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2
처음으로 총각 김치를 해봤다.
노동량이 엄청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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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와 오이 김치를 생각보다 쉽게 만들어서 총각 김치도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총각 김치를 담그는 건 엄청난 일이었다. 무엇보다 씻는 게 일이었다. 깍두기와 오이 김치를 만들 땐 한번 깨끗이 씻고 바로 담그면 되지만, 총각 무를 씻을 땐 그렇게 한번 씻고 말면 안 된다. 세네 번, 아니 다섯 번을 씻어야 하는데 여러 번 씻는다고 대충 씻어서도 안 된다. 무도 박박 씻고, 무청 줄기 하나 하나도 공들여 씻고 또 씻어야 한다.
한 번 씻을 때마다 진이 빠져서 씻고 쉬고 씻고 쉴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아침 10시에 시작한 김치 담그기를 저녁 6시에 끝낼 수 있었다. 하루가 몽땅 총각 김치를 담그는 데 바쳐졌다. 밀폐 용기에 무를 차곡 차곡 쌓으면서 어떻게 엄마는 단 하루도 김치를 떨어뜨리지 않고 살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김치 귀신인 둘째 딸 때문에 고된 김치 노동을 감내하면서도 내색한번 하지 않았다는 것도 신기하다. 심지어 오늘 엄마는 엄마 집에서 김장 김치를 했다는 데 목소리가 너무 밝았다... 나는 다 죽어가는데.
보통 먹을 걸 만들면 뿌듯한 마음이 드는데 오늘은 뿌듯하지 않았다. 그저 힘이 쭉 빠졌을 뿐. 뿌듯함이란 감정은 고된 노동 끝에는 가질 수 없는 감정이란 걸 알게 됐다. 적당히 노동한 끝에 가볍게 미소지을 수 있을 때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 나는 이 감정을 좋아하니깐, 총각 김치는 당분간 안 하는 걸로... 일 년에 한 번만 해 먹는 걸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