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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Oct 01. 2018

사적

2018.09.30에서 10.01로 넘어가는 새벽


가로로 뜯어진 찰떡 쿠키 봉지, 28,400 다이소 영수증, 화장 클렌징 휴지 다량, 38,700 홍천 주유소, 머리카락 뭉치와 먼지 등등이 쓰레기통에서 20리터 쓰레기 봉지로 떨어진다.


그 사람의 쓰레기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그래서 쓰레기봉투 안은 내게 꽤 흥미로운 세상이다. 나는 집안의 쓰레기통을 비울 때마다 새삼 나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음, 이번에 라면을 너무 먹었는걸.

아니, 이 산더미 같은 맥주캔은 뭐람? 정녕 내가 다 마셨단 말이야?

어후. 플라스틱 좀 보소. 내 식단은 죄 일회용뿐이네.


이런 나에 대한 발견은 타인에 대한 호기심으로도 번진다. 고로 종종 다음과 같은 비밀스러운 짓을 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비밀이다)


1. 식당에 가면 테이블을 보며 남이 뭘 먹나 보기.

2. 마트 계산대 줄을 서며 앞사람 카트에 뭐가 담겼나 기웃거리기.

3.블로그에 어디에서 뭐 먹고 뭐 하고 노나 클릭해보기


더 나아가면,

손때 묻은 가방 안에서는 뭐가 나오는지,

휴대폰 메인 화면은 자기 셀카인지, 꽃 사진인지, 고양이인지, 커플인지, 음식인지 등등의 따위를 안 보는 척 슬쩍슬쩍 훔쳐보는 거다.


그런 것들은 굉장히 사적인 세계니까.

사적인 세계에 침범하는 건 꽤나 재밌으니까.


나는 글을 쓰는 인간 이전에 꽤나 강력한 독자다.

원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니 당연히 타인의 글을 보는 걸 좋아한다.


나의 관심사에 있는 사람의 사적인 이야기,

그러니까 막 엄청난 주장이 담기거나 진취적인 글보다는 어딘가 낭창낭창하고 연한 속살 같은 블로그 즉, 일기를 좋아한다.


자꾸 이러다 보니 어딘가 변태적인 성향이 있는 것 같은데, 으으음. 있을지도 모르지.


아무튼, 나름 갖춰 입고 최대한 정직한 표정으로 하는 이야기는 어딘가 지루한 구석이 있다.

1+1은 2 보다는 1+1은 귀요미 같은 센스를 좋아하는 일!

그 일은 나를 자극하고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그러다 최종적으로 오- 저런 압도적인 센스에 지기 싫다! 하는 식의 밑도 끝도없이 경쟁하는 마음을 먹게 되는 것이다.


대학 시절,
하루는 몇 년 동안 날 위해 기도하고 날 전도하겠다고 선언했던 친구에게 매우 진지하고 우울함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나:  
"하느님은 모두에게 한 가지 재능은 줬다고 하던데. 난 잊어버린 걸까? 난 아무런 재능이 없는걸."


너:
(곰곰) "너에겐 재치를 주셨는걸?"


굉장히 가볍고 시시해서 바람처럼 휙-스쳐가는 말이었지만, 내겐 여전히 삶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재치란 눈치 빠른 재능이나 능란한 솜씨, 말씨 이런 뜻이 담겨있지만 그 당시 내 귀에 재치란, 남을 가볍게 웃기는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함께 피식피식 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로 들렸다.


물론 지금 그런 능력이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요 몇 년간 쓰레기통에 버려진 지나간 나에 대해 탈탈 털어 꺼내보면 꽤나 마음이 복잡해진다.

어딘가 각 잡히고 딱딱한 무언가로부터 도망가고자 발버둥 치는 시간들이었다.

재치의 '재'짜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우울+고통+징징+그러면서 안 그런 척+아무말+ 노답 질문 등등이 우르르 쏟아진다.


슬슬, 마음 쓰레기통을 정리할 때가 온 거 같다.

마음에도 옥시싹싹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클레멘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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