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클레멘타인 Sep 22. 2018

난해

2018.09.22


첫줄안녕


첫 줄은 버린다는, 보여주기 위한- 의미 없는- 그러나 의도 있는 메시지라고 해. 사람들은 아름다움에 미쳐버렸지. 나 역시 미쳐버렸어. 예쁜 카페, 예쁜 컵, 예쁜 디저트, 예쁜 사람, 예쁜 개, 예쁜 글씨, 예쁜 사진, 예쁜 예쁜 예쁜 모든 것들은 의미 없는 그러나 의도 있게 존재해. 그러니까,



죄라는 건 과녁을 벗어난 화살이야.



까슬까슬한 너의 말은 낯선 땅의 메아리처럼 해석불가.


그 겨울, 너는 낮이면 말씀을 전하고 밤이면 홀로 깨어 불 꺼진 방에서 자위를 하곤 했지. 그렇게 방방거리며 너를 버리고 나면 넌 다시 경건해졌어. 생각보다 심플했지. 서러운 니 안의 가난을 티 내지 않으려 우아한 정장을 즐겼는데 그 모습이 어쩐지 어설픈 뱀 같았어.


마음이 가난한 이들을 구제한다는 너는 실제로 삶이 가난했고, 그들의 가난을 파먹고 사는 너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맷집이 커졌지. 그 허무의 풍선이 너를 부풀렸을 때, 너의 마음속에 진실로 신이 있는지 욕망이 있는지 나는 모르겠어.


너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웠고, 오래된 욕망에 찌든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스스로 심연에 빠져있다는 걸 알아차릴 때마다, 나를 찾아왔어. 육체에 또 다른 육체가 침범해 서로의 세상을 뒤섞었으며 덮인 것들은 온기로 가득해 안도와 상실과 혐오와 희망이 동시다발로 자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벌겋게 시를 읽다가 아무런 이해도 하지 못한채 가슴만 벌렁거려. 이제는 원태연이나 나태주 같은 시인보다 조금 더 망설이고 조금 더 난해하고 조금 더 작위적인 시인들이 우리 가슴을 덥히고 있기에, 복잡한 세상 속 고단한 심정을 절룩거리며 전하지.


잘 하려고 하는 것도 규칙대로 사는 것도 선을 맞추는 것도 나는 지겨워. 이제 지쳤어.

그런 건 사람과 인간의 차이라고, 우리는 사람으로 사람됨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너희들에게 나는 지쳤어. 이것 봐. 시집은 겨우 8,000원이야.

그래도 동일한 가격의 커피가 더 의미 있는 그러나 의도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 어쩌겠어.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를 깨닫지 못 한 나는 여전히 과녁을 벗어난 활시위를 당겨 어딘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어. 못 들은 척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나뒹굴지.


우리의 죄는 이미 십자가를 진 이가 있으니 나는 사하여질 것.


첫 줄은 잊히고 막 줄은 남길바래.


@클레멘타인



매거진의 이전글 오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