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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스스로 꺼지는 법을 배웠다

#694

by 조현두

그는 아침마다 같은 시간에 눈을 떴다
눈을 뜨는 게 아니라
하루가 자동으로 시작되게 놔두는 쪽에 가까웠다


눈 뜨고 나면 하는 일도 비슷했다
유리판처럼 반짝이는 세면대 위에
어제를 묻힌 얼굴을 씻어냈고
셔츠는 전날 다려 두었다
단지 그렇게 입는 일에
다른 선택지는 없는 것처럼


엘리베이터 거울은 매일 그의 표정을 비췄지만
그는 거기서 자신을 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가 자꾸 그 얼굴을 대신 써주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오가는 공간에서
그는 조용했고 적당했고 능숙했다
말을 잘했다기보다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오래된 훈련 같은 것이었다


점심시간이면 그는
편의점 조명 아래에 앉아 있었다
늘 혼자였고
늘 같은 것들을 샀다
맛보다 온도가 더 중요했으며
포장을 뜯을 때 나는 사소한 비닐 소리에도
그는 괜히 미안해졌다


점심은 이상한 시간이었다
몸은 쉬고 있는데
마음은 어쩐지 더 예민해졌다
그럴 때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곤 했다


조용히 밀고 들어온 시야에 걸린 사람들은
자리에 앉는 자세부터 달랐다
손이 천천히 움직였고
무얼 넘길 때도
어딘가 닿아 있는 사람 같았다


그는 시선과 무관한 생각을 바라본다
바라보지 않으려던 마음도
자꾸 그쪽으로 기울었다


퇴근길은 늘 같은 길이었다
정해진 신호
익숙한 풍경
그 길에선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아도 됐다
그는 그 점이 마음 편하면서도
조금 무서웠다


그는 자주 피곤했다
기능을 많이 써서 그런 줄 알았지만
나중에야 알았다
자신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


하루가 끝나면
형광등보다 늦게 꺼지는 자신을 느꼈다
그건 늦게까지 열심히 살아서가 아니라
정지 버튼을 누르지 못한 기계처럼
그저 멈추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는 요즘
스스로 꺼지는 법을 배우고 있다
누르지 않아도 꺼지는 불빛처럼
점점 작아지고
조용해지는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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