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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보름 Jul 13. 2019

[드로잉 13일] 슈퍼밴드

JTBC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밴드는 3회부터 보기 시작했다. 어느 주말, 소파에 넋을 놓고 앉아 있다가 남자 넷이 기타 합주를 하는 장면을 우연히 봤다. 얼핏 들은 말로는 그중 셋은 열아홉 살 고딩이라고 했다. 열아홉 살. 나는 열아홉 살에 뭘 할 수 있었지.


넷 다 기타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았다. 한 명 한 명은 자유분방하게 연주를 하는 것 같은데 각 개인의 연주가 한 데 모여 완벽하게 조화를 이다. 연주가 클라이맥스로 달려갈 때는 가슴이 쿵쿵 뛰었다. 기타 연주를 들으며 가슴이 벅차다고 느낀 건 처음이었다. 연주가 끝나고 옆을 보니 엄마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엄마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이건 뭔 프로그램이니. 뭔 프로그램인지도 모르는 걸 보고 우는 것도 웃기네. 


나는 바로 프로그램의 이전 회들을 다운 받아 엄마와 몇 시간에 걸쳐 함께 봤다. 지금껏 오디션 프로그램은 몇 개 봐왔지만 이만큼 놀라운 오디션 프로그램은 처음이었다. 그냥 거기 나와 있는 사람들이 다 놀라웠다. 어디서 뭘 하다가 이제야 나타났지 싶은 뮤지션들이 수두룩했다. 몇몇은 사실 이미 프로였다. 어딘가에서 홀로 음악을 꾸준히 하다가, 결국은 프로가 돼 있는 사람들. 나는 그들이 보낸 시간에 감동했다. 더더군다나 그들이 하는 음악은 요즘 음악 시장을 보면 결코 대중적이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아, 이 마음, 나는 늘 이 마음이 참 소중하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지켜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아니까.


슈퍼밴드는 엄마와 내가 유일하게 본방 사수하는 프로그램이 됐다. 엄마는 나름 객관적인 시선으로 출연자들의 장점과 단점을 논하는 걸 즐겼고(그러면서도 엄마 역시 최애 캐릭터 한 두 명을 점찍어 두고 있었다는 게 나중에 밝혀졌다), 나는 누구를 최애 캐릭터로 삼을지 고심하며 내 마음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방송이 거듭될수록 엄마와 나는 자주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이 프로 너무 잔인하다, 마음 아파 못 보겠다, 다 잘하는데 누굴 어떻게 떨어뜨.


떨어지는 출연자들이 눈물을 쏟을 때마다 엄마와 나도 같이 울었다. 엄마는 방송을 본 다음 날에도 문득 울먹이던 애들이(엄마에게는 손주 같은 애들이니까. 물론 엄마의 손주는 지금 다섯 살이지만.) 떠올랐는지 촉촉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애들이 얼마나 간절하겠어, 그러니까 그렇게들 울지. 엄마가 촉촉해질 때면 나도 같이 촉촉해져서는 우리는 함께 떨어진 애들의 미래를 향해 희망의 말을 몇 개 건넸다. 그래도 좋은 경험됐을 거야, 앞으론 더 잘 되겠지.


오디션 프로그램의 잔인함에 치를 떨던 엄마지만, 막상 다시 본방 사수를 할 때면 엄마는 또 객관적인 시선으로 출연자들의 장점과 단점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러다 마지막 생방송 결선에 진출할 네 팀을 뽑던 날에는 엄마가 처음으로 조금 짜증을 냈다. 엄마는 케빈 오가 참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그랬어?). 그런데 왜 걔가 떨어져야 하느냐며 결선에 진출한 다른 팀을 평가절하했다(사실 나도 같이 평가절하했다. 나도 그 팀이 올라가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방송이 끝 다음 날까지 엄마와 나는 케빈 오에 관해 얘기하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취향의 문제로 돌아갔다. 엄마,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까 받아들여야 할 건 받아들여야지. 취향 앞에선 우리 꼼짝도 못 한다니까!


계속 본방 사수하고 싶었지만, 금요일 저녁마다 일이 생기는 바람에 다음 날 점심에 보게 되는 날이 많았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마치 생방송을 보듯 마음 떨려하며 보기 위해 누가 1등을 했는지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다. 어차피 내 최애는 두 팀에 분산돼 있었고, 지난번부터는 다른 팀도 응원하게 됐는지라, 누가 1등이 될지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냥 오늘은 내가 지금껏 애정으로 지켜본 뮤지션들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한다는 의미가 컸다.


엄마와 나는 점심으로 콩칼국수를 먹으며 슈퍼밴드 마지막 편을 봤다. 나도 응원하던 호피폴라가 1등을 했다. 받을만했다. 선하고 예쁜 음악을 향해 박수를! 한편, 특히 응원하던 루시 팀이 1등을 못 한 건 조금 아쉬웠다. 아마 호피폴라가 1등을 못해도 아쉬웠겠지.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루시 팀을 그려보기로 했다. 다 같이 있는 장면은 인물들이 너무 작아서 오늘은 한 명만 그리기로. 멋진 바이올리니스트, 신예찬. 어떤 음악에든 완벽하게 녹아드는 그의 바이올린은 매번 멋졌다.


오늘은 타이머를 20분으로 맞춰놓고 그리지 않았다. 그림을 완성할 때까지 그리고 싶어서. 대신 스톱워치를 돌렸다. 과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궁금했기에! 다 그렸더니 36분이 지나 있었다. 신예찬하고는 하나도 닮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 애정이 듬뿍 들어간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지우개를 자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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