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한 번 보면 너무 빠지는 스타일이라 최대한 보지 않으려 한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두 편은 보게 되는데, 작년에 본 드라마는 배우 서현진이 나오는 <사랑의 온도>였다. 드라마 작가 여자 주인공과 셰프 남자 주인공의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 드라마엔 유독 드라마 작가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아 보인다. 아무래도 소재 접근성이 용이해서이지 않을까 싶다. 드라마 작가 입장에서는 자신의 일상을 그대로 그리면 되니 따로 자료 조사를 할 필요도 없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에피소드도 풍부할 테니 말이다.
이 드라마에도 글을 쓰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나왔다. 바로, 소리 내어 읽기. 드라마 초반 서현진은 작가 지망생으로 나오는데, 작업실이 없어 도서관에서 글을 써야 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소리 내어 읽는 게 버릇인 그녀는 도서관에는 영 어울리지 않는 사람. 그녀는 결국 주위 눈치를 보다가 도서관을 나와야 했는데, 그리하여 어찌어찌하다 남자 주인공네 집에서 글을 쓰게 되고, 그렇게 인연을 이어간다는 이야기다.
같은 이유로 나도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글을 잘 쓰지 못한다. 글을 쓰며 중얼중얼 거려야 하는데 이걸 하지 못하니 답답해서다. 그래서 한 두 시간은 어떻게 버티다가도 결국엔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필요할 때 짜잔 나타나는 남자 친구는 드라마에만 있는 걸로!). 미심쩍어서이기도 하다. 소리내어 읽어 보지 않은 문장은 그 문장이 잘 써진 문장인지 아닌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입으로 소리내었을 때 불편하지 않은 문장이라야 그래도 기본은 한 문장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계속 입으로 중얼거리고 있다.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계속해서 처음으로 돌아가 입으로 읽고 또 읽는다. 그래서 글이 최악으로 풀리지 않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박 중얼거려야 한 날에는 저녁 먹을 즈음에 목이 쉬기도 한다.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떤 것도 아닌데, 심지어 나는 그날 아무도 만나지 않았는데, 목이 잠기고 아팠단 경험. 이런 경험을 한 날엔 비록 글은 제대로 쓰지 못했을지라도 마음만은 뿌듯하다. 뭔가 굉장히 알차게 하루를 보낸 듯해서.
또박또박 정확하게 소리 내어 읽기도 하고 옆에서 들으면 신음소리로 착각할 소리를 내며 읽기도 한다. 그러니까 마음으로 읽기와 소리 내어 읽기의 중간 단계. '으으음 으으으으 으으으음 으으음'. 아주 가끔은 카페에서도 이런 식으로 음음 소리를 내며 읽는다. 주변이 시끄러우면서 바로 옆에 사람이 앉아 있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도 얼마든지 문장을 점검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난감한 버릇이 하나 생겼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을 땐 자동으로 눈으로 읽게 된다면, 내가 쓴 글을 읽을 땐 자동으로 입으로 읽게 된다. 내가 쓴 글을 눈으로'만' 읽으면 왠지 어색하고,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내 글을 읽을 땐 의지를 발휘해 소리를 내지 않아야 한다.
소리 내어 읽었는데 부드럽게 흘러가는 문장은 마음으로 읽어도 부드럽게 흘러간다. 소리 내어 문장을 퇴고하는 일은 우툴두툴한 길 위에 매끈한 디딤돌을 놓아주는 것과 같다. 나는 내 글을 읽는 독자가 우툴두툴한 길을 걸으며 불편해하는 대신 디딤돌을 사뿐히 밟으면서 좋은 기분을 만끽했으면 좋겠다. 소리 내어 읽기는 독자를 위해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