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보름 Aug 11. 2023

마침표 이후에 오는 문장

회사에 다닌 1년 반 동안 내가 가장 하고 싶던 건, 아침 9시에 글을 쓰는 일이었다. 회사에서 엑셀을 띄울 때면 내 마음은 집에서 한글을 띄우고 있었다.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처럼 가로세로 줄이 촘촘히 그어진 엑셀이 아닌,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감도 잡기 힘든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 한글을 띄워놓고 하루 종일 막막해하고 싶었다.      


회사 그만둘까 봐. 휴대폰에 대고 나는 말했다. 휴대폰 너머의 친구들은 누구 하나 나를 뜯어말리지 않았다. 왜 그만두려는지조차 묻지 않았다. 외력에 의해 정신없이 휘둘리던 오뚝이도 다시금 제자리를 찾듯, 친구들이 보기에 나의 자리도 결국은 글 쓰는 삶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나는 분명 ‘그만둘 거야’라고 말하지 않고 ‘그만둘까 봐’라고 말했건만, 친구들은 내 속을 들여다본 사람처럼 그래 참 잘 생각했다며 나의 퇴사를 미리 축하해주었다. 한술 더 떠 퇴사 타이밍을 정해주는 친구도 있었다. 계산 편하게 말일까지 일하고 이번 달은 회사 입장에서도 갑작스러우니 다음 달에 그만두라는 친구의 말에 나는 그거 참 탁월한 조언이라며 장난스레 맞장구쳤다. 어차피 친구도 나만큼이나 잘 알고 있을 거였다. 결국은 내 마음 가는 대로 내 삶이 흘러가게 되리라는 걸.


그리고 친구도 나만큼이나 내가 말하지 않은 불안을 잘 알고 있을 거였다. 삼십 대를 몽땅 글 쓰는 삶에 쏟아붓고 나서야 나는 글로 먹고사는 일의 요원함을 이해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제서야 나의 현실로 정확히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뒤늦게 현실을 너무나 제대로 직시한 통에 몇 번은 자다가 헉 소리를 내며 깨기도 했다. 잠에서 깬 나는 속으로 큰일 났다고 되뇌었다. 큰일 났다, 글만 쓰다 마흔이 넘어버렸어, 정말 큰일 났다.     

 

밥벌이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작가들의 글은 수도 없이 읽었다. 글로 돈 버는 게 가장 쉬웠다고 말하는 작가는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쓴 글이 고봉밥이 되어 나를 살찌우는 행운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밥벌이할 방법을 구체적으로 그려보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려보는 순간, 내가 너무 좋아하게 된 이 생활을, 방에 틀어박혀 글만 쓰는 이 생활을 끝내야 할 것 같았으니까.


대신 밥벌이의 어려움이 작가 생활의 기본값이라고 마음 깊이 새겨 넣었다. 바람이 불면 머리가 날리는 것은 당연지사인데 왜 머리가 날리느냐 하늘을 원망할 필요 없듯, 작가가 되면 밥벌이가 어려운 것은 당연지사인데 왜 생활이 이토록 곤궁해진 것이냐 꼬치꼬치 따지고 들 필요 없는 것이다. 바람이 불면 귀에 머리를 꽂으면 되듯, 밥벌이가 어려우면 소식을 하면 된다. 하지만 언제까지……?


언제까지 이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실은 내내 이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미련퉁이처럼 답을 내지 못하고 글을 쓰다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보내다 삼십 대를 지나온 것이다. 난 나에게 무책임한 사람인 걸까. 지금은 그렇다 치고 나중에 더 나이 들면 어쩌려고 이럴까. 소식을 넘어 아예 굶게 된다면? 등등의 생각이 서로 치고받으며 머리를 두서없이 장악했고, 이런 나날이 이어지다 어느 날 헉 소리를 내며 잠에서 깨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2021년 1월 1일은 내 인생 최악의 날로 꼽을 만하다. 무슨 일이 생기지도 않았고 어디 아픈 데도 없는데 마음을 앓으며 처음으로 밤을 지새운 날이기 때문이다. 밤을 꼬박 새우며 나는 마침내 인정해야 했다. 이젠 허울 좋은 전업 작가 생활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고. 좋았던 한 시절이 끝난 것이다. 실은 꽤 오래전에 찍어야 했지만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찍게 된 마침표. 겉은 작가였지만 속은 백수였던 생활에 마침표를 찍으며 나는 생각했다. 후회할 필요는 없어. 졌지만 잘 싸웠다고 생각하자. 좋아하는 생활을 이토록 오래 누릴 수 있던 것만으로도 축복인 거야.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기. 그나저나 이젠 뭘 해서 먹고살지.     


그렇게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마침표를 찍은 얼마 후 학교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선배가 다니던 회사에서 사람을 급히 구한다며 면접을 보라고 했다. 실무진 면접과 임원면접을 일주일 만에 해치우니 며칠 후 등기로 사원증이 날아왔다. 바로 첫 출근일이 정해졌다.


출근하자마자 퇴근을 기다리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출퇴근만 하다가 어느새 한 달이 지나갔다. 첫 월급이 통장에 찍힌 날, 나는 좀 허탈해서 웃었다. 수천 권의 책을 팔아야 받을 수 있는 인세가 거기 찍혀 있었다. 월급쟁이의 노동은 임금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어찌 됐건 척척 밥으로 환산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루 종일 쓴 글을 밥으로 환산하지 못하던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어 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책을 팔아 매달 이 정도 돈만 벌 수 있다면 정말 소원이 없겠다. 그러다 금방 이 생각을 쫓아냈다. 나는 이미 마침표를 찍었으니까.      


이후의 이야기는 여러 북토크와 인터뷰에서 간간이 말해왔다. 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무렵 나는 몇 년 전에 쓴 소설을 공모전에 출품했다. 몇 개월 후 회사에 앉아 있다가 수상작이 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란 제목으로 전자책이 출간되었고, 다음 해인 2022년 1월엔 종이책이 출간되었다.


종이책 출간 이후, 마침표를 힐긋거리며 보내는 시간이 늘어갔다. 자꾸만 마침표 이전의 삶을 떠올리게 됐다. 툭하면 가능성을 타진했고, 이내 이건 내가 타진한다고 결과를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나를 설득했다. 가능성을 타진하다가 나를 설득하는 일을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했다. 가족과 이야기를 할 때도 누가 물은 것도 아닌데 혼자 가능성을 타진하다가 곧 그들 앞에서 또 나를 설득했다. 아니야, 안 돼, 마침표 찍었잖아, 너 어쩌려고 그래? 또 헉 하면서 일어나려고? 그만, 스톱, 생각 그만.


그렇게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몇 개월을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 회사에 사직 의사를 밝혔다. 친구 말대로 계산 편하게 말일까지 일하기로 했고, 다만 회사 입장보다 내 입장을 고려해 그달까지만 일하기로 했다. 마침 회사에도 변화가 있던 터라 어렵지 않게 그만둘 수 있었다.      


마침표를 찍었을 때의 마음을 기억하고 있다. 부단히 했던 노력도 만족할 만한 성취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이기 위해 무진 애를 쓰던 것도 기억하고 있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유머를 잃지 않으려고, 매일 마음을 다스리던 것도 기억하고 있다. 다시 불안할 테고, 내 노력의 시간은 또 고봉밥이 안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또 살고 싶었다. 불안하지만 충만했던 그때처럼.


그럼 이미 찍어놓은 마침표는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긴. 마침표 뒤에 다음 문장을 이으면 되지. 작가의 특권이라면 본인이 쓰고 있는 이야기의 마지막 정도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미련이랄 수도 있고, 또 한 번의 실패를 자처하는 일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한 사람이 다시금 제자리를 찾는 일일 수도 있는 이야기가 작가의 손에서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마침표 이후에 오는 문장으로. 이 글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