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적이지 않은 글

#678

by 조현두

아이야

직접 전해야 마땅하건만 용기가 없어 글을 써둔다

무서워서 결심하지 못한 탓이지

그렇게 나는 어리고 미숙한 탓을 하며

나다움이란 그럴싸한 변명에 아래 몸을 숨기고 산다

용서를 바란다


아이야

그 어떤 희망을 이야기하며

아직 닿지 못한 바다와 밤하늘 별을

올려다 보는 맑은 그 눈에도

반짝이는 별이 있음을

내가 기억한다


때로 개 같던 울분이 쏟아져

내 앞에 너져분하게 깔린 것은

그저 슬픔이라기보다

여린 영혼의 상처에서 뜯겨져 나온 딱지와

피칠갑 된 실밥들처럼 보이기만 했다


반짝이는 윤슬은 호수를 덮고

희게 빛나던 초록

선하게 부는 바람과 곱게 내린 흰눈

부러지다 못해 틑어진 나뭇가지

건조한 노을에 부서지던 억새

짙은 밤조차 가리우던 안개도

차갑게 아름다운 시절이 되어

우리의 가슴을 울렸던 일 기억한다


청춘의 무수히 많은 잔인함이

솔직함이라는 이름 아래

오고 갔지만

아이야

그 외롭던 시간 너와 함께 했기에

나도 이 도시의 차가움을 견디며

그럭저럭 지낼만 했던 것 이겠지


고백하자면

그렇게 나누었던 것 중 내가 가장 좋았던 일은

발걸음을 나누었던 점이였다


나중에 다시 태어난다면 그 때에는

내 자식으로 태어나 너와 아주 오래 걸을 수 있다면 좋겠다

미처 배웅하지 못했기에 이젠 어디에서도 배웅하지 못하니

검은 모래도 볕을 받으면 반짝인다는 점을 니가 알려주었듯 널 마중하러 먼저 가 있길 바란다


너는 천천히 조심히 온다면 좋겠구나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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