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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Feb 01. 2019

빠마

머리를 볶으러 갔다가 나는 울어버렸다. 이건 정말 얘기치 못한 상황인데.


지독한 눈이 내린 다음 날 나는 충동적으로 머리를 뽂고 싶었다.

이런 충동은 내가 날 못 견딜 때 불쑥불쑥 올라오곤 하는 데, 다행히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되는 빠마로 표출이 되어 나름대로 안심이 되었다. 나는 미용실에 가는 일을 아주 싫어하고 특히 빠마를 하겠다고 몇 시간씩 앉아 기다리는 일을 거의 지옥행 열차로 느끼는 사람이다. 다만 요즘 나에겐 뭔가 자극이 필요했다.


그래 머리를 빠싹 뽂아버리고 이제 미친 짓은 좀 멈추고,

일 좀 하자.


잠에서 억지로 깨어 바닥에 떨어진 어제 허물을 설렁설렁 주워 입은 나는 도로 위 남은 눈을 헤치며 O의 미용실로 향했다.


"이번에는 세팅으로 9만 원에 말아줄게요. 지난번에 그냥 파마는 너무 부스스하더라. 아, 위에는 땡기면 원래 12인데 9만 원이라고 벌써 말했으니까, 9에 하는 대신 위에는 적당히 한다? 그렇게 할게요."


"네."


미용실 의자에 앉는 즉시 나는 세상 착해진다.

내가 아닌 타인이 내 머리를 만지는 일은 정말 큰 마음을 먹는 일이기 때문에, 고양이로 따지면 일종의 '죽여버린다' 터치 존을 제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므로, 상대에게 모든 걸 맡겨버린다. 마치 주인 잃은 강아지가 새 주인 앞에서 눈치를 보듯 미용실 의자에 앉아 고개만 끄덕끄덕 하는 게 내가 하는 최선이다.


다만 내가 좀 더 주체적일 수 있는 부분은 한 곳의 미용실을 꾸준히 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었다로 끝나는 모든 말에서 눈치챘겠지만 최근 나는 O의 미용실에 주기적으로 가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을 신뢰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되었다.


"어? 우리 애한테 페이스톡 해야겠다."


머리를 만지는 동안 언제나 O의 첫 번째 주제는 중학생 '아들' 또는 초등학생 '딸'이었는 데 오늘은 유난히 아들 이야기가 길었다. 그러다 결국 유럽으로 여행 간 아들 때문에 울어버렸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속으로 '제발'을 외치고 있었다.


"아들 바보시구나?"

"응, 나 우리 아들 너무 사랑해. 너무 이뻐. 어떻게 넘 주나. 그런데 내가 울었다는 건 다른 게 아니고..."


그때부터 분위기는 묘하게 반전이 된다.


"우리 애가 그 뭐야, 은따였거든. 뚱뚱해서."


나는 이 부분에서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그러니까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내가 O의 미용실에서 첫 빠마를 하는 날, O의 아들이 반장이 되었다고 엄청나게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소리?


"걔가 초등학교 때 뚱뚱했거든. 요즘 애들 알잖아. 뚱뚱하면 싫어해. 그래서 우리 애랑 소풍 갈 때도 같이 안 앉으려고 한 거지. 소풍 가는 날 내가 애 데려다주러 갔는 데, 버스 안에서 애들이 우리 아들이랑 서로 안 앉으려고 하더라고. 그때 우리 아들, 상처 많이 받았을거야.

그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한 거야. 혼자 틀어박혀서.

 그런데 이번 유럽 여행 갈 때 내가 데려다주는 데 좀 늦었거든. 30분 버스인데 거의 30분에 꽉 맞춰서 도착했잖아. 그때 가는 내내 친구들한테서 전화가 계속 오는 거야. 언제 오느냐고. 그래서 버스에 올라가 봤더니, 친구들이 버스 맨 뒷자리에 우리 아들 자리를 맡아서 비워놨더라고. 빨리와서 앉으라고. 그래서... 집에 와서 울었어."


나는 그 얘기를 듣고 결국 코가 매워졌다.


"아, 저도 눈물 나요."

"어어? 언니도? 아이참. 내가 괜한 말을 했다. 언니도 감수성이 있나 봐."

"저 글 쓴다니까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이대며 나는 울었다. 거울을 보니 머리를 바싹 올려놔 못 생긴 얼굴이 눈물범벅으로 더 못 생겨 보였다. 동시에  머리를 만지는 O도 울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미용실의 대형 거울 앞에서 서로의 못생긴 얼굴을 보며 같이 울어야 했다.

나도 참 주책이다.


"우리 애가 이번에 들고 간 책이 데미안이에요."

"아, 저도 그 책 좋아하는 데."

"그래? 무슨 내용이에요? 부끄럽네. 나는 아직 못 읽었는 데, 읽어봐야겠다. 우리 애가 그 책 몇 번이나 봤는데 또 그걸 가져가더라고요."


고통에 빠진 사람 살리는 책이요.

나는 도저히 그 말은 하기 어려워서 그저 당시 마음이 힘든 사람들을 위로해 준 책이라고만 했다. 그녀는 그 말 한마디에도 모든 걸 이해한 듯 보였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그가 어떤 마음으로 성장했을지 이해가 되는 것 같아 왠지 서글펐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오랜 시간을 두고 지내다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을 이해할 수 있는 페이지가 있다. 나는 그 페이지를 읽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일까. 긴 시간을 거쳐 모든 걸 다 알았다고 생각이 들 때 다시 튀어나오는 오해는 언제나 마음을 당황스럽게 한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사람과 깊어지는 데 꼭 필요한 건 무엇일까.


침대에 누워 내 인생의 페이지를 읽어봤다.

집은 엉망이고 일은 쌓여있고 사람들과 약속만 늘어간다. 예전에도 딱 지금과 같은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도 정말 최악의 짓을 다 하고 다녔는데. 요즘 다시 그 기운이 뻗치는 것 같아. 막다른 골목에 선 나의 허무함을 새로운 자극으로 채울 수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이 미친 짓들을 멈출 수가 없어 좀... 서글프다.



@클레멘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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