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2
탁한 도시 먼 하늘 아래 비 내리면
젖은 신발끝이 차갑게 울고
뒷동산에 핀 풀꽃 하나
바람에 흔들리며 나를 부른다
장터에서 사 온 콩나물처럼
속이 시원찮아도 싱싱한 척
그 언덕 너머에서 들려오는 한숨에 마음이 풀린다
연등이 물든 저녁 하늘
구름 사이로 빛이 새어 들고
나는 그 빛을 따라 걷다가
당신이라는 나무 그늘에
잠시 앉았다
계절은 겨울바람이 매서워질 즈음
꽁꽁 언 손을 주머니에 넣고
내가 없어도 봄은 오겠지라며
스스로를 밀어냈다
당신은 아무 말이 없었고
내 목소리는 가시처럼 돌아와
산골짜기 물소리처럼
속에서 울다가 결국 터졌다
결국 돌멩이 하나를 던지며
소리친다
그만 좀 차가워져라
그러다 어느 날 아침
문턱에 놓인 꽃무더기
산새가 날아와 앉은 듯 가볍다
또
고맙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이제 풀꽃은 바람에 지고
산비탈은 다시 조용해진다
당신이라는 그늘은 멀어졌지만
내 발밑엔 아직
따스함이 남아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