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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보름 Feb 27. 2023

카버

2023.2.27 월요일

이번 주말에 아르테 출판사에서 나온 <레이먼드 카버>를 읽었다.

아..., 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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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읽었을 때의 충격과 그 이후로 가시지 않던 여운을 기억한다. 뒤이어 읽은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뭐랄까,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었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걸 말하는 느낌. 스쳐 지나가는 어떤 뭉근하면서도 나약한 감정 같은 것을 포착하는 예리하면서도 거대한 힘을 카버에게 느꼈다.


그래서 카버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몇 년 전 어느 책에서 그가 아내를 때린 가정폭력범이었다는 걸 읽고는, 마음을 접었다. 카버, 너마저, 하면서.


그러다 이번 주말에 이 책을 읽게 된 건 <작가와 술>이란 책 때문이었다. <외로운 도시>를 쓴 올리비아 랭의 에세이인데, 이 에세이의 첫 장면에서 카버는 존 치버와 함께 아침 댓바람부터 위스키를 사서 마신다. 가게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가 급히 사 나와 그 독주를 번갈아 마시는 두 사람은 심각한 알코올중독자이다.


그냥, 이 장면을 읽고부터 계속 카버가 생각났다. 그가 얼마만큼 알코올중독자였는지도 궁금했고, 또 편집자 고든 리시와의 그 유명한 일화에 대해서 깊이 알고 싶기도 했다(카버를 지금의 카버로 만들어준 편집자 고든 리시는 카버의 소설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수정했다. 문장을 반 이상 덜어내거나 결말을 바꿀 정도였다. 그렇게 해서 나온 소설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고 이 소설로 인해 카버는 '미니멀리즘'의 대가라는 칭호를 얻는다.)


<레이먼드 카버>를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그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책을 쓴 저자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도 마음에 들었고, 그가 카버를 바라보는 시선, 그러니까 누군가의 삶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도 마음에 들었다.


카버는 절대 옆에 두면 좋을 인간은 아니었다(적어도 가족으로는 두면 안 될 사람이었다). 책의 저자도 말하듯 그는 마흔 살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만 끼친다. 수동적인 민폐일 때도 있고, 적극적인 민폐일 때도 있다. 극악무도한 악인은 절대 아니었지만(그는 순하고 천진난만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생활력이 없고 알코올중독자인 데다가 변화를 싫어하는 보수주의자인 걸 넘어 끝에 가서는 자기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와 아들, 딸 사이에 오간 대화는 나오지 않지만 그는 분명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삶과 빈곤한 생활, 거기다 부모의 불화를 아무렇지 않게 넘길 자식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 아들은 마약을 하게 되고 딸 역시 아빠를 뒤이어 알코올중독자가 되어버린다. 자식들은 카버가 소설에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걸 매우 끔찍해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카버는 가족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크게 개의치 않는 사람이었고...)


그는 정말 애증의 남편이기도 했다. 책에 아내의 목소리 또한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적어도 아내가 카버를 엄청나게 싫어했던 것 같진 않다. 다만 그녀의 삶은 그로 인해 막혀도 너무 자주 막혔다. 변호사를 꿈꿀 만큼 똑똑했던 아내는 카버와 십 대 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바람에 모든 꿈을 접었다. 일을 오래 하지 못하고 글쓰기를 포기하지 못하던 남편 때문에 주로 그녀가 생활 전선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그러면서도 학업의 꿈을 접지 않은 그녀는 불굴의 의지로 대학까지 마치고 명문대에도 진학하는 등 최선을 다하지만, 꼭, 그녀가 한 단계 도약할 때마다 카버가 초를 친다. 일이냐, 가족이냐 물으면서. 그녀가 너무 일에 열심이다 보니 본인이 글을 쓸 시간을 마련하지 못하는 것도 불만이고, 또 매력적이고 뛰어난 그녀가 바람을 피울까 두려워서이기도 하다. 실제 그는 아내를 의심한 나머지 술병으로 머리를 내리쳐 그녀는 과다 출혈도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그녀는 매번 어쩔 수 없이 남편의 뜻을 따른다. 일이 아닌 가족을 선택한다. 하지만 말이 가족을 선택한 것이지 결국은 남편을 선택한 것일 테다. 엄마가 일을 하는 게 아이들에게 더 나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아내가 일을 그만두면 가족은 빈곤한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카버는 대책도 없고 계획도 없는 아빠이자 남편이었다.


그런 그가 평생에 걸쳐 꿈꾼 것은 그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돈이 좀 많아서 편하게 글만 쓸 수 있는 삶. 카버가 꿈꾸던 삶이다. 꿈을 포기하지 않으며 그는 계속 글을 쓴다. 아내가 대학을 다닐 때 카버도 역시 대학을 다닌다. 문예창작과에 들어가 소설에 대해 배우면서 쓴다. 삶은 자주 망가졌지만 그 와중에도 그의 소설은 서서히 그 빛을 드러낸다. 그의 글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나오고, 오로지 그의 글만 보고 그를 이끌어주는 사람들도 만난다.


그래서 꿈에 그리던 삶으로 한발 들어가려 할 때, 그는 스스로 수렁으로 기어들어간다. 이제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알코올중독자의 삶을 산다. 술이 모든 걸 망친다. 대학에서 얻은 자리도 지키지 못하고, 또 글도 쓰지 못한다. 그럼에도 미국 문학계에선 그의 이름이 서서히 뻗어나가고 있다. 처음으로 명성을 얻은 시기가 그에게는 최악의 시기가 되어버린다. 술 때문에.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강의도 빠지고 가족도 무너진다. 그러다 술 때문에 사경을 헤매는 지경까지 간다.


술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죽을힘을 쓰며 그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소설가로서의 명성은 어느 정도 지켜지고 있었지만, 그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주는 곳은 찾기 어려웠다. 그래도 어떻게 강의를 얻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단편 몇 개를 모아 이미 명성이 자자한 편집자 고든 리시에게 보내고, 고든 리시는 과감하고도 폭력적으로 카버의 글을 고친다. 카버는 제발 그러지 말아 달라고 호소한다. 당신이 내 글을 그렇게 고치면 나는 또 술을 마시게 될 거라고. 하지만 결국 고든 리시가 이기고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출간된다. 이로써 카버는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미니멀리즘의 대가가 되어버린다.


책을 여기까지 읽고 나는 카버에게 너무 감정 이입을 한 나머지 가슴이 너무 답답해졌다. (심지어 울기까지.) 카버는 여러모로 엉망진창인 삶을 살긴 했지만 글에서만큼은 완벽주의자였다. 하루 종일 글을 고친 후 쉼표의 위치를 처음 쓴 곳에 다시 넣으면 비로소 퇴고는 끝나는 것이라고 말할 만큼, 글이 그의 모든 것이었다. 그런 그가 재기를 위해 편집자의 말을 따라야 했을 때, 마음이 어땠을까. 제가 쓴 문장이 처참히 덜어내지고 심지어 결말까지 바뀌었으니. 그런데 그렇게 나온 소설로 대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면?


하지만 다행히도 이렇게 얻게 된 명성이 그에게 힘을 주었다. 그는 바로 '대성당'을 쓰기 시작했고, 이번에도 고든 리시에게 편집을 맡겼지만, 이번엔 최소한의 편집만을 허락했고, 이로써 둘은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나온 <대성당>은 전보다 더 큰 인기를 끌며 카버는 미국 문학의 새로운 물결이 되고, 그는 '뉴 웨이브의 아버지'란 칭호를 얻는다.


말년의 카버는 사고 싶은 차(벤츠)를 살 수 있을 만큼의 부와 만족스러운 명성을 누렸다. 그 시기가 너무 짧아서 마음이 아프긴 하지만(그에게 너무 감정이입이 되어버렸으므로...), 그래도 꿈을 이루었으니 가혹하고 지난했던 과거는 살짝 잊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는 재혼했지만 마음에서 전처를 내려놓지 못했고, 자기가 민폐덩어리 아버지였던 탓에 아이들의 삶이 망가졌으므로 그 괴로움도 끝까지 그와 함께했다. 그럼에도 삶에서 이룬 것이 있으니 너무 후회스러운 삶은 아니었을 것이다. 척박한 땅에서 태어나 아무것도 쉽게 누리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글만큼은 스스로 일궈내 하나의 흐름이 되었으니까.



+ 평소처럼 두 세 문단만 쓰려다가 감정이 격해져(ㅋ) 한 시간 넘게 쓴 글이에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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