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수지>는 이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된 2017년 1월부터 신경 쓰이던 책이다. 나는 한 번도 읽어 본 적 없는 책을 쓴 저자가 오로지 책만 써서 엄청난 돈을 벌었는데, 그 돈을 어떤 식으로 얼마만큼 벌었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라고 쓰고 자랑이라고 부른다)한 책이라고 했다. 그러게, 나도 이게 참 궁금했는데. 도대체 작가들은 어떤 식으로 돈을 벌어 얼마나 자주 맛있는 걸 사 먹으며 산단 말인가.
그런데도 이 책을 2년이 지난 지금 읽게 된 건, 뭐랄까, 그래도 글을 쓸 때만큼은 자본주의적 인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 때문이었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살아가는 거의 매 순간 나는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에 굴복하거나 타협하며 살아야 하는데, 글을 쓸 때만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2018년 12월인 지금, 나는 이런 생각이 느슨해진 틈을 타 이 책을 읽었다. 지난 일 년을 돌아보니, 음, 나는 확실히 돈 생각을 좀 하며 살아야 할 것 같아서.
이 책을 읽고 나서 하나 분명히 든 생각은, 이 책을 읽는다고 내가 돈을 더 많이 벌게 되지는 않으리라는 사실이었다. 이 책은 결국 이런 이야기였다. 소설을 좋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소설을 대단하게 생각하지도 않던 어떤 이공계 대학 부교수가 취미 생활에 쓸 돈을 벌기 위해 소설을 한 번 써본다. 그냥 한 번 써 본 소설이 대박이 난다. 이후 소설가가 된 그는 엄청난 속도로 소설을 써내게 되고(가끔은 에세이도) 그렇게 1996년부터 2015년까지 총 278권의 책을 써서 1,400만 부를 판매한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이 15억 엔 정도라고 한다.
1,400만이란 숫자와 15억 엔이란 숫자. 어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수천만 권의 책을 전 세계 수십 개 나라에 번역 출간했다는 이야기는 간혹 들어와서 사실 이 숫자엔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대신, 이 책을 읽으며 정말 놀랐던 건, 저자가 벌어들인 돈이 아니라 저자가 써낸 책의 권수였다. 20년간 278권의 책을 써내려면 매해 평균 13.9권의 책을 써야 한다는 소리다. 으응? 이게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책에는 저자가 매해 출판한 책의 종수가 도표로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는데, 그가 가장 많은 책을 출판한 해는 2004년이었다. 그는 그 해 27권의 책을 냈다. 27을 12로 나눠보자. 2.25다. 매달 2.25권의 책을 출판했다는 말을 나는 믿어야 하겠지! 가장 적게 책을 쓴 해는 그가 소설로 데뷔한 1996년이었다. 그는 그 해에 '겨우' 세 권의 책을 출판했다.
이쯤 되자 나는 이 책을 마치 소설을 읽듯 부담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죽을힘을 다해 쫓으려 해도 어차피 결코 쫓을 수 없는 사람이다. 기적처럼 왕성한 생산력 하나만으로도 그는 보통의 인간, 보통의 소설가를 뛰어넘은 듯 보인다. 첫 책을 낼 즈음 내 바람은 이거 하나였다. 일 년에 책 한 권씩만 꾸준히 낼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첫 책을 낸 지 이미 1년이 지났고... 나는 아직.... 심지어 나는 이런 생각으로 나를 즐겨 위로하는 사람이다. 급할 것 없어, 조급하게 굴지 마, 천천히 하자, 꾸준히만 하자. 그러니 나는 모리 히로시와 얼마나 다른 사람인가!
급할 것 없어, 조급하게 굴지 마, 천천히 하자, 꾸준히만 하자. 이 말은 써놓고 보니 더 마음에 든다. 나는 모리 히로시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문장에서 위로를 받고 이런 문장을 통해 힘을 얻는다. 아마 모리 히로시가 이런 나를 보면 "굳이 왜 그런 말로 위로를 받지? 그냥 빨리 글을 써내기만 하면 되는데?"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 같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도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지는 건 마찬가지.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소설 읽는 걸 즐기지도 않고, 심지어 소설을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 쓴 소설을, 나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오로지 돈을 위해 글을 쓴다는 사람의 말을, 나는 어디까지 내 삶에 적용해야 할까.
나와는 정말 많이 다른 사람이었지만 모리 히로시가 한 말 중에도 기억에 새기고 싶은 말은 몇 개 있었다. 하나는, 그가 낸 첫 책 <모든 것이 F가 된다>가 20년에 걸쳐 계속 판매될 수 있었던 이유를 찾은 대목이었다. 그는 그가 꾸준히 신작을 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마 첫 책만 낸 뒤 다신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모든 것은 F가 된다>는 지금처럼 팔리지 않았을 것이란다. 그는 꾸준함이 우리가 쓴 지난 책들에 다시금 빛을 비춰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두 번째는, 독자의 반응에 대처하는 방법에 관해 조언한 부분이었다. 엄청나게 쿨한 성격인 모리 히로시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소설을 어떻게 평가하든 일절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 시간 낭비라는 것이다. 어차피 그 어떤 책도 모두에게 칭찬받을 수도, 모두에게 비판받을 수도 없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내 책을 어떻게 생각할지 반응을 살피며 초조해하는 대신, 그 시간에 다음 책을 쓰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희일비 또한 금물이다. 부정적 반응에 낙담하지도, 긍정적 반응에 기뻐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가 기적처럼 많은 책을 쓸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런 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반응이 어떻든 꿋꿋이 나아가기. 이런 태도는 정말 꼭 배워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