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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Sep 17. 2018

소개

2018. 09. 17


"그럼 한 명 소개해줘 보고 그런 말 하시던가요"


나는 그 말을 함과 동시에 마음이 어색해졌다.

전혀 내 입에서 나올만한 단어의 조합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구를 소개해달라는 말은 20대 이후로 내 입에서 나온 적이 없는 말이라 나 혼자서 '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치 지나가다 친하지 않지만 얼굴은 알고 있는 반 친구를 마주치기라도 한 것처럼 마음이 굉장히 어색했다.


"그래요? 그래도 괜찮죠. 주변에 돈 많은 친구가 많아요."


호텔 로비 냄새에 취한 나에게 그는 이런 라이프를 즐길 수 있도록 돈 많은 남자를 만나는 방법을 택해보라고 했다. 나는 돈 많은 남자를 만나는 일보다 돈 많은 내가 되는 게 꿈이기 때문에 그런 옵션은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그런 사람을 소개해내라.라는 문장이었다.


나는 그의 입에서 정말로 그러겠다는 적극적인 말이 나오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들었지만, 다행히 우리는 지나가는 의미 없는 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대화를 했다.


집으로 돌아와 왜 마음에도 없는 말이 무의식적으로 쏟아져 나왔는지 찬찬히 곱씹어 본다.

그러다 문득, 나란 인간이 원래 그렇지 않은가?라는 결론을 낸다. 살면서 마음에 없는 무의미한 말을, 그것도 굉장히 자주 내뱉고 산다.  말이 많다 보니 장난의 수위가 도를 지나 칠 때가 있고 때론 내 의견과 아무 상관없는 말을 하며 집에 와 후회하곤 한다.


음.

여전히 결혼 생각은 없지만 당연히 연애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 어쩌면 그것마저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게 될까 봐 (약간) 걱정된다. 물론 때가 되면 이러쿵저러쿵 떠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남이 말려도) 누군갈 만나겠지만, 지금 왜 마음에도 없는 이런 무의미한 말을 뱉으며 스스로 오해를 사는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도 이런 참신한 헛소리를 하고 살까?


29살에 나간 소개팅도 꼭 그런 짝이었다.

누군가의 호의에 아무 생각 없이 오케이 오케이 하며 갔다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지금 당장 누굴 만날 마음도 없으면서 왜 그런 약속을 기어코 잡는지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과 계속 연락을 하며 가벼운 인연을 이어가는 것도 아니다. 그냥 소개팅으로 만나고 끝.


당시만 해도 카톡을 자주 하거나 전화를 자주 하며 사람 관리하는 스타일이 못 되었기에 가볍게 끊어지는 연결이 많았다. 소개팅 자리에 나가서 한 다는 말이 '지금은 일 때문에 굉장히 바빠요.' 라던가 '아직은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은 거 같아요.'라는 식의 두 사람의 만남을 제로로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다.


아무에게나 누구를 소개해달라는 나의 기이한 행동과 말 때문에 주변인에게 오해를 많이 샀다. 마치 깜빡이 없이 치고 들어오는 차처럼 그런 말들은 무의식적으로 뱉어졌다. 그런 마음이 없는 말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누군가의 마음에 불청객처럼 잘못된 씨앗으로 자라고 있는 건 아닐까?


혹 이런 무의식이 어딘가 가슴 깊이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말겠다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어서 그런 건가?

그럼 연애를 하고 싶다는 뜻인가?


스스로 진지하게 골똘히 해석해보기도 하지만, 으- 진짜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 나는 엄청 알쏭달쏭하다. 이런 질문을 풀기 위해 누구를 실제로 만나서 풀어야 하는 것인가?

그건 나쁜 짓인가?


아직은 이성애자이므로 이성을 보면 뭔가 남자로 보여야 하는 데 아-무 생각이 없다. 그런 생각 없는 상태가 솔직히 말하면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왠지 나이 먹은 후 성 호르몬이 급감해서 연애 호르몬도 사라지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과 동시에 이대로 쭉 민둥민둥 살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다.


결국 내 걱정뿐이군.


음.

그래도 사랑이라는 환상이 없는 삶은 너무 지루한데.

그냥 지나가는 마음의 업다운이겠지 뭐.


가을이라 그런가.

자꾸만 아무한테나 누구를 소개해달라는 참신한 개소리를 하게 된다.


@클레멘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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