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클레멘타인 Jun 26. 2019

슈필라움

머지않아 나는, 답을 찾은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한 발자국만 더 가면 내가 찾고 싶던 그곳이 있으리라 믿는다.


오늘 점심을 먹으며 확신했다.


나는 밥을 5분 안에 먹는 스타일이다.

다른 분들이 다 먹을 때까지 멀뚱멀뚱 밥 먹는 거 구경하다- 결국 한 사람 두 사람 바빠서 먼저 떠나고-조금 늦게 내려온 유기농 S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유기농 S는 자기 텃밭에서 유기농 상추와 깻잎을 키운다.

그 외에 이것저것 키운다고 했지만- 뭐, 잘 기억은 안 난다. 토종 상추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고, 씨앗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요리는 정말 꽝이고 한 그릇 뚝딱 대충- 스타일이라, 나와 반대로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왜 텃밭을 키우게 되었는지, '토종'  씨앗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유기농 S와 회의 주제 이외의 대화가 처음이라는  깨닫게 된다. 평소 인권, 환경 등등 어떤 '이상적인' 주제에 의식 높은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생각은  어떨까? 


"언제부터 이런 일들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저는 대학 때 운동권이었어요."

"음, 그래서 언제부터 그런 활동에 관심이 있었어요? 계기가 있을 것 같아요."


밥상머리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다 결국 유기농 S의 가족사와 어린 시절까지 돌아보게 했는데 (?) 의도치 않게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는 어릴 때 자살을 생각했어요. 이런 세상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 예를 들어,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지. 초등학교 1학년 때, 반장 선거를 했어요. 어떻게 내가 후보가 된지는 모르겠어. 내가 41표, 남학생이 17표를 받았거든요. 그런데 나는 여자라서 안 데요. 학교에 여자 반장은 없데. 그게 너무 이상했어. 그때 누가 이런 이야길 하더라. 너가 반장 하려면 서울 같은 곳에 가야 된다고. 거기는 될 수도 있다고. 그때 알았지. 여기가 아니더라도 다른 세상이 있겠구나. 여기서는 안돼도. 다른 곳에서는 가능하겠구나."


세상을 바꾸려고 무던히 노력했던 유기농 S는 언제부터인가 돌아가는 세상을 멈출 수 없다는 결론이 났다고 한다. 혼자만 서 있을 수 없다고. 그러다 자신이 그 속도를 늦추게 만들 수는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그렇게 앞장서는 일을 하다 보면 오해를 많이 받지 않나요? 힘들 것 같아요."

"많이 받아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막 해도 된다는 생각들, 나도 여리고 상처 많이 받는데. 쎄 보이니까."

"그럼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안 들어요?"

"(웃음) 들죠. 너무 많이 하죠. 그런데 그러면 못 살아요. 지금 물론 세상이 많이 변했지만, 아직 제가 살고 싶은 세상은 아니니까요. 나는 매 번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누군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사람일까.


얼마 전,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박수받을 수도,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 누군가와 우리는 그저 안 맞는 사람들일 뿐이라고. 그 사람이 나쁜 게 아니라 그냥 서로가 가치관이 안 맞는 거니 이 세상 어딘가에 통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다행히 당신과 나는 그런 사람이야. 이건 어쩌면 굉장한 일이고 행운일 수도 있다고.


그때, 상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널리 퍼트려야 해. 스스로 가치 있다 여기고 당당히 앞으로 나가야 해. "


누군가의 작은 한 마디는 어떤 이에게 큰 용기가 된다.


 말을 발판 삼아 새로운 일들을 시작하려고 한다.

아주 오랫동안 이런 일을 해도 될까?라는 질문이 커다란 장막에 가려져 있었다.

나는 오늘에야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은 분명 가치가 있고, 누군가 찾는 세상이 될 거라고.

그런 세상을 만들 거고, 같이 이야기할 거라고.

아니라고 부정하는 사람들은 그저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일 거야.  세상 어딘가에 있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삶을 꿈꾸고, 나와 비슷한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할 거라 확신한다. 길 모퉁이만 돌면 내가 찾던 장소가 있는 데, 엉뚱한 곳에서 길을 몰라 없다고 낙심하며 헤매는 중이었나 보다.


이런 질문들과 답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

혼자서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저 너머의 세상도 누군가와 함께 열어볼 수 있다.

분명, 느린 걸음이다. 그러나 작은 눈빛과 질문 하나로도 우리는 무한히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

서로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그런 세상이 있다.

뭐야, 아직 그런 건 없어.라고 당신은 부정하겠지만.

그럼- 난 나 스스로 그런 세상의 그런 사람이 되야겠다.

그리고 머지않아 지금 하는 일들이 너무나 당연해지는 날들이 오리라 믿는다.


서린 김이 천천히 걷히고 무언가 어떤 형태로 단단해지고 있다.



@클레멘타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