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루 종일 바쁠 것 같았다. 아무리 바쁘다한들 20분도 못 낼만큼 바쁜 날이 내겐 없긴 하지만. 그렇더라도 잠깐 시간이 났다고 해서 그림을 그리게 될 것 같지가 않았다. 오늘 내겐 마음의 여유가 없을 듯했다. 결국 모든 건 마음의 문젠데, 아직도, 어쩌면 영원히 나는 내 마음을 완벽히 통제하지 못할 듯하다.
마음에 관해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그렇다면 언제 그림을 그려야 할까. 그림만 그리고 끝이 아니잖은가. 이 글도 써야 하니까!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세수만 한 채로 책상에 앉았다. 해야 할 일을 먼저 하고 나면 나중 일은 알아서 착착착 진행되겠지 싶었다.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시간 여유가 없는 게 아니고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거니까.
오늘은 가장 신이 나서 그린 날이었다. 차분한 성격의 주인공은 이제껏 정적으로만 움직여왔다.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주로 앉거나 서거나 걸으면서 생각하는 게 다였다. 그런데 오늘 그림에서 우리의 주인공은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뒤로 돌아 도망치다가 자기 발에 걸려 바닥에 넘어지기까지 한다. 바닥에 손을 짚고 엎드린 채 저 멀리 떨어진 스마트폰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 마지막 장면이었다.
역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하는 재미도 크겠구나 싶었다. 갑자기 이런 그림이 그리고 싶어 졌다. 롱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달리는 소녀의 모습. 소녀가 스케이트 보드 뒤에서 허리를 약간 굽힌 채 머리를 휘날리며 보드를 왼쪽, 오른쪽으로 자유자재로 운전하는 모습. 소녀가 자유를 만끽하듯 바람을 만끽하며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그리다 보면, 나도 절로 웃게 될 것 같았다. 상상만 해도 멋진 그림이다. 언젠간 그려봐야지.
20분 동안 그림을 그리고 나서 바로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아마 이 글은 시간이 날 때마다 짧게 퇴고하게 될 것이다. 매일 쓰는 글이니 쓸 때마다 너무 부담을 느끼지 않으려 한다. 너무 완벽하게 쓰려고 하지 말자, 라는 생각을 매번 한다. 완벽한 글이 무언지도 잘 모르면서 매번 이렇게 다짐하는 것도 재미있다. 즐기면서 쓰고 싶다. 자유롭게 쓰고 싶다. 한편, 스케이트 보드 위에서 능수능란하게 움직이는 소녀처럼 능수능란하게도 쓰고 싶다. 완벽하게 쓰지 말자면서 바라는 것도 참 많네? 여하튼, 오늘의 그림과 글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