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봄
후드득, 후드득...
연일 퍼붓던 눈이 그치고 따스한 햇볕에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지붕 위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르던 눈 더미들도 미끄러지듯 처마 밑으로 탈출한다. 봄, 기분까지 따사로워지는 봄. 연약하고 작은 새싹들이 저마다 조그마한 손바닥을 내밀며 나를 향해 손짓한다. 작은 출렁임을 따라가다 보면 그곳에는, 그리운 엄마 얼굴이 있다.
엄마 냄새...
엄마는 모든 계절 중에 유독 봄을 좋아했다. 마트에서 산 저렴한 운동화를 꺼내어 들고 앞창이 널찍한 모자를 꺼내어 쓰며 산책을 준비했다. 엄마의 잠바 입는 소리만 들어도 이미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두 마리의 강아지들은 덩달아 신이 나서 펄쩍거린다. 엄마는 졸라대는 녀석들의 성화에 못 이겨 괜스레 마음이 더 급해지시지만 얼굴에는 은은한 웃음꽃이 피어있다.
“엄마, 빨리 나오셔, 요 앞에 풀 뜯으러 가자.”
엄마는 방에서 자고 있는 할머니를 목청껏 불러본다. 이제는 계절이 무엇인지, 날짜가 흐르는지, 자신의 인생에서 ‘시간’이란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신 할머니는, 싫다고 귀찮다고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신다. 엄마는, 자던 모습 그대로 머리가 짓눌려 까치집이 지어진 할머니의 머리를 매만지며, 살살 달래신다.
“엄마, 밖이 이래 좋은데, 잠이 오는가. 세월이 아깝지 않소-.”
“아이, 난 싫어. 그까짓 거 뭐해.”
“엄마, 엄마도 걸어야지, 아니면 다리 못 써. 하루 종일 잠만 자면 근육이 약해지지. 요 앞에 토끼 밥이라도 뜯읍세. 왔다, 갔다, 좀 해. 운동해야지.”
치매로 도리어 엄마의 딸이 되어버린 70의 우리 할머니는 엄마의 말이 진짜 자신의 엄마의 말인 것처럼, 몇 번 반항해보다가 고분고분 잘 들으신다. 그렇게 자신에게 줄줄이 매달린 많은 생명체를 이끌고 엄마는 봄 속 산책을 나간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소임 인 마냥. 하지만 그런 삶의 무게에도 주름진 엄마의 얼굴만은 봄볕처럼 따사로워 보인다.
하지만,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울상이 돼 버려 돌아온 엄마의 입에서는,
“야!! 큰일 났다!! 어떻하노!! 할매가 없어졌다!!”
하며 미친 듯이 자동차 키를 찾아들고 다급히 뛰어나가신다. 나는 영문도 모른 체 뭐라고? 하면서 따라나서 보지만, 엄마는 ‘경찰에 신고해’라고 소리치시며 바로 자신의 산책길로 차를 몰아 나가신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후 돌아온 엄마의 차에서 내리는 건 마치 동네에서 늦게 까지 놀다가 혼난 어린아이 마냥 조용히 집으로 들어오시는 할머니. 엄마의 눈가에는 눈물 자국이 채 가시지 않아 얼룩덜룩 쾡-한 모습이 역력하다. 그리곤 말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 자리에 몸져누우셨다.
나는 익숙한 이 풍경에 밀려오는 안도감에 할머니를 토닥이며, ‘할매, 어디서 놀다 왔어, 어디 잘생긴 영감이라도 꼬신 거야?’ 하고 농을 걸어보지만, 할머니는 ‘야는, 무슨 영감은, 영감 있으면 소개나 해줘 봐’하며 그냥 웃으신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 난지 모른 체...
우리 집은 할머니의 치매로 인해 어떤 날은 웃고 어떤 날은 버겁다. 하지만, 엄마도 나도 안다. 엄마도 나도 언젠가는 늙는다는 것을, 아니 이미 서서히 늙어가고 있음을... 그렇기에 조금은 두렵다. 엄마가 할머니가 되고 내가 엄마가 되는 일이.
하지만 한 해가 지나고 할머니의 주름이 더해져도, 여전히 우리는 따스한 봄이 되면 산책을 나가고 풀을 뜯는다. 그리고 엄마의 얼굴에는 봄 햇살처럼 따사롭고 행복한 미소가 걸려있다.
나는 엄마의 봄이 늘, 항상, 지금처럼 영원하길 소망한다.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저는 이런 기분이었나 봅니다. 할머니는 많은 일을 겪으시고 떠나셨죠. 그리고 그런 시간들은 저의 글 속에 저장이 되었네요. 그때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썻던 것 같아요. 혼란하기도 했었고.
지금은 글쎄요. 무슨 말을 쓰는 건지 모르겠네요. 사실 저때도 그랬어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썼어요. 아마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오늘의 저를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자신을 이해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들잖아요. 저만 그런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