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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보름 Oct 18. 2018

영감은 스리슬쩍 우리 곁에

"엄마, 내가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던 날이 기억난다. 가을이 막 시작된 즈음이었다. 얇은 티셔츠와 바지 위에 가벼운 외투를 걸치고 나무가 양쪽으로 늘어선 거리를 걷는 중이었다. 주말이었다. 엄마와 나는 종종 함께 걸었고, 걸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위의 질문은 내가 그간 엄마에게 했던 수많은 질문 중 하나였다.


“글쎄. 그런데 작가가 되는 사람은 뭔가 다를 것 같아. 글을 쓰려면 영감이 머릿속에서 마구 흘러넘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 작가가 되는 거 아니야?”


딸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한 번도 막지 않은 엄마였다. 엄마는 늘 내 일은 내가 선택하길 바랐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무조건 응원하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엄마는 그저 엄마가 생각하는 작가에 관해 내게 말할 뿐이었다. 그리고 난 엄마의 말에 “응..." 하고 대답했다.


글을 쓰며 살고 싶다고 생각한 후 서평을 쓰기 시작한 건 내가 엄마의 말에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영감이 화수분처럼 쏟아지는 내면이 내겐 없었다. 나는 저 하늘 위 달을 몇 날 며칠 바라보고 있는다 하여 세상을 새삼 은유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사람도 아니었다. 머릿속 생각도 특출 나지 않고, 가끔 하는 생각 속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기발한 아이디어나 상상력도 들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쓰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거였다. 쏟아낼 영감이 내 안에 없으니, 누군가의 영감에 반응하는 글을 써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렇게 자신감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된 글쓰기. 비공개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도 괜한 부끄러움을 느끼며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글을 쓰려면 책을 읽어야 했기에 일부러 얇은 책을 골라 전투적으로 빨리 읽어 치운 적도 많았다. 출판되진 않았지만 처음에 쓴 책의 소재도 책이었다.  


그렇게 몇 년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깨달은 몇 가지가 있었다. 책에 대한 나의 반응이 글로 쓰이는 순간 내 반응 역시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읽었던 그 많은 책들 역시 무언가에 반응한 결과로 쓰인 글이라는 걸 알았다. 시인은 봄에 핀 꽃에 반응하고, 소설가는 세상의 부조리와 불행에 반응하고, 에세이스트는 세상에 떠도는 말과 글에 반응한다. 또 서로서로 반응하고, 현재는 과거에 반응하고 미래는 현재에 반응한다. 이 세계는 수많은 반응의 결과로 이야기를 가득 품게 되었다는 것.  


이런 생각 또한 하게 되었다. 엄마가 말하고 내가 동의한 그 생각이 틀린 건 아닐까. 작가는 “영감이 머릿속에서 마구 흘러넘"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글을 쓰는 사람’ 일뿐인 게 아닐까. 영감은 우리 안에 이미 가득 들어차 있는 게 아니라,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우리 옆에 와 있는 고마운 선물 같은 게 아닐까. 작가는 영감에 이끌려 책상에 앉는 사람이 아니라, 책상에 앉아 영감을 부르는 사람이 아닐까.


나도 글을 쓰다 보면 가끔 영감이라는 걸 만났다.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에는 결코 생각해 본 적 없던 이야기가 불쑥 고개를 내민다. 이 이야기는 내가 이미 적어 놓은 문장들과 앞으로 적을 문장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해주어 내 글에 논리와 활기와 매력을 심어 준다. 가끔 영감이 불쑥 떠오를 땐 글을 쓰는 일이 어쩐지 기적같고, 또 매우 황홀한 활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역시 내게 말했다. 영감이 찾아올 때까지 글쓰기를 미루지 말고 우선은 글을 쓰기 시작하라고. 그러면 어느 순간 영감이 스리슬쩍 우리 곁에 다가와 있을 것이라고. 스티븐 킹은 영감의 이러한 오묘한 작용을 이렇게 표현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날마다 아홉 시부터 정오까지, 또는 일곱 시부터 세 시까지 반드시 작업을 한다는 사실을 뮤즈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되면 뮤즈는 조만간 우리 앞에 나타나 시가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마술을 펼치기 시작할 것이다.” - <유혹하는 글쓰기>


이야기가 있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이 이야기를 만든다. 영감에 끌려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이 영감을 부른다. 작가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이 작가다. 이 선후관계를 오해해서 선뜻 글쓰기를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글쓰기 앞에서 망설이는 모든 사람들이 얼른 이 오해를 풀었으면 좋겠다. 그러고는 오래도록 꿈 꾸었던 글쓰기를 이제라도 시작해보기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과정 속으로 행복하게 참여해보기를, 글 쓰는 즐거움을 누려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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