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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everFenber Oct 06. 2023

일본 지하철에서 마주한 그들의 패션 미학

모두가 멋을 이해하는 그날까지


ⓒChris Gladis

이른 시간 통근 열차, 역사(驛舍)는 저 마다의 일을 하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천만에 가까운 거대한 인구가 도쿄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하는 아침 시간의 전철은 혼돈이 따로 없다. 하루 평균 약 350만 명이 드나들어 기네스북에 오른 신주쿠 역을 보면 그 규모를 실감할 수 있다.


이런 열차 속에선 다양한 스타일을 만나 볼 수 있지만 남녀노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어두운 색의 정장일 것이다. 한국은 쿨비즈라는 명목 아래 정장을 입는 문화가 바뀌어 가고 있지만, 이웃 나라 일본에선 여전히 정장과 그에 걸맞은 사내 문화가 존재한다. 일본에서 정장은 어떤 의미일까? 근대 일본의 역사 속에서 복식 문화와 그것이 정착한 배경을 찾고 현대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알아보자.


링 재킷의 CEO 후쿠시마 쿠니치와 디렉터 사사모토 히데토시 ⓒRingjacket

열차 속에서 시선을 사로잡은 스타일은 깔끔하게 갖춰 입은 정장과 짙은 색의 레이스업 구두를 신은 클론들이었다. 평범하기 다를바 없어 보이지만 자신만의 개성을 나타내듯 가지각색 패턴의 행커칩과 타이, 스카프를 활용한 소소한 디테일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이 정장을 이렇게까지 입는 까닭은 보수적인 기업 문화가 작용한 이유도 있지만 근본적인 일본인들의 꾸밈 미학에 있다.


양복이 익숙하지 않던 당시 사람들은 전통 의복과 혼합된 형태의 옷을 입었다 ⓒBecos


강박적 서구 추종의 역사

메이지(明治) 이전의 일본, 즉 에도 시대 일본은 개인의 일과 복장에 엄격한 제한이 따랐다. 당시 사람들은 장인의 수공예적 전통이나 가업 계승이 삶의 중대한 가치였는데,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근대화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서구권의 문화를 열망하게 되고 앞서 에도 시대의 종속적 가업의 영향으로 이어진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서양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작용했다. 메이지 천황은 영국식으로 만들어진 황제복을 입었으며 정장을 포함한 서양식 의복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전통 의복과 서양식 모자 (좌)와 기모노 위에 두른 하카마와 서양식 부츠 (우) ⓒFlickr


화양절충의 다이쇼

다음으로 도래한 다이쇼 시대는 식민지에 대한 수탈로 이룬 번영이었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일본 내에서 다이쇼 로망이라 불릴 정도로 이 시기 일본과 그 의복은 특별한 변화를 맞이한다. ‘스타일 없던 나라’ 일본에 닥친 서양화의 물결이 전통과 뒤섞여 화양절충(和洋折衷)이라는 기묘한 스타일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이 기조는 서민층에 서양식 꾸밈이 전해지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내었는데, 양복을 장만할 여유가 없던 남성들은 전통 의복에 페도라와 헌팅 캡을 쓰기 시작하고 수염을 기르기도 하였으며 여성들은 짧은 기모노에 하카마를 두르고 서양식 부츠를 신었다.


1930년의 도쿄 길거리 ⓒKineo Kuwabara


하이칼라 전성시대

연호는 쇼와(昭和)로 바뀌었다. 본격적으로 번영을 누리기 시작한 일본의 모습은 당시 중산층 여성들이 주도했던 하이칼라(ハイカラ) 패션을 보면 알 수 있다. 방직 기술이 발달해 완전히 서양의 형식을 띤 드레스와 롱스커트, 그리고 클로슈와 화려한 장식이 없는 칵테일 모자를 착용한 짧은 머리의 ‘하이칼라 여자’가 트렌드의 주체였다. 반면에 남성들의 복장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클로슈를 쓴 야마다 이스즈 (좌), 역 앞에서 구두를 닦는 쿠츠미가키 (우) ⓒMichinobe8

남성복이 크게 바뀌게 된 것은 종전 이후 미국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찬 일본에 미군정이 들어오면서이다. 요코하마를 통해 세계의 문화와 다양한 물자가 도쿄 이곳저곳에 들어오게 되고 미군이 물러간 후에도 일본 기업계는 메이지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서양의 기술을 답습해 가파른 경제 성장을 이룬다. 패션계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1950년대 비즈니스맨들은 어깨가 크고 가슴 핏이 여유로운 회색 톤의 미국식 정장을 입었고 역 앞에는 구두를 닦는 쿠츠미가키들이 늘어서 있었다.


1954년 정장을 입은 도쿄의 기자들 ⓒAP Photo


잃어버린 스타일 감

1950년대 나날이 성장하는 일본 사회 속 바쁘게 움직여야 하던 남성은 영화를 통해 파리의 최신 유행을 접하고 패션에 열광하던 여성들에 비해 스타일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다. 단지 모두가 그렇게 입고 있는 미국식 정장을 같이 입을 뿐이었다.


당시 대다수의 일본 남성에게 복장보다 간단한 문제는 없었다. 학창 시절 착용하던 가쿠란을 대학에서까지 입어야 했고 대학 졸업과 동시에 규격화된 정장을 산 뒤 평생 벗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남성복은 극단적인 균일화를 보여주고 있었고 스트라이프 셔츠를 입는 일만으로도 직장에서 곤란함을 겪었다.

                                                                W. David Marx 『AMETORA』


1966년 마드라스 재킷을 입고 있는 이시즈 켄스케 ⓒKyodonews

다이쇼 시대에 다져지기 시작한 일본식 의복과 신사복에 대한 개념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이를 정확히 직시하고 있던 반(@van__official)이시즈 켄스케(石津謙介)는 사라져버린 일본 남성들의 스타일 감각을 되찾아 궁극적으로 자신이 만드는 고급 기성복을 판매하기 위해서 미국으로 떠났고, 아이비 스타일과 아메카지 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메카지와 아이비 스타일의 역사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온큐레이션 <미국보다 더 미국스러운 아메카지 역사>를 참고하자.


ⓒTakeivy


모두가 멋을 체화하는 그날까지

당시 일본과 서양의 패션 잡지는 큰 차이점이 있었는데 서양의 패션 잡지는 독자가 가진 남성복에 대한 기본 지식을 전제로 옷의 단상을 공유하는 형태이지만 일본의 패션 잡지는 전혀 다른 접근을 보여준다. 잡지보다 교과서에 가까운 형태로 어떤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며 어디서 구매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멋진지를 가이드했다.


『남자의 복식 독본』1권 1954년 6월호 (좌)와『Men’s Club』31권 1963년 봄호 (우)

반의 켄스케는 『남자의 복식 독본』에서 글을 연재하던 중 서양식 복식과 일본의 복식 사이의 간극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다루던 유럽식 정장과 고급 기성복이 평범함을 추구하는 기성세대 일본인과 맞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동시에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바로 미국 아이비리그 캠퍼스다. 아이비리그 학생들은 경직된 일본 복식과 달리 다채로운 방식으로 패션을 향유하고 있었다. 소매가 찢어진 버튼 다운 셔츠, 낡은 페니 로퍼와 해어진 재킷에 엘보 패치를 꿰매 입었음에도 우아함을 잃지 않은 옷차림. 그는 격식을 갖추면서도 적당히 느슨하고 다채로운 복식에 영감을 받아 아이비 스타일이라는 용어를 만들고, 잡지 타이틀을 『Men’s Club』로 변경해 젋은 층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Grailed

그는 약간의 관리만으로 오랜 수명을 갖는 , 코튼 소재의 옷들로 과하지 않게 개성을 나타낼 수 있으며 튀지 않고 그룹에 녹아들 수 있는 아이비 스타일을 새로운 신사복으로 정의하고 『Men’s Club』과 각종 라디오에 적극적으로 선전하여 60년대 젊은 층을 상대로 아이비 스타일의 ‘멋’을 세뇌했다.


ⓒPakutaso


헤이세이 잃어버린 10년과 쇼와 오토코

경제 호황 속에서 대중에 새롭게 분 아메리칸 문화의 바람은 당시 청년들의 가슴 속에 깊숙히 새겨졌다. 쇼와 오토코란 1950년부터 1989년 사이인 쇼와 후기 태생의 꾸밀 줄 아는 중년의 남성을 의미하는데, 고도 성장기에 태어난 이들은 현재 일본 사회의 중추를 구성하고 있다. 경제 성장으로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버블의 붕괴로 긴 암흑기를 맞게 된 이들은 청년 시절 보수적인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심으로 유행하는 옷을 입었으나 이제는 그들이 기성 세대가 되었다. 화려하던 과거를 뒤로 하고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버블 세대의 책임감이 그들을 다시 보수적이고 소심하게 만들었다. 마이너스 경제로 얼어붙은 기업 문화 속에서 칙칙한 색의 정장 재킷만이 쇼와 오토코를 대변해 줄 뿐이었다.


반세기 전 자신이 사랑하던 미유키 거리를 걷는 미우라 토시히코와 게이도 히코 ⓒDigit

2019년 5월 바뀐 새 연호처럼 시대도, 세상도 바뀌었다. 아이비와 아메카지를 입던 젊은이들은 이제 백발의 노인이 되었지만, 그들이 만들어 낸 꾸밀 줄 아는 남자의 정신은 길게 남아 후대 일본 패션계에 전해졌다. 화양절충의 복식 문화가 다양한 변형과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고유의 장르가 되어 열정 있는 많은 청년에게 영감을 주었고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다.


ⓒEsquire

최근 국제적으로 직장 내 복장이 빠르게 캐주얼화 되는 추세다. 우리나라는 이미 빠른 속도로 복장 간소화를 실현하고 있다. 일본 역시 그 흐름을 타고 있지만 정장 문화를 뿌리뽑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모양이다. 통근 열차 속에서 본 정장은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각기 다른 디테일이 있었다. 젊은 신입사원도 은퇴를 앞둔 쇼와 오토코도 매일 입는 정장 속에서 남성복의 미학을 알고 개성을 나타내는 것이야말로 이시즈 켄스케가 바란 미래였을 테다.


60년대 아이비 스타일부터 시작해 7, 80년대 패션의 과도기를 겪은 버블 세대가 아직 일본 사회에 남아있는 한 일상 속 정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현대 일본 패션은 과거에서부터 내려져 와 일상 속에 깊게 박힌 복식에 대한 정신 그 자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진부한 정장을 거부하고 색다른 멋을 추구했던 쇼와 시대 젊은이들의 이념이 이제는 일상에 스며들어 현대의 정장에서 다시 비추어 볼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지 않은가. 아저씨가 아메카지를 입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일상복이 아메카지인 것처럼 말이다.




New Perspective, Different Story.

이 글은 웹 뮤지엄 온큐레이션에 투고된 글입니다. @Oncuration


ⓒAntonio_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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