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개월 전쯤이었다. 책상에 몇 시간이나 꼬박 앉아 있었는데 문장 하나 써내지 못한 날이었다.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 문장 때문에 나는 고통스러웠을까? 아니!. 그 날 나는 그 몇 시간 동안 인터넷을 하며 즐겁고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다. 포털 사이트 연예면과 정치면을 상세히 훑었고, 그러다 재미가 없으면 스마트 폰으로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인친'들의 사진을 감상하며 글을 정독했다. 그러다가 다시 알고 있는 인터넷 사이트란 사이트는 다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왜 그랬을까? 뻔하다. 인터넷에 중독됐기 때문이다. 에효, 잠깐 정신을 놓고 있으면 어느새 썰물에 떠내려가는 조개처럼 속절없이 인터넷의 바닷속으로 깊이 빠져버리길 어디 한 두 번인가.
몇 시간 동안 시간을 낭비하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만약 이제 막 연기를 시작한 연기자라면, 지금의 내 심정을 이렇게 표현할 것 같았다. 얼굴을 잔뜩 찌뿌리며 내가 너무 미워 죽겠다는 듯이 주먹으로 머리를 퉁 치기. 하지만 나는 연기자가 아니었으므로, 대신 연필로 글을 쓰듯 이렇게 또박또박 생각했다.
'내가 또 인터넷에 정신이 빠져 있었구나.'
이놈의 인터넷. 자주 인터넷이 문제다. 해야 할 일이 있는데,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인터넷을 하느라 미루거나 결국 하지 못하게 된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글을 써야 하는데, 글을 쓰고 싶은데, 인터넷을 하느라 글을 쓰지 못한다. 내가 초보작가여서 이렇게 어리석게 구는 걸까. 그런 건 아닌 듯하다. 언젠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모옌이 인터넷에 관해 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인터뷰어가 이렇게 물은 뒤였다.
"쉬지 않고 글을 쓰는 작가시죠. 왕성한 창작열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가요?"
모옌은 대답했다.
"글을 쓸 땐 컴퓨터에 인터넷을 연결해 놓지 않습니다. 이게 제가 다작할 수 있는 이유지요."
이 인터뷰를 읽으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제 아무리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여도 인터넷에 빠지면 글이고 뭐고 다 잊게 되는 모양이구나. 역시 인터넷의 힘은 누구에게나 막강하구나.
글을 써야 하는데 인터넷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반복됐다. 글을 쓰다가 막히는 부분이 나오면 그 시간을 참지 못하고 어느새 컴퓨터에서 새 창을 열었다. 속으론 핑계를 댔다. 잠시 딴짓을 하다가 돌아오면 막히는 부분이 뻥 뚫릴 것이라고. 하지만 인터넷을 실컷 하다가 돌아온다고 하여 막힌 부분이 절로 뚫리지는 않았다. 시간을 들여 머리를 써야 다음 문장을 이어 붙일 수 있었다. 바로 이 것. '시간을 들여 머리를 써야' 할 때마다 나는 자꾸 인터넷을 하게 됐던 것 같다.
내가 나를 견디게 해야 했다. 힘이 들 때마다 도망치게 놔둬선 안 됐다. 그래서 처음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처럼 인터넷을 끊을까 생각했다. 아무리 접속하고 싶어도 접속할 수 없다면 결국 포기하게 될 테니까. 그런데 그러긴 싫었다. 인터넷 접속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자체가 마음을 더 답답하게 할 듯했다. 나는 누가 뭐래도 인터넷 중동자니까.
그래서 떠오른 묘수는, 타이머. 타이머는 주로 책을 읽을 때 사용했었다. 같은 이유였다. 책을 읽어야 하는데 자꾸 딴짓을 하는 걸 방지하게 위해서였다. 글을 쓰면서도 타이머를 맞춰봤다. 책을 읽을 땐 주로 20분으로 맞춰 놓는데 20분은 너무 짧은 것 같아 30분을 기본 시간으로 설정했다. 마음 가짐은 이렇게 정했다.
'알람이 울릴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글만 쓰기.'
적어도 30분 동안만은 인터넷을 하지 말자고, 인터넷 포함 그 어떤 딴짓도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효과는? 좋았다. 정말 적어도 30분은 집중해서 글을 쓰게 됐다. 30분 글을 쓰고 알람이 울리면 다시 타이머를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타이머를 재시작하다 보면 하루에 두, 세 시간은 거뜬히 글을 쓸 수 있었다. 하루에 두세 시간이라도 꾸준히 쓰기만 한다면 꽤 많은 양의 글을 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이렇게 몇 개월 전부터 타이머를 사용하고 있다. 지난 며칠 글을 안 쓰다가 다시 쓰려다 보니 집중이 안 돼서 오늘도 타이머를 돌리고 있다. 여기까지 쓰는데 타이머가 두 번 돌았다. 이 글을 수정하는데도 타이머가 두 번쯤 돌아야 할 것이다. 글을 써야 하는데 글을 못 쓰겠을 땐 무슨 방법이라도 사용해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든 나를 통제할 수 있다면 글은 결국 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