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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보름 Oct 15. 2018

글을 읽는 나와 글을 쓰는 나

뛰어난 작가들의 책을 읽다 보면 글을 읽는 감각은 확실히 느는 듯하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 세계를 둘러보는 경험이 늘수록 현실을 읽는 감각도 확실히 느는 듯하다. 독자로써 이런 경험은 늘 옳다. 이런 경험이 반복될수록 가짜 이야기와 진짜 이야기를 예리하게 구분할 수 있고,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답은 늘 은밀하게 숨겨져 있지만 그리 멀리 숨겨져 있지는 않다는 걸 깨닫게 되고, 무엇보다 확신에 찬 말보다 머뭇거리는 말이 진실에 가까운 경우가 더 많다는 것도 알게 되니까.  


하지만 책을 좋아하던 이가 작가가 된 경우엔 거인의 어깨가 마냥 흡족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그 어깨와 내 어깨를 비교하게 되는 순간 속수무책으로 비참해지기도 하니까. 글을 쓰는 나는 어떻게든 내 어깨에 만족해보려 하지만, 글을 읽는 나는 자꾸만 저 높다란 어깨를 기준으로 내 어깨를 나무라려 한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위축되는 글을 쓰는 나.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글을 쓰는 나에게 글을 읽는 나는 거침없이 말한다.  


“네 글은 너무 평이해. 문장이 좋지도 않고, 삶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너만의 독특한 시각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다시 써보는 게 어때? 더 수준 높게. 네가 좋아하는 작가들처럼.”  


본인이 평소 읽는 글만큼 자신이 쓰지 못한다는 괴로움 때문에 작가는 어쩔 수 없이 글쓰기 앞에서 자주 작아지고 만다. 이 정도면 될 듯하다가도 분명 이보다 더 나은 글이 이 세상에는 많다는 사실을 알기에 끝까지 만족하지 못한다. 만족하지 못한다 하여 딱히 묘수가 떠오르는 것도 아니다. 며칠 전 읽은 그 글처럼 써보려고 해도 어차피 지성도, 감성도 따라가지 못할 거라는 걸 알기에. 


나는 자주 내가 읽는 글과 내가 쓰는 글의 간극에 걸려 넘어진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어떻게 만족했더라도 시간이 흘러(독서를 하다가) 다시 읽으면 또 실망하기 일쑤다. 그래서 독자이면서 작가인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글은 늘 부족한 글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끝까지 실망하고, 마지막까지 위축돼야 할지도.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독서하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독자로만 남거나, 글을 쓰는 즐거움을 위해 작가로만 남아야 할 것 같아 암담해진다. 하지만 독서도 포기 못하겠고, 글쓰기도 포기 못하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아 우물쭈물하게 될 때, 내가 즐겨 찾는 해결법은 이렇다.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이 무언지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의 조언을 듣고 그 조언을 믿어보기. <작가의 시작>에서 바버라 에버크롬비는 내게 이렇게 조언한다.


“우리의 예술과 우리가 동경하는 것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처음에 우리의 예술은 그저 가능성만 갖고 있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좋은 취향에 부합하지 않아서 실망한다. 그 간극을 좁히는 방법은 많이 해보는 것뿐이다. “


으음, 그래 믿자. 간극을 좁히는 방법이 분명 있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니까 속상해하지만 말고 많이, 많이 써보자꾸나.   


이성복 시인이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글이란 본디 자기 능력보다 더 잘 쓸 수도 없고 더 못 쓸 수도 없다.”


너무나 마음 놓이는 말이지 않나. 나는 처음에 이 말을 듣고 내 부족한 글쓰기 실력이 불러온 고민과 걱정이 (그 순간만이라도) 말끔히 사라지는 기분을 느꼈다. 


내 글이 별로라고, 특히 며칠 전 읽은 남의 글보다 참으로 별로라고 실망할 수는 있다. 실망해야 더 좋은 글을 쓰게 된다는 점에선 필요한 실망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 내가 쓰는 글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내 능력만치의 글이라고. 그러니 터무니없는 역량을 지금의 나에게 요구하지 말자고. 대신, 지금의 나를 격려하며 미래의 나를 기다려보자고. 쓰고 또 쓰다 보면 내 글쓰기 역량도 올라가지 않고는 못 베길 테니까. 그래서 나는 성급히 채찍을 드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뛰어난 글을 읽을 때마다 매번 내 글과 비교하며 실망하게 되는 건 아니다. 가슴이 콩콩 뛰는 즐거움도 자주 맛본다. 와, 이 글 정말 좋다, 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 하고 생각하게 될 때면 읽던 책을 내려놓고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 글을 쓰게 되기도 한다. 좋은 글은 강력한 자극제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글을 읽어나갈 참이다. 거인의 어깨를 자주 빌려볼 셈이다. 언젠가는 글을 쓰는 나와 글을 읽는 나가 사이 좋게 의견 일치를 보일지도 모른다고 희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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