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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보름 Dec 17. 2018

한 번 제대로 망해봐

전업작가가 되겠다고 글을 쓰기 시작한 지 3년쯤 된 해였다. 이미 두 번의 출판 실패를 겪은 때. 그때 난 처음으로 내 인생이 막막해졌다. 자신감이 사라졌고, 다시금 기대를 품는다는 게 무의미해 보였다. 아무래도 난 안 되는 사람인 걸까.


그래도 겉으론 꿋꿋하려 노력했다. 온라인 상에서 알고 지낸 분들이 하나, 둘 책을 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내 내면이 뭉개지고 있다는 사실을 티 내지 않았다. 평소처럼 잠에서 깼고, 대화를 나눴으며, 밥을 먹고, 잠에 들었다. 얼마간 가슴에 시커먼 먹구름을 안고 살았다. 내가 자초한 삶이기에 누구한테 하소연을 할 수도 없었다. 


나 스스로 다시 마음을 추슬러야 했지만 도통 기운이 나지 않던 시기였다. 힘내자, 힘. 구호가 통하지 않았다. 성공한 작가들의 실패기를 읽어도 그 때뿐, 먹구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나는 나 아닐까. 그 사람이 됐다고, 나 역시 되라는 법이 어디 있을까.


먹구름을 가슴 속에 품고 아무렇지 않은 척 언니 집에 놀러 간 날이었다. 낮부터 맥주를 한 잔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정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팍 터졌다. 정말, 순간적으로, 팍. 누구 앞에서 웬만해선 울지 않는(영화나 책을 볼 때는 제외) 애가 눈물을 터트렸을 때 언니는 얼마나 깜짝 놀랐을까.


나는 눈물을 휴지로 찍어내며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언니에게 주저리주저리 신세를 한탄했다. A도 책을 냈고, B도 책을 냈는데, 나는 두 번이나 거절당했다며 꺽꺽거리며 울었다. 아무래도 난 안 될 것 같다며, 내 인생은 이제 끝이 난 것 같다며, 휴지를 뽑고 또 뽑았다. 눈물을 흘리면서 언니를 살피니 언니는 용케도 눈물 주머니를 잘 붙들어 매고 있었다. 앞에 앉은 누군가가 눈물을 흘릴 것 같은 뉘앙스만 풍겨도 먼저 눈물을 주르륵 뽑아내는 언니 아닌가. 


흑흑거리면서 나는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나 이렇게 살다가 정말 인생 망치면 어떻게."


언니는 평소보다 더 흔들림 없는 태도와 목소리로 내 말에 대꾸했다.


"인생이 어떻게 하면 망쳐지는데?"


나는 목소리를 떨며 친구를 고자질하는 아이처럼 투정 부리듯 말했다.


"책 한 권 내겠다고 죽어라 글을 썼는데, 그렇게 시간이 계속 흘러갔는데, 책도 못 내고 다른 걸 할 수도 없게 된 걸 말하는 거야. 막다른 골목에 선 거지. 뒤로 돌아가려 해도 지금까지 온 길이 너무 길어서 돌아갈 수도 없어. 그럼 인생 망한 거지."


언니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생각을 하는 듯했다. 그러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 거라면 한 번 제대로 망해봐도 될 것 같은데. 왜 어때. 멋있잖아. 이루고 싶은 걸 끝까지 해보는 거. 그런 삶은 어려운 삶이라 희소해. 세상에 태어나 희소한 삶을 한 번 살아보는 것도 좋잖아."


언니가 이 말을 하는 순간 나는 이 말이 바로 내가 언니에게 듣고 싶었던 말, 그러니까 내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 더 해도 된다는 말. 그러니까 나는 이제 이쯤에서 포기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가 아닐까 고민하고 있던 거였다. 두 번이나 해봤는데 실패했으니까, 나한텐 재능이 없는 것 같으니까. 그런데 언니가 내게 허락을 해준 셈이었다. 나중에 망하게 될지언정 더 해봐도 된다고. 너가 원하는만큼 끝까지 가보라고. 내가 응원하겠다고. 나는 언니의 말을 듣고는 휴지로 눈을 꾹꾹 누르며 고개를 흔들었다. 


시원하게 눈물을 쏟은 그 날 이후로 나는 또 다음 책을 기획했고, 꿈에 그리던 첫 책을 무사히 출판했다. 첫 책을 출판했다고해서 내 삶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 분명한 건, 그때 포기하지 않았던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꿈은 언제쯤 포기하면 되는 걸까. 한 번 더 시도해봐도 될지, 아니면 이쯤에서 그만둬야 할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내가 그간 읽었던 이야기들을 머릿속에서 헤집어봐도 단 하나의 분명한 정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마침내 꿈을 이룬 사람들은 실망의 시간을 끝까지 견뎌내라고 말하지만, 또 딱 그만큼의 사람들은 꿈이 전부가 아니므로 포기할 땐 과감해져도 좋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꿈이란, 끈질기게 추구할 수도 있는 것인 반면, 언제라도 포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꿈 앞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결국, 또, ‘지금 이 순간’이,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싶다. 꿈 앞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을 땐, 지금 이 순간의 내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고. 꿈을 향해 계속 나아가느냐, 아니면 여기에서 멈추느냐. 어차피 이 물음엔 정답이 없다. 단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꿈을 향해 계속 나아간다는 사실이고, 누군가는 이만큼 해봤으면 됐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멈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두 무리의 선택은 각각 옳다. 


그래서 꿈에서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의 내 마음이다. 타인의 경험에서 길을 찾을 수 없을 땐, 내 마음만이 길을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 마음은 무엇을 원하는가. 꿈의 추구인가, 꿈의 포기인가. 계속 물어야 한다. 마음이 솔직한 생각을 들려줄 때까지. 마음이 답을 알려주면, 이 제부터 필요한 건 용기다. 꿈을 추구할 때도, 꿈을 포기할 때도 용기는 필요하니까.  


그 날 나는 언니의 말을 듣고 내가 여전히 꿈을 추구하고 싶어한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나는 언제고 꿈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도 받아들였다. 나는 나중에 내가 꿈을 포기하더라도, 나를 나무라지 않으리라고 일찍이 마음을 먹어 두었다. 나는 분명 큰 용기를 내서 꿈을 포기했을 테고, 내 마음이 그걸 원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꿈에 관해서라면, 우리의 선택은 늘 옳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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