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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Sep 28. 2018

운전

2018.09.28

살면서 백번은 꼬박 죽었을 거다.

그 죽음은 꿈속이고 꿈속에서 나는 매번 교통사고로 죽는다. 교통사고라고 해서 다른 차와 부딪히거나 다른 차에 치이거나 하는 잔인한 모양새는 아니다.


특이하다면 특이할 수도 있는데 나의 교통사고는 다음과 같다.


혼자 어딘가로 하염없이 운전해서 간다. 도시일 때도 있고, 산 길일 때도 있다. 어느 순간이 되면 나는 점점 과속하게 되고, 길은 갑자기 구불구불한 뱀처럼 제멋대로 휘어진다. 어어어- 하는 기분도 잠시, 정해진 도로를 훌쩍 이탈해 어딘가로 훨훨 날아버리는 것이다.

 

꿈속에 나는 다 알면서도 도저히 나의 질주를 멈출 수 없다.

이 미친 속도를 줄이고 싶지만 차는 어어 하며 이미 하늘을 날고 있다. 하늘을 날아 훌쩍 어딘가로 꼬꾸라져 박히는 장면은 없다. 솔직히 말하면 콰광하며 죽는 순간까지 가지 않는다.


마치 단편 소설처럼


"그녀의 차는 허공을 가르며 멀리..."


이런 식으로 끝나버린다.


하지만 나는 어쩐 일인지 내가 그냥 그렇게 운전하다 생을 마감했을거로 생각하며 꿈에서 깨어난다.


현실 속 나는 그렇게 험하게 운전을 하는 편은 아니다.

방어 운전을 많이 한다고 해야 할까?

웬만하면 after you를 하려고 하는 데(그러니까 웬만하면) 가끔 말도 안 되는 꼭짓점에서 원시인이 된다. 모르는 상대와 아무도 모르게 묘한 감정으로 운전을 하게 되는 일이 생긴다.


고속도로에서 괜히 뒤따라 오는 차와 속도 경쟁을 한다던지, 회전 차로에서 순서를 지키지 않는 차를 만나면  (강릉은 도로를 죄 회전 교차로를 만들어 놓았다) '저저저 묘한 인간!' 하며 욕하게 된다. 분명 상대는 전혀 알지 못할, 그러나 나는 분명 기분이 상해 속으로 상대를 저주하고 있는, 그런 멍청한 행위를 하게 된다. 나는 공포에 빠진, 때문에 사납게 짖는 겁쟁이 개와 같다. 그런 시시껄렁한 일로 나의 기분을 다운시키는 일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운전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얼마 전 시내버스에서다.

평일 오후라 버스 안은 한산했다.

버스는 시외버스터미널을 경유했는 데 여행 온 듯한, 그러니까 등산복 차림의 중년 남성 한 명이 혼자 갸우뚱거리다 문 열린 버스 안으로 질문을 던진다.


"저기요! 뭐 좀 물어볼게요."


그러나 버스 안에서 울려 퍼진 소리는 냉랭하다.


"아-아니요. 바빠요 바빠."


나는 여기서부터 어떤 조짐을 느끼게 된다.

버스 안에서 이런 일은 종종 있기 때문에 불안이 세균처럼 퍼졌다. 하지만 중년 남성은 무슨 이유인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주문진 가려면 몇 번 타야 돼요?"

"주문진은 300번대 타야 돼요. 그러니까 이런 버스는 건들지 마세요."


무시와 냉대가 가득한 말과 말투를 들은 중년 남성은 더 응대하지 않고 검지를 위아래로 흔들며 마치 "쯧쯧쯧." 이런 제스처를 취했다. 나는 실제로는 누구도 버스를 건든 게 아니라 자신에게 물었는데 왜 '버스를 건들었다'라는 표현을 썼는지 따위가 궁금했다. 자신이 버스가 되었나.


다시 출발한 버스 안. 슬쩍 뒤를 돌아보니 나 혼자였고, 버스에 여전히 남은, 조금 전 두 사람의 묘한 분위기를 고대로 전달받아야 했다. 기사님이 왜 화가 나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사이 운전을 하는 동안 모르는 상대와 누구도 모르는 기분 상하는 어떤 행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뭐, 운전이란 그런 거니까. 또는 개인적인 사정이나 회사의 압박 또는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사람 자체가 너무 징글징글해진 걸지도.


그 어떤 이유도 상상할 수 없었지만, 나는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감정 폭력에 휘둘리는 기분이었다. 유리 멘탈을 가진 인간은 역시 별일에 다 휘둘린다. 합리화해야 해. 저 행동을 이해해야 해. 그러니까 운전을 하는 일은 분명 괴로운 일. 예의상 모르는 사람에게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정답도 기준도 없는 나는 어딘가 쓸쓸해졌다.


예전 서비스업에 일할 때 나는 감정 노동자였다.

사람이 질문하러 오면 테이블 아래 숨기도 했다. 그러니까 적어도 나는 그의 행동을 이해해야 해. 그래도 그런 일을 당하면 너무 기분 나쁘겠는 걸. 으아.


운전이 역시 지랄이지.

차든 삶이든 운전하는 일은 오랜 경력이 되었는 데도 영 쉽지가 않다.


지루하고 재미없고 발끝에 힘을 준 채로 모르는 이와 아슬아슬한 규칙을 지켜내야만 하는 일. 잠깐의 딴생각만으로도 우리는 영 자신이 모르는 곳으로 갈 수도 있다. 접촉 사고가 나거나 긁히거나 귀찮은 사람이 타거나 옆 자리 사람 없이 혼자 장시간 가야하기도 한다. 늘 알던 길을 갑자기 헤매기도 한다. 우연에 우연이 겹쳐 큰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나처럼 이유 모를 꿈에 시달리기도 한다.


나는 그저 질주하고 도로는 구불거린다. 누군가 오르기도 하고 누군가 뜻 없이 질문하기도 하고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을 운행하기도 한다. 어찌되었든 멈출 수가 없다. 가속도가 붙어버린 차는 언제나 길을 이탈하고 나는 하늘을 난다. 길은 거기서 끝나기도 하고 펄펄 날다 다시 길에 안착해 운전을 계속 하기도 한다.

지독하다.


우리는 차에 오르고 스스로 운전하거나 타인의 차에 잠시 몸을 맡긴다.


무섭고 귀찮지만, 괴롭고 지치지만

목적지까지는 어떻게든 계속 가는 일,

어딘가로 가야만 하는 일.

오롯이 혼자서만 해야 하는 일.

더뎌도 언젠가 끝이 있는 일.



깊어가는 가을, 예민병 환자의 일상이란 이런 거다.



@클레멘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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