 않는 남 밑에서 일하는 건 자존감을 빼앗기고 영혼이 탈곡기에 들어가는 일이라고.


그런 줄 알았지.

나는 원래 남이 세운 규칙을 싫어하는 인간이니, 이렇게 사는 게 크게 문제는 아닌 줄 알았지.


최근 킨포크라는 잡지를 많이 봤다.


그곳의 여유로움, 사람들과의 관계, 맛있는 걸 손수 천천히 해 먹는 사람들

좋다. 너무 좋다. 워너비다.


나도 이런 삶을 살고 싶어!


그렇게 보다가 보다가 갑자기 어느 날, 정말 갑자기 어느 날, 자고 일어났는 데

신경질이 났다.


킨포크를 자세히 보니,

다들 어느 정도 전문적인 기술이 있는 사람들이 꽤 비싸 보이는 꽤 좋아 보이는 집에, 잘 디자인된 가구들을 듬성듬성, 요리 재료는 유기농, 인터뷰한 사람들은 꽤 자신의 일에 확신이 있는 사람들


뭐야


이거 꽤 괜찮은 사람들이 열심히 살다가 이제는 좀 여유롭게 살아볼까.

하는 그런 이야기잖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러니까 나는,

나는 그런 부류가 아직 아닌데.

마치 저 사람들과 내가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착각은 어디서 온 거지?


나는 프리터족 또는 프리랜서로 하루하루 불안에 떨지만 또 입금이 되면 그냥저냥 한 해를 보내는 정도의 삶을 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불안감을 겨우 남들이 차려놓은 밥상을 보면서


'역시 대세는 이거지'

'놀자, 젊을 때 나를 찾자, 욜로 하자'


하고 있었다.


-

작고 재밌는 물건이 내 손에 있었고, 그 재미는 돈이 얼마 안 들며, 24시간 넘치게 쓸 수 있다.


바로 휴대폰이다.


나는 스마트폰과 콘텐츠의 노예가 되어 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서 어디가 좋더라, 어디가 꽤 멋지더라, 어디 커피를 마셨다 하면 나는 여지없이 그곳으로 가고 있다.


몰랐다면 하지 않았을 행위들에게 나는 시간과 시선을 빼앗기고 있다.


화나는 일들은 자고 일어나면 하루에도 몇 개씩 터졌고,

그 일에 분노하거나, 남들의 의견을 들여다보거나, 무언가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그저 소셜에 글만 몇 개 끼적이다가 또 잊어버린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인지능력과 줏대는 점점 멍청이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신경질이 났다.


하류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1. 연간 수입이 연령의 100배 이하이다.
2. 그날그날 편히 살고 싶다.
3. 자기답게 사는 것이 좋다.
4.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고 싶다.
5. 단정치 못하고, 모든 일이 귀찮으며, 외출하기 싫다.
6. 혼자 있는 것이 좋다.
7. 온순하고 눈에 띄지 않는 성격이다.
8. 옷 입는 패션은 내 방식대로 한다.
9. 먹는 것조차 귀찮게 느껴질 때가 있다.
10. 과자나 패스트푸드를 자주 먹는다.
11. 온종일 집에서 비디오 게임이나 인터넷을 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12. 미혼이다. (남자 33세 이상, 여자 30세 이상인 경우)

-하류 사회, 미우라 아츠시 지음


나는 12개 다다.

ㅠㅠ


위에 책은 좀 너무 극으로 간 경향이 있어서 약간 거부감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해볼 문제였다. 그러니까 하류로 빠진 사람들은 돈의 문제보다는 의식의 문제를 꼬집었는 데, 더 이상 무언가에 대한 의욕이 없다는 점이었다.


의식의 하류화라니.


나는 어쩌다 이렇게 의욕 없는 사람이 되었을까.


불안하고, 불안하면서

왜 이런 게으름의 늪에 빠져버렸을까.


분명 사회가 만들어 낸 일종의 '포기 분위기 조장'일 수도 있다.


어느 날 부터 뜬금없이 취업률이 낮아지니까,

네 꿈을 찾아라. 생각만 해도 꿈이 이루어진다. 빠밤.

이러면서 꿈꿈 해대더니,


이것도 별 시덥지 않자,

꿈이 뭐가 중요하냐. 나 답게 살자.

나나나. 써라. 지금 내가 먹고, 마시고, 여행하는 게 나다.

하면서 없는 돈도 지르게 하더니


이제는 작은 일에 기쁨을 찾아라.

집을 예쁘게 꾸며라.

집에서 놀자. 나가봤자 돈이다. 작은 취미에 만족해라.

로 주제가 바뀌었다.


아예 틀렸다고, 저런 삶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분명 그 동안 고 성장에 목 매달다 놓친 것들이 많다.

하지만 난 고성장 해본적도 없는 데?


-


어찌보면,

돈을 번다는 것은 나만의 기회를 갖는다는 일이기도 하다.

돈을 버는 행위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돈으로 내가 원하는 진정한 무언가를 할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겨우 집 밖은 위험해하면서

벌써부터 거동 못 하는 노인처럼 집구석에만 있으니 왠지 나 자신이 서글퍼졌다.


핸드폰을 통한 너무 많은 접속과 얕고 잦은 소통으로 인해 오히려 외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람도 귀찮고, 관계도 귀찮고, 연애도 귀찮고,

무언가에 에너지 쏟는 일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이미 우리의 에너지는 핸드폰에 너무 많이 쏟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공황 증세가 만연에 펼쳐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일까.

정말 집에서 책만 보는 게 내가 할 일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극도로 양분화된 사회에서,

정말 나보다 치열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나처럼 '여유, 여유'하는 인간을 이해할까.


받아들이는 일보다 만들어 내는 일에 좀 더 에너지를 쏟고 싶다.


아, 그게 뭔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생각 너무 많이 하지 말고, 어려워 말고 일단 해보는 거지, 뭐.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자기 확신이다.

그러니 내 몸에 맞지도 않는 트렌드나 쫒아 살지 말자.


요즘 일기가 점점 미궁으로 빠지고 있다.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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