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책을 많이 읽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 도서부였다. 책을 읽는 걸 좋아했고 덕분에 거기서 온갖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정말 가리지 않고 활자로 된 건 다 읽고 보던 시절이었다.
철학, 미학, 소설, 음모론, 예술, 여행, 사진, 심리, 정치, 역사 다 읽었다. 덕분에 정말 또래에 비해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고 소위 박학다식할 수 있었다. 덕분에 선택과목으로 선택한 어떤 과목은 공부하지 않고도 고득점 하곤 했다.
담당 교사가 물을 정도였다. 넌 이거 학교 수업도 없고 따로 공부도 안 하는데 어떻게 아냐고. 그때 내 대답이 뭐였냐면, '상식으로요'라고 대답했다. 같이 수업 듣던 다른 애들이 재수 없어할 만한 발언이었고, 또 그랬다.
책은 알았는데 사람은 좀 어렵더라.
이처럼 난 그때 사람을 몰랐다.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내 단순한 설명이 주변 사람에게 어떤 느낌을 주게 되는지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대인관계 기술이 너무 나빴고 왜 난 인정받지 못할까란 생각에 버둥대던 시절이었다.
아마 그 반작용으로 책을 그렇게 파고 들었을 것이다. 책은 내가 말 걸지 않아도 무엇을 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으니까. 대인관계가 안되니까. 책과 관계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이 있어서 나는 책 읽는 청소년들을 유심히 본다. 어떤 책을 읽는지 그 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책을 보는 게 아니라 책과 관계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런 독서는 그저 책으로 도피하는 것이 되어버리기 쉽다.
지식을 쌓고 교양을 쌓는 것이 나쁜 건 아니다. 다만 왼손이 멀쩡히 달려있는데 오른손으로만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려 한다면? 왼손을 쓰는 법도 잘 가르쳐주는 것이 필요함을 이야기하고 싶다. 오른손만으론 리코더 연주도 힘들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