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by 클레멘타인

7월이 막 시작된 화요일, 교통사고가 났다.

아, 났다기보다 '당했다'라고 쓰는 게 맞겠다.

내가 택배 트럭에 치였으니까.


1.


오늘로 병실 4일 차다.

나는 오늘이면 집에 돌아가리라 생각했는데, 이런, 진짜는 지금부터인가 보다.


일단 머리가 너무 무겁고 허리가 빠질 것 같다.

남들은 이참에 푹 쉬라는 데, 건강인들이 모르는 게 하나 있다. 아픈 건 쉬는 게 아니라 아픈 건 아픈 거다.


시간은 밖에 있을 때보다 훨씬 빨리 달려간다.

불안하고 초조하다. 나만 두고 가는 저 여름이 야속하지만 탓할 무언가 없다. 왜 하필 그 운전자는 그 시간을 지나가면서 앞을 안 보고 운전했지? 나를 친 운전자를 밑도 끝도 없이 원망하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리면 왜 나는 그 길을, 잘 가지 않던 길을,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사고를 당해야 했지? 희망, 계획, 의지, 열정이 한꺼번에 쓰레기통으로 박히는 날들이 이어졌다.


아프다는 건 승패 없이 지기만 하는 게임이다. 몸은 탄력을 잃어 한 층 늙고 정신은 불안정해진다. 그래서 건강은 내가 가진 최고의 보물처럼 과신하지 말고 아끼고 소중히 다뤄야 해.


2.


병원은 온갖 스토리의 장이다.

이렇게 오래 입원하는 건 태어나 처음인데, 병문안 오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어찌 된 일인지 다들 교통사고 박사학위를 가진 듯하다. 인대가 끊어진 채 걸었다는 기적을 보여준 사람, 멀쩡히 집에 갔다 3일 뒤에 죽었다는 사람, 4일 뒤에 뼈가 금 간 사람, 10일 뒤에 췌장이 파열됐다는 사람 등등 듣다 보면 나는 너무 늦은 경험인가? 싶을 정도로 기괴한 사고들이 많았다.


입원하며 며칠 함께 생활하는 일은 뭔가 다른 유대감을 갖게 한다. 방짝은 여러 번 바뀌었는데, 어떤 방짝은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 펑펑 울기도 했다. 그렇게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친 영혼들이, 한 방에서 잠을 자며, 서로를 위로하는 곳.



3.



소통이란 얼마나 소중한 행위인가.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없는 이는 식물이나 마찬가지 취급을 받는다. 나는 sns에 사고 소식을 올렸고 곧바로 지인들의 전화와 병문안이라는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릴 때는 아파도 눈물이 나도 이를 꽉 깨물고 참았지만, 지금은 엄살 유단자라 조금만 아파도 낑낑거린다.


엄마는 전형적인 고양이 타입인데, 병원을 다녀오면 며칠 뒤에 나에게 말한다. 자신의 약함을 숨기는 일이 상대를 위해서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래 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장담하건대 아픈 건 그때그때 소문내는 게 좋다. 우리의 연약함은 타인이라는 존재의 이유를 만들어 주니까.

아, 물론 안 아프면 더 좋고.




4.


고마워요.

어떤 사람들은 건너 건너 듣고 찾아와 주기도 했다. 자신의 영업시간을 닫고 찾아온 이도 있었다. 출장 중에도 전화 준 사람, 농담처럼 던진 말에 진짜 사온 사람, 이직하고 연락이 뜸하다 몇 달만에 소식을 듣고 찾아온 사람, 사고 소식을 나 대신 단톡에 올려 준 사람, 보호자가 없을 때 그 자리를 대신해 준 사람, 가족 모두 찾아와 준 사람, 나를 친 운전자를 향해 나보다 더 화를 내준 사람, 사람, 사람, 사람...


그리고 놀란 우리 가족들.


5.


회복 시간이 길어지면 다 어떻게 되는 걸까.


얼마 전 읽었던 소설'홀'이 자꾸만 생각난다.

소설 속 주인공은 교통 사고로 거의 식물인간이 된 후, 장모의 수발을 받으며 천천히 세상으로부터 고립된다. 가벼운 사고는 웃으면서 만날 수 있지만, 무거운 사고 앞에서 사람들은 묘하게 불편해진다.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트럭처럼 불행은 막을 수가 없다.

잊히는 건 한 순간이다.

다들 자기 앞의 생을 살기 바쁘다.


이대로 사라져도 괜찮지 않을까.

조용히.

편안히.



@클레멘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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