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오리 Aug 27. 2022

되풀이되는 고통, 플래시백처럼

오카 마리는 기억과 트라우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은 서술 상으로는 마치 주체가 기억을 능동적으로 떠올리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우리가 익히 경험하듯이 기억은 통제를 벗어나 우리를 찾아온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이따금 플래시백 현상에 휩싸이게 된다.”


오카 마리의 말마따나, 기억은 통제를 벗어나 나를 찾아온다. 나는 이럴 때마다 이 되풀이되는 고통이 대체 언제쯤 끝날지 모르겠다.


내가 어떤 남자에게 호감이 생긴 것이 계기였으리라.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은 나를 들뜨게 한다. 나는 혼란스럽다가, 내 호감을 인정하고부터는 설레기 시작했다. 그가 불편하지 않게 이 감정을 어떻게 다룰지, 그에게 무슨 말을 할지 걱정도 했지만 동시에 설렜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는 바로 울기 시작했다. 어제도, 그제도 울었다. 아마 오늘도 울 것이다. 우는 이유는 사실 그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나는 그저, 남자에 대한 호감이 생기면, 항상 내가 겪은 폭력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내 의지가 아닌 플래시백이 나를 덮쳐온다.


이게 반복된다는 것을 자각한 건 2년 전이었다. 그때도 누군가가 훅 좋아졌었고, 낮에는 무슨 소녀가 첫사랑이라도 하듯이 두근거렸다가 밤이 되면 울었다. 그때도 나는 ‘반복. 되풀이되는 고통’이라고 일기에 썼다. 그리고 점점 더 우울감이 심해진 2년 동안은 이 일을 잊고 있었다. 2년간 어떤 남자도 좋아한 적이 없으니까. 


그때는 모든 게 하잘 것 없다고 느꼈다. 때때로 고가도로에서 선로로 떨어지면 어떨까 상상하곤 했다. 이제는 그 선로를 바라보면, 문득 선로 사이사이에 난 풀이 눈에 띈다. 고가도로를 걷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데, ‘풀이 파릇파릇하네’하는 생각을 무심코 한 순간, 나는 내가 많이 나아졌다고 느꼈다. 분명 많이 나아졌다. 그러고 나니 외로움도 생기고, 누군가 좋아하는 마음도 생기고, 그리고는 괴로워진다.


내 주위 사람들이라면 모두 아는 일이다. 이미 이 일에 대해 여러 번 글로 쓰기도 했다. 나는 스물셋이었다. 당시의 애인은 내 나체 사진을 남초 사이트에 유포했다. (이걸 읽는 사람들이 걱정할까봐, 다행히 얼굴은 없었답니다) 내 애인, 남초 사이트를 이용하며 그 게시물을 클릭한 수천의 남자들, “누구예요?” “짤 쩌네요”하며 나를 그저 ‘야짤’로 소비하던 댓글들, 나에 대해 단톡방에서 쑥덕거리던 애인의 남자 동기들, 나더러 부끄러운 줄 알라던 애인의 남자 동기의 어머니, 변호사를 선임한 거냐며 나를 비난하던 애인의 어머니, 별 것도 아닌 일로 찾아왔다며 내 가슴을 흘긋거리던 남자 경찰. 그런 사람들을 우리 집 거실 소파에서 만나게 되었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이렇게 트라우마는 구체적인 형상과 언어로 내게 찾아온다.


당시의 나는 나름의 최선의 대처를 했다. 그리고 지금도 잘 살고 있고, 내 고통을 사회적 맥락 속에 위치시키기 위해 공부도 많이 했고, 친구들과도 돈독하게 지냈고, 무엇보다 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비슷한 일을 겪고 자살한 나의 친구나, 가수 구하라의 일이 남일 같지 않다.


나는 남자들이 무서운 건 아니다. 사실 그 가해자도 오히려 만만하게 여겼었다. 나는 연인 관계에서도 할 말은 하는 타입이었고, 가해자도 내게 많이 맞춰줬고 나를 많이 좋아해줬다. 나는 불같이 화를 내는 타입이었지만 걔는 열을 식히러 자리를 피하는 타입이었다. 당연히 연애하는 사이니까 서운할 때도 있고 화가 머리끝까지 날 때도 있었지만, 적어도 걔가 무섭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더, 단순히 걔가 남자고 내가 여자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게, 내 삶에 대한 나의 통제력이 무력화된다는 게, 좆같았다.


한동안은 내가 겪은 데이트 폭력 혹은 디지털 성폭력, 그로 인한 2차 피해 등에 대해 아무 곳에서나 말하고 다니곤 했다. 그때마다 헛소리하던 인간들도 꽤 많았다. 내 합의금 액수를 듣더니 “이야, 변호사 해야겠네요” 하고 소위 여성단체에서 일한다는 여자 교수가 말했다. 그 사진에 그 금액은 너무 세다고 나랑 사귀던 다른 남자가 말했다. 내 글을 읽고서, ‘네 사건과 네가 적용한 페미니즘 이론이 어쩜 그렇게 딱 들어맞는지 모르겠다’고, 나랑 사귀던 또 다른 남자는 감탄하며 말했다. 어떤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남자는 갑자기 본인의 여자친구가 자신을 페이스북에 ‘공개 저격’한 사건 따위를 내 사건과 같은 선상에 두었다… 마치 남자도 여자한테 당한다는 듯이… 할 말이 없다.


나는 페미니즘 세미나를 하던 곳에서는 울며 말하기도 했고, 대학원생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웃으며 말하기도 했다. “제가 그래서 페미니즘 하려고 대학원 온 거거든요. 선순환이죠.” 냉소적인 유머는 분명 나의 힘이었다. 이렇게 농담처럼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역시 나는 강해. 이겨내고 있어.' 하고 생각했다.


나는 스물셋이었고 지금 나는 서른이다. 그런데 아직도 운다. 내가 그 일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렇게 다시 깨닫게 되면 서럽고 지겹다. 대체 언제 극복할 건데?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유니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성애 로맨스나 결혼에 구원을 바라지 말라는 얘기는 당연히 일리가 있다.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화하고 낭만화하여, 불합리나 착취, 폭력이 존재하는 것을 가리면 안되니까. 동의한다. 하지만 내 욕망은? 나는 사랑을 원해. 제대로 된 남자와의 관계를 원해. 적어도 인간 대 인간으로 안전하고 즐겁길 원해. 나는 남자에게 신랄해, 하지만 남자가 좋아.


그리고 동시에 다른 내가 말한다. 나는 영원히 남자와 건강하고 안정적인, 좋은 관계는 가질 수 없을 거야. 어딘가에 그런 아름다운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 것은 아닐 거야. 또 다른 나는 안다. 이게 합리적이지 않은 생각이란 것은. 자상한 남자 교수가 “그래도 좋은 남자도 있을 거야” 하고 내게 말할 때 나는 쓴웃음을 짓는다.


나와 만나는 모든 남자가 나에게 폭력을 가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와 만나는 모든 남자가 나를 실망시킬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마치 보호자를 바라는 어린아이같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남성이 나보다 더 강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 강한 여성이다. 내 상처를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 치유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의 상처는 공통 감각을 가진 페미니스트들만 이해할 거라고 생각한다. 남자들이 대개 내게 처음엔 호감을 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기대가 점점 사라지는데, 기대 없이 남자를 만나면 다치게 된다. 아무도 원하고 싶지 않은데 어느새 누군가가 좋아진다. 나는 그렇다.


이 글을 쓰도록 나를 몰아붙이는 감정의 격동이 싫다. 다시는 이런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 휩쓸릴 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