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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보름 Nov 14. 2018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2018년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에 걸쳐 소설을 완성했다. 와, 내가 이 문장을 쓰게 되다니. 


소설을 완성했다. 


원래는 3개월이 지나면 완성이 됐든 안 됐든 그만 쓰려고 했다. 일정 시간동안 소설을 써 보는 것에 의미를 두었기 때문에. 또 괜히 소설을 쓰는데 너무 큰 부담을 느끼기 싫었고, 또 완성하려다가 너무 긴 시간을 보내기도 싫었다. 그런데 3개월이 됐다고해서 딱 그만 쓰게 되지를 않았다. 간혹 자기가 만들어 놓은 소설 속 인물들과 잘 헤어지지 못하는 소설가를 보는데, 나한테도 비슷한 일이 생긴 탓이다. 여기서 그만 쓰는 건 내가 만든 그 '사람들'한테 몹쓸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그들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이어질지도. 그래서 완성해보기로 마음을 바꾼 것이다. 그 결과 그 '사람들'은 무사히 마지막 코너를 돌았다. 나는 그들과 잘 헤어졌다.


이제 내 친구들에게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별로 놀랄만한 일이 아니라서(처음엔 다들 놀라워했다), 친구들을 만나더라도 대화 소재가 '글'이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번에 소설을 쓰는 도중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소설을 쓰는 중간중간 친구들을 만나 맥주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며 놀았는데, 우리는 '글'에 관해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친구들은 내가 소설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이 상황이 어쩐지 재미있었다. 마치 내가 결혼을 했는데 친구들이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 내 삶에서 매우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 벌어지고 있고, 또 그것이 내게 꽤 의미 있는 일인데, 내 친구들은 그걸 전혀 모른다는 사실. 뭔가 내가 비밀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한편으론 입이 근질근질했다. 친구들이 제각기 털어놓는 이야기들. 회사가 어떻고, 상사가 어떻고, 남편이 어떻고, 삶의 재미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들 틈틈이 나도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영주(내 소설 주인공)가 왜 그 날 눈이 퉁퉁 부어 돌아온 건지, 민준(또 다른 소설 주인공)은 소설 초반에 왜 유독 말이 없던 건지, 영주와 민준은 과연 어떻게 될런지 등등. 내가 그들을 그런 성격으로 만든 이유, 그들에게 그런 상황을 부여한 이유를 말하고 싶었으나 말을 하지 못해 자꾸 손을 꼼지락거리고 맥주만 연거푸 마셨다. 그러고는 마지막에 웃으며 바이 바이.


하지만, 친구들에게 내가 소설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고 해서 아쉽지는 않았다. 어찌 됐건, 나는 소설을 쓰고 있었으니까. 수많은 소설가들이 말했듯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친구들이 몰라준다고 해서 쓸쓸하지도 않았다. 역시나, 나는 소설을 쓰고 있었으니까. 적어도 나는 내가 매일마다 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고 힘들어하는 틈틈이 즐거워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비밀스러운 4개월의 시간이 흘러 나는 소설을 끝냈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쓸 수 있게 됐다.


나는 소설을 썼다.


왜 이 문장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이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아무에게도 보이질 못할 소설인데 말이다. 소설을 썼다는 사실이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런데도 소설을 마지막으로 쓴 날 나는 정말이지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이 정도면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렇게만 계속 살아갈 수 있다면 기막히게 오래 살아야 한데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소설을 계속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도 몰라도, 아무도 몰라줘도, 소설을 계속 쓰며 살고 싶었다.


우리가 4개월 동안 할 수 있는 일이야 많다. 한 학기를 잘 보낸 끝에 좋은 학점을 받을 수도 있고, 짧지만 강렬한 연애에 마침표를 찍을 수도 있으며, 넘지 못할 산처럼 생각되던 프로젝트를 무사히 끝낼 수도 있고, 퇴직금을 모아 떠났던 긴 여행에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시간 동안 소설을 쓸 수도 있다. 그리고 소설을 쓴 그 사람은 자기가 이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느낀다. 누가 뭐래도, 그 사람은 생애에 소설 한 편은 쓴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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